'코르셋 재킷' '쉐딩 스커트' 사라졌지만, 여전히 날씬한 '핏' 위주로 광고하는 교복업체
'교복 섹시하게 입는 법' 공유하는 10대 소녀…학생 80% 이상 교복 수선해 입어
허벅지가 드러나도록 격렬하게 춤추는 여자 아이돌의 스쿨룩부터 문제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15일 SBS ‘K팝스타’에 대해 의견 제시를 내렸다

최근 SBS ‘K팝스타6’는 미성년자 출연자 선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초등학생 어린이 한별양이 짧은 교복을 입고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웁스 아이 디드 잇 어게인(Oops! I Did It Again)’를 부르는 모습이 문제가 된 것. ‘난 그렇게 순진하지 않아’라는 가사를 외치며 섹시미를 강조한 춤을 추는 어린이의 모습에 시청자는 불편함을 느꼈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행정 지도 조치를 내렸다. 한 시청자는 “이제는 하다못해 초등학생까지 짧은 교복을 입혀 춤을 추게 한다”며 “어린 여자의 성상품화가 점점 더 노골적이다”고 적었다.

‘걸’과 ‘소녀’와 ‘섹시’가 합쳐진 상품이 무더기로 팔리는 세상이다. 가수 박진영과 걸그룹 트와이스를 모델로 기용한 스쿨룩스의 ‘코르셋 재킷’ ‘쉐딩 스커트’ 광고가 문제가 된지 1년이 더 지났지만, 교복을 선정적 혹은 매력적인 패션 아이템으로 다루는 콘텐츠는 오히려 더 많아지고 있다. 엠넷의 ‘프로듀스 101’에서는 101명의 소녀가 교복 스타일로 퍼포먼스를 펼치기까지 했다.

교복 광고도 여전하다. 과거처럼 선정적인 문구는 사라졌지만, 대부분 교복 광고 화보에는 여자 아이돌이 허벅지가 반 이상 드러나는는 짧은 교복 치마를 입고 등장한다. 아울러, ‘몸에 맞는 교복 핏(fit)’을 제일 먼저 내세운다. 교복 업체는 엘리트는 홈페이지 메뉴를 아예 ‘걸핏(Girl fit)’ ‘보이핏(Boy fit)’으로 구분해놓았다.

◆ ‘뚱뚱한건 극혐’ ‘치마 라인은 핵존심’…섹시하게 교복 입는 법 공유하는 10대 소녀

여자 아이돌 정채연이 광고하는 엘리트 교복

‘섹시 교복’ 문화는 이미 10대들 사이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인터넷에서 ‘교복 생정(생활정보)’을 검색하면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교복 섹시하게 입는 법’을 공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블라우스 단추는 두세 개 풀고 소매를 걷어요. 하복 티는 허리선에 딱 맞춰서. 그래서 상체를 숙였을 때 허리가 아슬아슬하게 드러날 정도면 딱 좋아요. 아니면 사복 티를 입고 그 위에 하복을 걸치고 단추는 풀고 다니세요.’ ‘치마는 무릎 위 10cm 정도는 기본이구요. 너무 짧으면 흔녀(흔한 여자) 되니까 주의.’

교복 수선을 직접 한다는 중학교 2학년인 A(15)양은 “입었을 때 H라인이 나오는 치마는 ‘핵존심’(지켜야 할 자존심)”이라며 “중1 때는 주름치마가 A라인으로 퍼지도록 입고 다녔는데 그때 사진을 보면 너무 촌스럽고 뚱뚱해 보인다. 지금은 모든 주름을 박아서 치마가 퍼지지 않게 입는다”고 말했다.

외모에 관심이 많은 여학생에게 ‘교복 몸매’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등학교 1학년인 B(17)양의 경우 아이돌 못지 않게 마른 체격이지만, 항상 다이어트 중이라고 말했다. “블라우스가 너무 타이트해서 어짜피 밥을 마음껏 못먹는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다이어트가 되서 좋다. 얼굴 못생긴건 화장으로 커버하거나, 개성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뚱뚱한건 극혐(극도로 혐오하다)이다.”

◆ 2009년 ‘꽃보다 남자’ 이후로 일본의 미니스커트 문화 유입

일본 교복 문화를 국내에 시도한 드라마 ‘꽃보다 남자’

교복이 ‘섹시 복장’으로 변질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쾌걸춘향’이 방송됐던 2005년만 해도 치마 길이가 무릎 정도는 됐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여주인공들의 치마 길이는 허벅지를 훨씬 웃도는 수준까지 짧아져버렸다. 게다가 교복에 하이힐을 신는 경우도 생겨났다.

익명을 요구한 교복업체 관계자는 “2000년대 중반부터로 파악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신체 성장을 고려해 교복은 넉넉한 크기로 사야 한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었고, 몸매를 강조한 것은 아이비클럽의 ‘다리가 길어 보이는 학생복’ 광고 정도였다”며 “2000년대 일본의 ‘교복 미니스커트’ 문화가 유입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짧은 교복치마 스타일이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교복 스타일 변화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TV 드라마”라며, “특히 2009년 KBS에서 방영된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일본 만화가 원작인 해당 드라마에서는 연기자 구혜선 등 청춘스타들이 가슴을 꽉 조이고 미니스커트형 교복을 입은 모습으로 생기발랄하게 나왔다. 이후 ‘드림하이’(2011), ‘상속자들’(2013) 등 드라마에서 학생 역을 맡은 연기자들은 모두 짧은 교복치마에 날씬한 허리라인을 강조한 재킷을 입었다.

◆ 스쿨룩 입고 무대에서 춤추는 걸그룹이 되고 싶은 아이들

스쿨룩스의 광고 모델인 트와이스 멤버 쯔위

걸그룹의 무대 위 교복도 ‘섹시 교복’ 이미지를 부추겼다. 흰 블라우스와 체크무늬 치마가 상징인 ‘스쿨룩’을 입고 허벅지가 드러나도록 강렬하게 춤추는 걸그룹들은 지금도 무대에 종종 등장한다.

이에 따라 교복업체들은 디자인의 ‘실루엣’을 집중 광고하기 시작했다. 여학생의 경우 소매는 가늘게, 재킷 길이는 허리선에 맞추고 허리를 잘록하게 해 하체가 길어 보이게 하고, 치마는 타이트한 H라인을 강조하게 됐다.

여기에 늘씬한 여자 아이돌의 허벅지가 드러나는 광고를 내걸었다. 이런 ‘연예인 모델’은 교복의 가격마저 부풀린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복업체 관계자는 “사실 어느 브랜드든 교복의 ‘핏’은 비슷하다. 다만 연예인 모델을 기용하느라 교복값이 20% 정도 뛰는 것”이라고 말했다.

10대들의 인식을 탓하기 전 어른들의 잘못은 없었는지 반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 교사 권유라씨는 “아이들이 꾸미고 싶어하는 욕구는 당연하지만, 외모가 예뻐야만 남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갖는 건 잘못된 것이다. 대중매체를 통해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성형수술, 다이어트 등을 해야만 사회적인 지위를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성교육을 담당하고 의정부금오중학교 보건교사 박유선씨는 “아이들의 80~90%가 교복을 짧게 수선해서 입고 다니기 때문에, 그러지 말라고 혼내기 무색할 정도다. 일단 아이들이 영향을 많이 받는 대중매체에서부터 제대로된 가치관을 갖도록 교육해야 한다. 그 다음에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교복의 기준을 마련해 규칙에 따르게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