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직장인 김모(40)씨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한 음식점에 들렀다가 발레파킹 직원과 싸움이 붙었다. 음식점 앞 주차장 빈자리에 김씨가 주차를 하자 발레파킹 직원이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김씨에게 차 키를 요구했고 김씨는 "이미 차를 세웠는데 무슨 소리냐"며 거부했다. 직원은 "음식점과 계약한 우리에게 차를 맡기지 않는 이상 여기 주차할 수 없다"고 했다. 김씨가 차 키를 건네자 직원은 김씨 차에 시동을 걸고 10㎝쯤 후진한 뒤 차에서 내렸다. 화가 난 김씨는 음식점 업주와 경찰까지 불러서 따졌지만 결국 발레파킹비 3000원을 지불해야 했다. 김씨는 "내가 직접 차를 댔는데 왜 돈을 뜯겨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우리나라 발레파킹은 서비스가 아니라 주차비 강탈"이라고 말했다.
서울 도심이 발레파킹(valet parking·대리 주차)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발레파킹은 외국에선 백화점이나 호텔 등에서 손님 편의를 위해 시작된 대리 주차 서비스이지만 우리나라에선 주차 공간이 좁은 음식점 등에 손님이 몰릴 때 주차할 곳을 대신 찾아 주차해주는 형태로 도입됐다. 음식점이 발레파킹 업체와 계약을 맺고 한 달에 230만~300만원을 관리비로 지불하면 발레파킹 업체에선 손님들 차량 주차를 전담한다. 발레파킹 업체는 음식점에서 받은 관리비와 손님으로부터 받은 1000~5000원의 발레파킹비를 가져간다.
그런데 최근엔 대리 주차를 강요하거나 책임지지 않는 불법 주차와 접촉 사고까지 늘면서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2016년 현재 서울시 하루 대리 주차량은 1만7000여 대. 이 대부분이 몰리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 강남구 청담동과 신사동 등 음식점과 커피숍이 모여 있는 곳은 발레파킹을 둘러싼 눈치 전쟁과 잡음이 벌어진다.
할당량 채워야 하는 발레파킹 업체
차주들이 불만으로 꼽는 발레파킹 행태 중 하나는 강요된 대리 주차다. 빈 주차장에 차를 대려고 하면 발레파킹 직원이 다가와 "무조건 차를 맡겨야 한다"고 나오는 형태다.
발레파킹 직원들은 "하루 할당량을 채우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발레파킹 직원으로 근무한 지 5달째라는 임모(25)씨는 "평일은 하루 80대, 주말은 150대로 할당량이 정해져 있다"며 "다 채우지 못하는 경우엔 월급 줄 돈 없다며 업주가 압박해 온다"고 했다. 압구정동 발레파킹 업체에서 2달간 근무했다는 최모(29)씨는 "하루에 얼마만큼 해야 한다는 목표를 주는데, 실적 달성을 못 하면 일당을 못 받을까 봐 전전긍긍하고 두 명이 같이 근무하는 경우에는 직원들 사이에서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했다.
구청에서 주차 단속을 나오는 경우 직원들은 더욱 바빠진다. 3년간 강남구와 용산구 일대에서 발레파킹 직원으로 근무했다는 조모(25)씨는 "단속 차량이 뜨면 알바생들이 전부 차 키 들고 차로 뛰어간다"며 "시동 걸고 창문 열고 비상등 켜서 곧 이동할 차량처럼 보이게 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발레파킹 직원 김모(23)씨는 "단속 때문에 차를 급하게 빼야 하는 상황에서는 근처 차가 다 같이 빠져야 하기 때문에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며 "운전면허를 딴 지 3년 된 나도 수억원대 외제차를 뺄 때 벌벌 떠는데, 면허 딴 지 2달밖에 안 된 사람들이 일할 때면 접촉 사고 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불법 주차와 단속 피하기 경쟁
발레파킹 요금을 지불하고 대리 주차를 맡겼는데도 불법 주차 딱지를 떼이는 경우도 있다. 지난달 초 서울 압구정동 한 커피숍에서 3000원을 주고 발레파킹을 맡겼던 회사원 최모(27)씨는 며칠 뒤 주정차 위반 과태료 고지서를 받았다. 해당 커피숍 근처에서 찍힌 사진으로 주정차 불가능한 곳에 주차했다는 내용이었다. 발뺌하는 발레파킹 업체에 그 시간 해당 커피숍에서 결제한 내역을 보여주고 나서야 업체 측에서는 부과된 과태료만큼 돈을 지급했다. 최씨는 "안심하고 발레파킹을 맡겼는데 불법 과태료 통지서가 날아와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서울시내 발레파킹 업체 중 80%가 모여 있는 강남구는 최근 청담동 일대 발레파킹 불법주차 단속을 벌인 결과 하루 총 266건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발레파킹 업체가 아파트나 빌라 주차장을 막무가내로 점유하거나 거주자 우선주차장 배정자에게 면당 15만원 선에 자리를 사들여 운영하는 경우도 있었다. 몇몇 발레파킹 업자는 무단 점유에 항의하는 주민에게 욕설과 협박이 담긴 문자메시지도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취재 결과, 주차 공간을 확보해놓고 운영하는 발레파킹 업체는 극히 드물었다. 주차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수용할 수 있는 차량 대수가 10~30대 정도로 제한적이기 때문에 불법 주차는 피할 수 없는 구조였다. 경쟁 업체들끼리 서로 민원을 넣는 경우도 잦았다. 한 발레파킹 직원은 "다른 업체를 신고하는 건 매일 있는 일"이라며 "주차 공간이 부족할 때는 차로 10분 떨어진 거리에 주차된 차까지 죄다 신고한다"고 했다. 단속 차량을 다른 지역에서 뺑뺑이 돌게 하려고 먼 거리에 있는 불법 주차 차량을 신고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작년 7월에는 일반 도로를 개인 주차장처럼 운영하며 차량 번호판을 의자나 종이로 가리고 상습적으로 주정차 단속을 피해온 발레파킹 직원 30명이 경찰에 붙잡히는 일도 벌어졌다.
포화 상태인 발레파킹 시장
발레파킹 직원과 개인 운전기사 등으로 9년째 일하고 있다는 최모(39)씨는 "일손이 없어서 도와달라고 연락이 오면 단속이 뜸한 주말에 하루 이틀쯤 (발레파킹) 일을 도와줄지언정 전담으로 맡아서 하라고 하면 절대 안 할 것"이라며 "구청과 업주의 눈치 싸움에 주차 직원만 피 마르는 구조"라고 했다. 발레파킹 직원으로 1년쯤 일하다 최근엔 수행기사로 일하고 있다는 정모(33)씨는 "발레파킹은 직원들 쪼아서 업주만 이득을 보는 업태"라고 했다. 취재 결과 발레파킹 직원들은 주 6일 12시간 근무에 120만~17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고 있었지만, 직원 10명을 거느린 업주의 경우 월 1000만원 정도의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발레파킹 업계 진입 장벽도 매우 높은 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발레파킹 신규 업체 대표는 "도심에 있는 한 음식점 대표가 우리 업체와 계약하고 싶다고 먼저 연락을 해와 상담을 하고 계약 성사 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지만 무산됐다"며 "기존 업체 직원 여러 명이 돌아가면서 전화를 걸어와 '당신이 뭔데 계약을 하려고 하느냐' 등의 취지로 따지며 욕설을 했다"고 말했다. 다른 발레파킹 업체 대표는 "이태원이나 한남동, 강남 일대에서는 음식점 대표와 계약을 맺어도 다른 업체들이 우리가 관리하는 차량에 집중적으로 민원을 넣는 식으로 영업 방해를 해 결국 포기했다"고 말했다.
대다수가 불법… 세수 파악도 안 돼
발레파킹 업체의 대다수가 불법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사업 신고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현금 결제만을 유도해 탈세 의혹도 끊이지 않는다. 국세청 관계자는 "발레파킹의 경우 서비스업이 아닌 자유업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별도의 허가 없이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각 구청에서 발레파킹 업체를 파악하려 해도 업체 수를 알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국세청은 "카드 결제를 거부하고 현금으로만 받는 발레파킹 업체에는 탈세의 우려가 있다"면서도 "발레파킹 업계의 규모를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발레파킹 민원이 끊임없이 들어와도 근거 법규가 없기 때문에 업체 수도 정확히 파악이 안 되니 행정 지도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단속이나 벌금을 물리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강남구청은 발레파킹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지난 2014년부터 3년간 국토교통부에 '대리주차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 제정'을 건의했다. 대리주차업 등록·신고제, 대리주차 운전자 자격요건, 보험, 서비스 요금 기준, 과태료와 범칙금 등을 골자로 한 건의안이었지만 '나라 전체가 아니라 서울 강남구에만 한정되는 내용'이라며 거절당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불법 주차의 경우 구청에서 단속을 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불만이 해소되지만 대리 주차를 강요하는 경우엔 특별한 방법이 없다"며 "서비스가 필요 없을 땐 차주가 열쇠를 건네주지 않고 비용도 주지 않는 등 대리 주차를 끝까지 거부하는 것만이 지금으로선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했다.
서울 시내 발레파킹 업체 대표 100여 명이 모인 발레파킹협회의 권진오 ㈜마중 대표는 "발레파킹이 없으면 주차난이 더 심각해지는 것이 자명한데도 업계의 안 좋은 면만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다"며 "정부에서 사업 분류를 정확히 해주면 규정에 맞추는 한편 업체마다 카드 단말기를 구비하는 등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