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인터뷰 가능하실까요?' 안상수(65) 전(前)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교수에게 페이스북 메신저(그의 주연락 수단이다)로 메시지를 보냈더니 짧은 답이 돌아왔다. '날개라 불러주세요.' 호칭부터 정정해 달라며 짧은 설명을 곁들였다. '날개=교장.' 4년 전 세운 디자인학교 '파티(PaTI·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에서 그를 교장 대신 부르는 직함이란다.

그리고 말, 아니 '글'을 이었다. '○일 날개집에서 만나고 낮밥해요. 날개집=교장실, 낮밥=점심.' 분명 한국말인데 암호 같다. 설명 없인 해석 불가다. 그렇게 안상수를 만나러 파주출판단지 안 그가 1985년 만든 출판사 안그라픽스 사옥에 딸린 '날개집'을 찾아갔다.

이름 알린 이는 많아도 안상수만큼 많은 사람이 은연중 사용하는 이름은 드물다. 한글을 네모 틀에서 꺼내 엿가락처럼 가늘고 길쭉하게 늘인 '안상수체'. 이 글꼴을 만든 이가 바로 안상수다. 최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 '날개.파티'(5월 14일까지)를 열어 디자이너, 교육자, 크리에이터로 40여 년 부지런히 달려온 삶을 중간 점검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점프 슈트(아래위가 붙은 작업복)에 빨간 모자를 쓴 그는 청년 못지않은 열정을 불태웠다.

트레이드 마크인 점프 슈트(아래위가 붙은 작업복)에 빨간 모자를 쓴 안상수. 점프 슈트는 그가 이끄는 디자인학교 ‘파티’의 교복이기도 하다. 현장과 함께하는 실용 교육을 상징한다. (흰 글씨) 1985년 안상수가 개발한 한글 글꼴 안상수체.

안상수보다 유명한 안상수체

―글꼴에 어떻게 이름을 넣었는가.

"추사체처럼 사람 이름으로 글씨가 태어나는 경우가 있다. 어쩌면 '내가 책임지겠다'는 의지의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삐죽한 글씨가 왠지 주인을 닮았다. 파격적인 디자인이 어떻게 나왔나.

"'안체'(제 이름 부르기 쑥스럽다며 안상수체를 '안체'라 불렀다)는 '소리덩이(음절) 단위로 모아쓰고, 첫닿자(초성자)를 받침(종성자)과 같이 쓴다'는 훈민정음의 한글 창제 원리에 따라 멋지어(디자인해)보니 자연히 네모 틀에서 벗어나게 됐다. 1985년 처음 만들었을 땐 글꼴 개발을 맡겼던 회사에서 '이것도 글자냐' 난색을 표해 빛을 못 볼 뻔했다..

―글자의 운명이 어떻게 바뀐 건가.

"글꼴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휴먼컴퓨터의 공이 컸다. 그 회사가 1991년 컴퓨터에 '안체'를 탑재하는 데 성공했다. 몇 년 뒤 한글과컴퓨터에서 '아래아한글'을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에서 안체가 실리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이찬진(한글과컴퓨터 설립자)씨와는 그전부터 아는 사이였다. 1988년 즈음 그가 군대 휴가 때 '아래아한글'을 완성했다면서 플로피 디스크 3개를 가지고 동숭동 낙산 아래 있던 내 사무실에 왔었다. 들뜬 표정이 눈에 선한데 벌써 30년 전 일이 됐다."

―디자인 중에서도 당시로선 생소했던 한글 글꼴 개발에 눈 돌린 이유가 있나.

"그때 응용미술과(지금 디자인과)에선 상공부에서 하는 '상공미전'에 입상하는 게 가장 큰 목표였다. 포스터, 포장 디자인이 주였지 글꼴은 디자인 대상이라고도 생각하지 못하던 때다. 대학 1~3학년 때 학보(홍대신문) 기자와 편집장을 한 게 계기가 됐다."

―학보 기자와 글꼴이 무슨 상관인가.

"그 시절 대학 신문들은 광화문 조선일보사 외간부에 가서 신문을 제작했다. 학보 나올 때마다 신문사에 가서 문선(文選·활자를 찾는 작업), 조판(組版)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대장이 나오면 오자(誤字) 잡고, 제목 뽑고…. 수업은 빠져도 신문사는 빠지지 않고 갔다. 움직이는 생물처럼 거대한 윤전기가 돌아가고 신문이 찍혀 나오는 과정을 봤다. 어깨너머로 활자와 함께 살면서 글꼴 디자인에 대한 생각이 싹튼 것 같다."

―생소한 순 우리말을 살아 있는 언어로 일상에서 쓰는 게 특이하다.

"일부러 애쓴다. 나도 긴장 늦추면 들온말(한자어)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기도 하고. 그래도 처음엔 어색하지만 금세 익숙해졌다. 배우미(학생)들도 이젠 '하제(내일의 순우리말) 낮밥할까' 정도는 알아듣는다(웃음)."

건축가 김인철이 ‘상상력이 휘날리는 판잣집’ 개념으로 만든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건물 ‘이상집’(왼쪽). 이상(異常)하고, 이상(理想)이 높고, 시인 이상을 기리는 집이란 뜻이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날개.파티’의 모습(오른쪽). 전시장의 절반은 디자이너 안상수 개인의 작품이, 나머지 절반은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배우미(학생)들의 작품이 전시됐다. 5월 14일까지.

부끄러워했던 어머니를 되살리다

―20년은 디자이너로 살았고, 20여 년(1991~2012년)은 모교 홍익대 디자인과에서 후학을 길렀다. 지금은 실험적 디자인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디자인, 교육, 한글이 삶의 세 중심축 같은데.

"멋지음(디자인)은 '살아가며 할 일', 교육은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나누고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일', 한글은 '이 땅의 전문가로서 살아가는 당연한 소임'이다."

―정년을 5년 남기고 교수 관두고 새로운 개념의 학교 '파티'를 만든 이유가 궁금하다.

"우리 교육이 어미의 것을 자꾸만 부정하고 남의 것을 따라 하는 데만 급급하단 생각이 들었다. 어미의 것, 전통의 것, 이를테면 한복·장롱은 촌스럽고 서양 옷·가구가 멋있다는 식으로 아름다움을 교육해왔다. '사진관'은 여권 사진 정도 찍는 데라 생각하고 '스튜디오'는 작품 사진 찍는 데라 생각하도록 우리말 교육도 왜곡됐다. 어미의 것을 다시 보고 보다 삶에 밀착한 현장 중심 디자인 교육을 실험하기 위해 파티를 세웠다. 내겐 '부록' 같은 삶이다."

―어미의 것을 부정하는 사회를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다시 돌아봐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어미는 우리 자신이다. 어미를 부정하는 건 우리 것에 자신감이 없다는 얘기다. 자신감·자존감을 회복하고, 우리 스스로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

―'날개'도 어머니를 부정했나.

"내 얘기다. 3남1녀 막내였는데, 무학(無學)에 나이 많은 어머니를 촌스럽고 창피하게 생각했다. 학교 오시는 게 싫었다. 그런데 학교 들어가기 전 한글 가르쳐주신 게 어머니였다. 지금 내 삶의 큰 기둥이 된 한글을…. 군대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기별을 받고 갔지만 이미 장례는 끝났고 어머니 무덤만 덩그러니 있었다.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프다. 후회막급이다."

―어머니를 한글 자모에 비유한다면?

"ㅇ(이응). 있으면서 없고 없으면서 있는 존재. 원융(圓融)하고 큰 존재."

안상수의 소지품 1 카메라. 20여 년째 만난 사람을 찍고 있다. 한손으로 얼굴 한쪽을 가린 인물 사진을 찍어왔는데 지금까지 찍은 사람이 4만명 정도. 언젠가 1만 명의 얼굴을 모은 책 ‘만인보(萬人譜)’를 발간하는 게 목표란다. 2 일수 수첩과 금색 펜텔 ‘포켓브러쉬펜’. 20년 넘게 애용하는 소지품이다. 손바닥만 한 일수 수첩은 한 손에 들어오고 셔츠 포켓에도 싹 들어가는 크기라 딱이란다. 수첩 앞엔 단기(檀紀)가 적혀 있다. 지금까지 모은 수첩 1000여 권이 이번 전시에 나왔다. 3 의관 정제하듯 차, 연적, 붓, 먹, 벼루가 정확히 사진처럼 놓여야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붓으로 그림 그리듯 메모한다. 동그스름한 독특한 형태의 벼루는 중국에서 샀다.

어른, 청년의 거름 돼야

― 20대 젊은 세대와 늘 가까이서 호흡한다. 세대 갈등이 점점 심해지는 우리 사회에 대한 조언이 있다면.

"어른이 참아야 한다. 어른이 참아 푹푹 썩으면 그게 젊은이에게 거름이 된다."

―문화계의 '어른' 가운데 한 분이다. 요즘 문화계가 위축돼 있다.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

"애지음(외솔 최현배가 지은 '창조'의 순우리말)은 자유를 먹고 자란다. '문화 융성'이란 문예 부흥일 텐데 이를 원한다면 자유로운 토양 속에서 예술이 크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젊은 문화예술인을 통제하지 말아야 한다. 예술이란 그 속성 자체가 불온함을 내재하고 있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처럼. 그게 생명력 있는 문화의 힘이다. 어른이, 또 사회가 흐르는 강물처럼 젊음의 불온함을 끌어안아야 한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자유'를 공격하면 안 된다."

안상수 프로필

1952 충북 충주 출생
1970 홍익대 응용미술과 입학
1970~1973 '홍대신문' 기자, 편집장
1977~1978 금성사 디자인연구실 디자인연구원
1979 홍익대 응용미술과 대학원 입학
1985 안그라픽스 설립
1985 '안상수체' 발표
1991~2012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교수
1999 한국인 최초로 국제그래픽연맹(AGI) 회원 등재
2007 독일 구텐베르크상 수상, 라이프치히조형대학 미술관 초대전
2013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파티) 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