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피 앓는 딸 위해 직접 제품 개발…아빠 육아 붐과 함께 주목받은 '아빠가 만든 화장품'
'성공한 덕후' 6년만에 월매출 100억원 화장품 브랜드 만들어
중국 진출 시 베이징, 상하이 외에 2선, 3선 도시도 함께 두드려야

파파레서피에서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봄비’라인

학창 시절부터 화장품에 빠진 특이한 남자가 있다. 까만데다 여드름이 콤플렉스였던지라, 이것 저것 사서 발라보고, 유통기한이 왜 중요한지, 선크림은 왜 여러겹 발라야하는지 나름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쌓았다. 대학 때는 화장품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화장품 관련 자격증만 6개를 땄다. 그러다 뷰티 관련 콘텐츠를 올리던 블로그가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화성인바이러스’에도 출연했다.

요즘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화장품 브랜드 파파레서피의 김한균(33) 대표의 학창시절 이야기다. 성공한 화장품 ‘덕후’가 런칭한 이 브랜드는 6년밖에 안됐지만, 현재 월 평균 매출 100억원을 올리고 있다. 2015년 매출 150억원에서 지난해 1000억원을 넘어섰다. 지난 7월 가로수길에 플래그십 스토어도 오픈했다.

파파레서피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기다. 한국 시장의 규모의 한계를 느낀 김 대표는 일찍 중국으로 눈을 돌렸고, 반응은 뜨거웠다. 지난 광군절(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로 불리며, 11월 11일에 해당)에는 30분 만에 1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하루만에 마스크팩 1만 상자 이상이 판매되는 이례적인 기록을 세웠다. 대기업 브랜드도 아니고, 유명 한류 스타를 모델로 기용하지도 않은 중소 화장품 기업으로서는 최초다.

◆ 중국의 사드 몽니, 지역 다변화로 대처해야…베이징·상하이 통하면 전국 제패 옛말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중국의 수출 비중이 큰 한국 화장품 기업에 ‘빨간불’이 켜졌지만, 파파레서피는 올해도 고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여기에는 지역 다변화 전략이 숨어 있다. 파파레서피는 베이징, 상하이 기반 매장 직진출 대신 홍콩 기반 드러그스토어 ‘왓슨스’와 손잡고 중국 전역으로 오프라인 판매망을 구축한 게 성장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더불어 2, 3선 도시(1선 도시인 상하이, 베이징, 광저우보다 규모가 작은 도시)에선 현지 협력사와 매장 제휴를 늘려가며 여전히 중국 특수를 누리고 있다.

김한균 파파레서피 대표

왓슨스는 우리나라의 올리브영과 같은 헬스앤뷰티 전문 매장으로 홍콩서 시작됐다. 중국 내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많은 점포를 구축해 탄탄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어 이 곳에 입점되면 일단 소비자 접점을 찾기가 쉬워진다는 큰 장점이 있다. 중국 왓슨스는 중국 내 340개 도시에 2800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대부분 한국 브랜드는 중국 시장 진출 시 베이징, 상하이 등 1선 도시 위주로 시장을 공략한다. 이 두 도시에서만 성공하면, 중국 전역에서도 따라올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점차 중국인 개개인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내륙 지방의 소비 시장도 커지고 있고, 지역별 특성도 강해지고 있다.

양지혜 메리츠종금증권 유통 담당 연구원은 “한중 관계가 어렵다지만 이 와중에 의미 있는 실적을 내는 업체들 중에는 중국의 대도시 뿐 아니라 작은 도시에도 성공적으로 진출한 경우가 많다”며 “점점 중국의 소비 시장이 다양해지는 만큼 수출 기업은 이에 대한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파파레서피의 플래그십스토어

뷰티업계 전문가들은 파파레서피의 성공 비결에 대해 ‘경쟁력 있는 스토리 덕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미국 K뷰티 전도사이자 글로우레시피 대표 사라 리는 “파파레서피는 이름에서부터 진정성이 느껴지는 브랜드”라며 “아버지의 마음으로 좋은 성분을 담았다는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한균 대표는 브랜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모든 브랜드에는 스토리가 있어야 합니다.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스토리텔링이 그 첫 단계죠. 생명력 있는 스토리가 없으면 유통, 홍보, 마케팅이 뒷받침 되도 성공하기 힘듭니다.”

◆ 아빠 육아 붐과 함께 ‘아빠가 딸 위해 만든’ 부성애 마케팅 적중해

자타공인 화장품 전문가 김 대표는 5년 전 결혼해 딸을 얻었다. 그런데 그 딸이 심한 건선과 함께 아토피 피부염 증상이 있었다. 본인이 아는 좋은 화장품이란 화장품은 다 써봤지만, 차도가 없었다. 그래서 직접 만들어 보자 해서 여기저기 좋은 천연 재료를 수소문한 끝에 유기농 오일을 직접 만들었다. 이 모든 과정은 블로그에 담겼다.

“아이 화장품을 직접 조사해보니 대부분의 제품들이 성인 제품과 성분이 다를 것이 없더라고요. 그런 제품들은 오래 사용할 경우 아이 피부의 강한 재생력을 잃지는 않을까 걱정 되더라구요.”

김한균 대표는 파파레서피에 ‘딸바보 아빠’인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브랜드명도 투박하게 ‘아빠가 만든 화장품’으로 시작했다. 화장품 밖에 모르는 아빠가 자식을 위해 손수 만든 화장품이라는 이야기에 입소문이 났다. 유기농 오일 한병에 3만8000원으로 저렴한 편은 아니었지만, 처음 만들었던 제품 1500개가 앉은 자리에서 모두 팔렸다고 한다.

이후 파파레서피의 스토리는 아빠 육아 붐이 일면서 더 크게 성장했다. ‘아빠 어디가’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 예능이 인기를 끌면서, 부성애 코드를 강조하는 제품들이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자 이때 브랜드명을 파파레서피로 바꿨다. 파파레서피를 3년째 사용한 소비자 김소현(29·서울 연희동)씨는 “우선 아빠가 만든 제품이라는 점에서 성분, 위생 등 신뢰가 간다. ‘딸바보’ 아빠의 모습이 생각나기도 해서 애틋해지는 면도 있다”고 말했다.

◆ 중국에선 소파파(젊은 아빠)로 불려… 창업 이래도 투자 한 번 받지 않았다

중국에서도 부성애 전략은 통했다. 김한균 대표는 “브랜드 네임에 친숙한 ‘파파’가 들어가니 중국에서 반응이 초창기부터 괜찮았다. 마침 중국어를 배우고 있었기 때문에, 웨이보 등 중국 SNS를 통해 중국 사람들과 소통했는데, 의외로 우리 제품에 대해 먼저 물어왔다. 더듬더듬 일일이 답변을 달아주다 보니 중국에서도 자연스럽게 매출이 늘어났다. 중국에서는 ‘소파파(젊은 아빠)’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효성-슈 부부(왼쪽), 손준호-김소현 부부 . 지난 7월 31일 '파파레서피 매장 오픈 행사에 참석한 연예인들

파파레시피의 중국 진출이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다. 그는 3년 전 내수시장에 한계를 느끼고 중국 현지에 자본금 1억원을 들여 법인을 설립했지만 곧 폐업을 결정해야 했다. 중국인을 현지 법인장으로 내세웠지만 법인설립부터 위생허가, IP(지적재산권) 등까지 각종 이슈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

김한균 대표는 포기하지 않고, 중국의 언어·문화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중국 경영대학원인 장강상학원(CKGSB)에 진학했다. 중국 전지역 화장품 박람회도 모두 참가했다. 심천, 상해, 광저우 등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다.

그러다 안정적인 수출 판로를 만들어준 중국 파트너를 만나게 됐다. 수년간 비즈니스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결과다. 김한균 대표는 “중국 파트너 1000명을 만났다면 999명은 당장 거래할 것처럼 말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며 “계속 만나고 시도하다 보니 좋은 기회가 만들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파파레서피는 창업 이후 대출이나 투자 한 번 받지 않았다. 김한균 대표는 창업 초기 직원 두 명의 월급 주기도 힘들어서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이나 주말에는 배달, 막노동을 해가며 회사를 이끌어왔다. 그는 “창업 5년 동안 가장 잘한 일이라면 직원 월급을 항상 제때 준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