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빨리빨리 민족이다. 뭐든 빨리빨리 한다. 밥도 빨리 먹고 술도 빨리 먹고 임기 한참 남은 대통령도 급하다며 빨리 갈아치운다. 그 빨리빨리가 대한민국이라는 부실 공사의 주범이라는 사람도 있다. 세상일은 다 맞거나 다 틀리지 않는다. 좋은 것도 뒤집어 보면 나쁘고 나쁜 것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좋은 구석이 있다. 빨리빨리는 나쁜 것보다 좋은 게 더 많다. 우리는 경제도 빨리빨리 성장시켰다. 남들 50년, 100년 걸려 하는 것을 20년 만에 끝냈다. 먹어가며 쉬어가며 해도 되는데 안 자고 안 먹고 속도전으로 끝냈다. 박정희 대통령은 가끔 조급증 환자였다. 1972년 정부는 8년 후 수출 목표를 55억달러로 잡았다가 갑자기 100억달러로 확 올린다. 북한을 경제적으로 완벽하게 압도하고 싶었던 박정희의 조급증이 도진 것이다. 그 대통령에 그 국민이라 해야 하나. 1980년을 목표로 했던 100억달러 고지를 3년 당겨 1977년에 돌파해 버린다. 이렇게 우사인 볼트의 속도로 마라톤 전 구간을 뛰는 게 대한민국 기질이다. 그런데 이거 실은 유서 깊은 증세다.
일제 때 기록을 보면 한국인의 평균 기상 시각은 새벽 5시다. 식민 지배를 더 열심히 받으려고 이렇게 일찍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고, 이유가 있다. 한국의 벼농사는 수확 적기를 며칠만 놓쳐도 이슬과 찬 서리에 수확량의 절반 이상이 날아간다. 기후는 들쑥날쑥해서 공정상 해야 할 일의 기한은 대략 열흘 남짓이다. 빨리빨리 안 하면 수확량이 줄고 농사를 망친다. 서두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계(契)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문화다. 이 계에는 별별 것이 다 있는데 그중 압권은 늦잠을 서로 경계하며 막아주는 조기계(早期契)다. 나도 못 자고 너도 못 자고 같이 못 자도록 돕는 이런 황당한 계까지 만들어 가며 살아온 게 우리 민족이다. 잠을 못 자게 하기 위해 동원한 방법은 엽기적이다. 영침목이라는 베개가 있다. 옹이가 박힌 나무 베개인데 이걸 베고 잔 이유는 머리가 배겨 잠을 오래 못 자기 때문이다. 더 끔찍한 게 상계침(霜鷄枕)이다. 베개 이름에 웬 닭? 이건 거의 TV 프로그램 서프라이즈에 나올 수준이다. 서리가 내릴 때 부화한 닭은 몸집이 작다. 이 서릿닭의 알을 다시 서리철에 품어 부화시키면 이 손자 닭은 주먹 크기에서 성장을 멈춘다. 이렇게 기른 병아리 사이즈 닭을 판자로 만든 베개에 넣고 잤다. 이 닭은 축시(丑時)에 운다. 늦어도 새벽 세 시에는 시끄러워서라도 깬다는 이야기다. 그 시간에 일어날 거면 아예 자지를 말지 뭣하러 자리 펴고 누웠나 싶다. 그게 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습성 때문에 가능한 일 아니냐고? 그건 모르겠다.
이제는 좀 쉬자고 한다. 열심히 일한 당신 (휴가) 떠나라, 부추기는 광고도 있었다. 그런데 이 광고 역시 며칠 안 자고 죽기 살기로 만든 작품이다. 느림의 미학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건 비가 와도 느릿느릿 걸었던 조선 시대 양반들이나 하던 짓이다. 빨리빨리와 미리 당겨서 하는 습관, 우리의 천성이고 굳이 고칠 필요 없는 기질이다. 문제는 빨리빨리가 아니라 뛰는 방향이다. 지난날 우리는 국가 어젠다라는 것을 통해 방향을 잡고 뛰었다. 지금은 어디로 뛸지 모르고 무작정 뛰거나 포기한 채 멍하게 서 있다. 멍은 멍청과 같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