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기 클린UCC 대표.

인터뷰 장소인 경기 부천의 한 오피스텔에 도착해 복도를 걷고 있는데 인터뷰 대상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 방향으로 걷다가 왼쪽 끝 사무실로 들어오세요.” 그와 인사를 나눈 뒤 ‘오피스텔 안에서 밖에 있는 기자의 위치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어봤더니 “CCTV로 봤다”고 했다. 하도 자신을 해코지하러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복도에 개인용 CCTV를 달았다는 것이다. 젊은 남성 여럿이 몰려와 문밖에서 “식물인간을 만들겠다”며 난동을 피운 적도 있다고 했다. 인터넷 방송 BJ(진행자)들이었다.

유영기(41) ‘클린UCC’ 대표는 많은 인터넷 방송 BJ들에게 ‘공공의 적(敵)’으로 통한다. 2007년 설립한 시민단체 ‘클린UCC’는 인터넷 개인방송 유해·음란 콘텐츠를 감시하고 고발하는 일을 한다. 말이 ‘단체’지, 상근 직원은 유 대표 혼자다. 지금까지 10년 동안 유 대표가 문화체육관광부, 여성가족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에 직접 찾아간 횟수만 스무 번이 넘고, 고발한 BJ는 50여명에 이른다. 그가 “미성년자를 데리고 음란방송을 한다”고 검찰에 고발해 감방살이한 BJ도 있다. 그에게 ‘당한’ BJ와 음란 콘텐츠를 즐기던 팬들은 인터넷에서 종종 그에게 욕설과 저주를 퍼붓는다. 그러면 유 대표는 그들을 경찰에 고소한다.

하루에도 수천 개의 인터넷 방송이 생기고 없어지는 요즘, 그는 왜 이런 ‘피곤한 삶’을 사는 걸까. 유 대표는 “상식을 지키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인터넷 방송은 개인이 비교적 간단한 촬영 장비로 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실시간 띄우고 불특정 다수가 이를 소비하는 신종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이다. 여기서 활동하는 유명 BJ(Broadcasting Jokey·방송 진행자)들은 100만명이 훌쩍 넘는 고정 애청자를 거느리면서 그들이 ‘격려차’ 모아주는 유료 아이템을 현금화해 돈을 버는데, 억대 연봉자가 수두룩하다. 국내 인터넷 방송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약 3000억원, 활동하는 BJ만 1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비교적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데다 콘텐츠가 자극적일수록 더 많은 돈이 모이기 때문에 탈법과 탈선이 난무하지만, 정부 감시망이 걸러내기엔 역부족이다.

“(인터넷) 인기 방송 몇 개만 둘러봐도 뭔가 정상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게스트를 불러다 성희롱하는 방송, 불법 도박 사이트를 버젓이 홍보하는 방송, 자신의 머리에 간장을 들이붓고 게스트와 서로 뺨을 때리는 가학 방송, 여성 BJ가 ‘가장 돈 많이 내는 시청자와 데이트를 해주겠다’고 공언하는 사실상의 성매매 방송…. 이런 막장 방송들이 변방이 아닌 주류(主流)가 된 것이 현실입니다.” 실제 방심위가 작년 ‘유해 콘텐츠’ 제보를 받아 심의한 인터넷 방송 건수는 680건으로 재작년의 4배가 넘었다.

유 대표 본인도 유명 인터넷 방송 BJ 출신이다. 1998년 군 제대 이후부터 줄곧 인터넷 방송을 해 왔다. 원래는 라디오 DJ가 꿈이었다. 먹방(음식을 먹으며 하는 방송), 게임 중계방송, 사연 청취 방송 등을 해 왔고, 2000년대 초중반 동시 시청자수 6000~7000명을 헤아리는 인기 BJ로 2007년엔 대표적 인터넷 방송사인 ‘아프리카TV’에서 대상(大賞)을 수상하기도 했다. ‘클린UCC’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게 그 무렵이었다. “정상에 서 보니 업계의 문제점들이 속속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그는 말했다.

요즘 인터넷 BJ들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지능적이 됐기 때문에 기존 법규로는 한계가 있다고 유 대표는 강조했다. “음란 방송의 경우, ‘떴다방’식 군소 인터넷 방송사를 제외하면 이제 대놓고 벗는 건 많이 줄었습니다. 그러나 유명 남자 BJ가 신인 여자 BJ 여러 명을 게스트로 초청해 술을 먹이고 음담패설을 하는가 하면, 벌칙이라며 섹시 댄스를 추게 하고 엉덩이를 때리는 일명 ‘합방(合房)’ 방송이 성행합니다.” 이런 권력형(型) 성희롱 방송은 기존 음란 방송보다 오히려 더 나쁜 측면이 있지만, 이를 규제하는 법규는 전무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신인 여자 BJ들을 뒤에서 ‘공급’하는 이른바 ‘보도 엔터(테인먼트)’ 업체들도 생겨났다고 한다.

인터넷 BJ가 생방송에 지체장애인을 등장시켜 욕설을 퍼붓는 장면.

BJ들의 도 넘은 ‘장난’이 그대로 전파를 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장난이라고 하지만, 객관적으로 말해서 범죄입니다. 수천 명이 지켜보는 생방송에 장애인을 등장시켜 그 면전에 ‘넌 길거리에서 손가락질 받는 씨X 장애인이야’라고 말하는가 하면, 술을 먹고 도로에서 역주행하는 장면이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방송되기도 합니다.” 자극적일수록 채팅으로 환호하고 유료 아이템을 사주는 시청자들 때문에 인터넷 방송은 기본적으로 자정이 어렵다는 것이 유 대표의 입장이다. “중·고교생들이 이런 방송을 보며 ‘유명 BJ 되는 방법’을 검색해 봅니다. 이건 이미 거대한 생태계가 됐어요.”

유 대표는 지난 2010년 뜻을 같이하는 사람 2명과 함께 ‘뉴커’라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개설했다. ‘뉴커’ 운영진은 매주 이슈가 된 인터넷 방송 BJ 사건·사고를 기사로 올리고 방송 시청자들의 제보를 받는다. “작은 커뮤니티고, 저희가 제대로 된 기자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지만, 누군가는 해야 될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지난 7일에는 뉴커에 ‘단독 기사’가 올라왔다. 아프리카TV의 대표적 BJ인 ‘철구’가 과도한 욕설 방송으로 방심위로부터 30일 이용정지 권고 처분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철구는 아프리카TV가 작년 말 주최한 BJ 시상식에서 수천 명의 BJ 중 대상을 받은 인물이다. 철구 방송의 동시 시청자수는 수만 명 단위다. “수시로 방심위 관계자와 통화하던 와중에 알게 된 사실”이라고 유 대표는 말했다.

‘클린UCC 활동이 공익을 위한다곤 하지만, 결국 타 BJ들에 대한 견제나 비방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만약 경쟁에서 이기고 돈을 벌고 싶었다면 애초에 이런 돈 안 되는 (방송 정화) 활동을 시작했겠냐”고 반문했다. “제가 올해로 41살인데, 초등학생 조카가 있습니다. 나름 ‘1세대’ 인터넷 방송인으로서 조카 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으려고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그의 한 달 수입은 ‘전성기’ 때의 10분의 1 수준이라고 한다.

인터뷰 끝에 실제 방송을 흉내 내달라고 부탁해봤다. 1초 만에 멘트가 후루룩 튀어나왔다. “어제도 BJ ○○가 기초생활수급자 비하하는 방송을 해가지고 네이버 실시간 스타가 됐습니다. 방송으로 사과를 했다고 합니다. 담배를 피우고 탕수육을 먹으면서. 15분 정도. 우리나라 기초생활수급자가 160만명이라고 하는데, 우리도 어렵게 되면 정부 도움받을 수 있잖아요. 그런 걸 가지고 비하 발언을 합니까 그래.” 방심위 직원들에게 유 대표에 대한 인물평을 부탁해 봤다. “유명인”, “여러 의미에서 대단한 분”이라는 답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