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뱀장어가 ㎏당 3000만원인데…. 불법인 줄 알면서도 잡을 수밖에요."
지난 16일 오전 4시 50분쯤 전북 군산시 해망동 동백대교 인근 바다. 8t짜리 어선 한 척이 정박한 채 그물을 쳐 놓고 있었다. 군산해양경비안전서 소속 형사기동정 p-132호(28.8t)가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어선에 올라가 실뱀장어 불법 조업을 하는지 수색했다. 선장 김모(67)씨는 "그물을 걷어 올리는 장비가 고장 나 수리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계도 위주의 단속을 하던 해경은 더 추궁하지 않고 물러났다.
그러자 김 선장은 해경과 동행했던 기자에게 "사실은 실뱀장어를 잡고 있었다"면서 "해경이 오기 전에 (실뱀장어를) 뭍으로 실어 나르는 다른 작은 배에 넘겼다. 이렇게 하면 2~4월에 월 1500만원에서 3000만원까지 수입을 올린다"고 털어놨다. 김 선장의 배 주변엔 비슷한 어선들이 10여척 더 있었다. 김 선장은 "다들 벌금 낼 각오를 하고 (실뱀장어를) 잡는다"고 했다.
실뱀장어 한 마리 가격은 1700~2000원 선이다. 1㎏에 3000만원 정도다. 지난 2008년엔 1㎏당 1억원 가까운 가격에 거래된 적도 있다. 현재 금 1㎏ 시세가 4400만원 정도다. 실뱀장어 가격이 이처럼 비싼 이유는 아직 인공부화에 이은 양식 기술이 초기 단계이기 때문이다. 국립수산과학원이 지난해 실뱀장어를 인공부화해 성체(成體)로 키워 알을 낳게 하고, 여기서 부화한 실뱀장어를 다시 성체로 키우는 데까진 성공했다. 그러나 대량생산 기술은 2020년쯤에나 개발할 수 있을 전망이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자연 부화한 실뱀장어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필리핀 인근 바다 수심 300m에서 부화한 실뱀장어는 8개월쯤 해류를 타고 우리나라로 온다. 금강·영산강 등 서해안의 강 인근에 도착했을 땐 5㎝쯤으로 자란다. 국내 음식점에서 파는 뱀장어(민물장어)는 대부분 자연산 실뱀장어를 잡아 양식장에서 7~10개월간 60~70㎝ 정도로 키운 것이다. 자연 상태에서 부화해 성체까지 자라는 민물장어는 전북 고창의 풍천 장어 등 10% 안팎에 불과하다. 뱀장어는 산란 철엔 다시 우리나라에서 3000㎞ 떨어진 필리핀 바다로 가서 알을 낳는다.
실뱀장어 수급은 해마다 들쭉날쭉하다. 남획이나 해양 환경의 변화로 어획량 변동이 심하기 때문이다. 2015년엔 전체 실뱀장어 유통량 1만3200㎏ 중 7800㎏(59%)을 필리핀·미국·중국 등에서 수입했다. 군산 지역의 실뱀장어잡이는 동백대교에서 금강 하굿둑 쪽으로 3㎞쯤 올라간 지정 구역에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회유(回游) 습성이 있는 실뱀장어가 바다에서 금강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미리 막고 불법 조업하는 어선들이 많다. 매해 2월부터 5월까지 금강 하굿둑과 가까운 전북 군산과 충남 장항 사이 폭 1.5㎞의 바다를 실뱀장어잡이 배 100여 척이 점령한다.
해경은 지난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불법 행위를 52건 단속했다. 해경은 작년에 100여 척의 어선이 200만마리의 실뱀장어를 불법 포획해 50억원의 부당 이익을 올린 것으로 추산한다.
실뱀장어 불법 조업을 하다 적발되는 어민은 3년 이하의 징역과 3000만원 이하의 벌금 처분을 받는다. 그런데 300만~500만원의 벌금형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해경 관계자는 "법원에서 불법 실뱀장어 어선에 대해선 생계형 범죄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