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야단법석 온다. 기운은 따뜻하고, 대지는 푸르고, 산천은 붉고, 노란 꽃으로 찬란하다. 봄이면 한민족은 붉은 진달래나 하얀 배꽃을 전(煎)으로 지진 화전(花煎)을 먹었다. 봄의 화사함을 혀로, 내장으로 옮겨 봄을 만끽했다.
화전의 대표는 진달래화전이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1849년)'에는 삼짇날(음력 3월 3일)에 '진달래꽃을 따다가 찹쌀가루와 반죽하여 둥근 떡을 만들어 참기름을 발라 지진 것을 화전이라 한다'고 해 진달래화전을 봄 화전의 대명사로 들었다. 허균도 '도문대작(屠門大嚼·1611년)'에서 한양의 봄 시식(時食)으로 두견화전(杜鵑花煎), 즉 진달래화전을 꼽았다.
진달래화전을 먹으며 꽃놀이하며 노는 것을 '전화음(煎花飮)'이라 했는데 '남녀가 노래 부르고 춤추며 길거리에서 큰 소리로 떠들면서 태평 시대의 즐거운 일이라고 불렀다.'(조선왕조실록 1457년 4월 22일) 진달래가 늦게 피는 북에서는 진달래화전을 초파일(음력 4월 5일) 전후로 즐겼다.
조선 시대 봄날 최고의 시식이었던 진달래화전은 '고려 시대 돈이 없는 정승이 딸을 시집보낼 때 두견화(진달래)를 송이째 소금에 약간 절여 꽃이 상하지 아니하도록 곱게 기름에 지져 대접하면서 생긴 음식 문화'(1939년 1월 5일 자 동아일보)라는 속설도 있다. 화전은 주로 찹쌀에 반죽해 먹었지만 메밀로 만든 경우도 있었다.
진달래화전을 먹으며 봄을 낭만적으로 만끽하던 문화는 지금은 조금 낯설게 되었지만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성행했다. '화전은 봄철에 가장 적당한 음식인 만큼 진달래화전보다 더 좋은 화전은 없다고 하여도 무방합니다.'(1935년 4월 11일 자 조선일보) 지금도 통영에서는 쑥과 진달래를 같이 부쳐 먹는 진달래쑥화전이 유명하다.
입력 2017.03.2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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