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공언(公言)이 공언(空言)으로 변하는 이유
리더의 거짓말보다 더 심각한 리더의 '헛소리'

직장인 유머가 있다. 능률을 강조하는 리더일수록 능률을 올리지 못하고 리더십없는 리더가 리더십을 늘 입에 달고 다닌다. 가족같은 조직문화를 강조하는 조직일수록 가축 내지 사축(社畜)으로 홀대하는 경우가 많더라는 현장 조크다. 잉어빵에는 잉어가 없듯이 뭔가를 과잉강조하는 리더, 조직문화일수록 정작 그 해당요소가 결핍됐더라는 것을 빗대서 하는 이야기다.

예전에 몇몇 제과업체의 제품들이 함량미달인 채 질소만 빵빵하게 채워 포장, 소비자 불매파동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언행불일치 리더역시 함량미달의 과대포장형이다. 과대포장 제품은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으로 응징한다. 언행불일치의 리더에게 조직 구성원들은 침묵과 냉소로 저항한다.

대표적인 막말 리더 미국 대통령 도날드 트럼프. 리더의 말은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무게를 갖는다.

기업 코칭을 나가보면 리더들은 한결같이 구성원들의 적극적 참여와 능동적 변화를 요구한다. 막상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조직 침묵의 씨앗’ ‘변화의 장애물’은 리더의 언행불일치다. 허위든, 허세든 공약을 남발하고 뒷감당, 마무리 안하는 리더에게 실망한 아픈 경험을 토로한다. 이들 불신리더는 공약 이행을 요구하는 구성원에게 미안해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때는 그때고 이때는 이때다. 눈치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같은 리더가 연초엔 미래먹거리 프로젝트라고 적극장려하다가 연말에는 ’돈먹는 하마‘사업이라며 매서운 레이저 눈총을 쏠 때 구성원들은 아연실색한다. 아예 리더 자신이 한 말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의도든 아니든 리더의 공언(公言)이 공언(空言)으로 변하는 사태가 반복될수록 리더의 말발은 급전직하, 힘을 잃는다. 조직엔 불신의 침묵이 강이 되어 흐른다.

◆ 장을 지진다거나 목숨을 내놓겠다 등이 대표적인 헛소리

흔히 ‘리더의 불신’ 언행불일치하면 거짓말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저명한 도덕철학자인 해리 G. 프랭크퍼트(Harry G Frankfurt) 프린스턴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거짓말보다 헛소리가 더 문제라고 경고한다. 그는 저서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에서 참말 외에 거짓말과 헛소리를 별도 구분한다.

참말의 구성요소는 진정성과 정확성이다. 거짓말은 두가지 다 갖추지 않은 채 주도면밀하게 위장한 경우다. 헛소리는 사실의 정확성은 떨어지는 반면 의도를 진정성으로 포장한 경우다.(사실은 어떻든 발화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거짓말이 허구를 진실로 위장한다면 개소리는 허당, 허세를 진정성으로 포장한다.

프랭크퍼트 교수는 “거짓말보다 헛소리가 더 큰 적”이라고 위험성을 경고한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적어도 본인의 말로 진리를 감추기 위해서라도 진리와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위한 최소한의 사전 노력과 존중을 보여준다. 반면 헛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진정성 만능주의 사고를 가져 진실과 사실확인에 대한 책임감도, 일말의 죄책감도 없다. 진리에 대해 처음부터 무관심하다.

거짓말은 발각나면 모욕과 분노로 가차없이 시비곡직의 심판과 그에 따른 도덕적 비판을 받는다. 반면에 헛소리는 ‘아니면 말고’식으로 대응하면 되니 ‘안전’(?)하다. 심하게는 “‘웃자’고 한 이야기를 ‘죽자’고 달려들면 곤란하다”는 식으로 어깨 한번 으쓱하면 그만이다. 이같은 관용적 안전풍토가 ‘아니면 말고식’ 헛소리를 양산하는 풍토를 만든다는 지적이다.

하긴 주위에서 흔히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사회의 저명인사들이 ‘부인에게 죄가 있다면 총으로 쏴죽이겠다’거나 ‘분신자살하겠다. 목숨을 내놓겠다’의 막말퍼레이드가 잇따른다. 그 이후 말수습이나 반성, 성찰은 커녕 ‘누구 좋으라고’의 적반하장 해명을 내놓는 것은 진정성에 대한 나름의 오도된 자신감 때문이다.

◆ 사기진작 차원의 선한 의도도 결과 증명 없으면 헛소리

분위기를 선동하는 허세 막말 못지 않게 문제되는 것은 허당의 포장발언이다. 예전에 한 취업포털이 직장인 대상으로 ‘CEO의 거짓말’을 조사한 일이 있었다. 그 때 1위로 꼽힌 것이 ‘이 회사는 여러분들 것입니다’가 25.2%로 1위였다. 이어 ‘내년 한 해만 더 고생하자’(21.1%), ‘연봉 못 올려줘서 늘 미안해’(13.9%), ‘우리 회사는 미래가 있다’(12.3%), ‘올 연말에는 두둑한 봉투 주고 싶은데’(7.6%) 등이 뒤를 이었다.

비록 사기진작차원의 선한 의도였겠지만, 이것이 번번이 구두선으로 끝나 앞다르고 뒤다를 때 리더의 말은 헛소리(프랭크퍼트교수의 분류에 의하면)로 변한다. 믿을 신(信)을 보라. 사람 인(人)과 말씀 언(言)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의 말은 모름지기 진실되어야 한다는 뜻이 함축돼있다. 동서고금, 사람답지 않은 말은 의미조차 담기지 않은 동물의 소리에 비유된 게 공통적이다.

한자에서 은(狺)은 개 견(犭)에 말씀 언(言)이 붙어 개소리란 뜻이다. 동양 한자의 개소리에 해당하는 서양문화권의 영어는 bullshit, 직역하자면 소똥(같은)을 싸는 소리다. 영어어원 사전에선 bull은 소로, 소똥처럼 냄새 난다, 영양가가 제거돼 쓸모없는 것이란 뜻이 함축돼있다. shit은 ‘배설물을 싸다’로 생각하지 않고 여기저기 내갈기는 의미다. 모두 ’개가 되어, 소가 되어‘ 생각없이 영양가없는 말을 뇌까린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정장공은 ‘자신의 말’을 지키기 위해 신의 한수를 생각해낸 군주로 유명하다. 그의 친모 무강은 산통(産痛)을 심하게 겪은 나머지 장남인 장공을 미워하고 차남 공숙단만을 편애했다. 어머니는 장남을 핍박하는 것만으로 모자라 급기야 작은 아들과 공모해 반역까지 꾀한다. 장공은 화가 나 ‘황천에 갈 때까지(죽을 때까지) 어머니를 보지 않겠다“고 공언한다.

◆ 뱉은 말을 책임지려고 할 때 구성원들은 믿고 따른다

곧 후회했지만 말을 지키지 않으면 신하들에게 불신받을 것이고, 말을 지키면 불효가 되는 진퇴양난의 고민에 빠진다. 결국 그는 ’황천‘이란 인공샘을 파 거기에서(죽지 않고도) 모친을 만나는 ’신의 한수‘로 문제를 해결한다. 말도 지키고, 모자 화해도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눈여겨볼 점은 신의 묘수 그자체가 아니다. 자신이 한 말에 어떻게든 책임을 지고 지키려고 한 자세다.

리더의 말의 무게는 ‘자리’가 아니라 실행과 이행과 충실한 수행으로 측정된다. 의도의 진정성, 상황의 변화만을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는 것은 핑계다. 예로부터 리더가 “말하기를 신중히 했던 것은 ‘말하기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말만큼 실행하기’가 어려워서”다. 무신불립(無信不立), 믿음이 없으면 일어서기 힘들다. 신뢰를 매일같이 외치는 당신, 혹시 당신은 잉어없는 잉어빵은 아닌가. 약속하지 말고 증명하라. 그보다 먼저 스스로 돌아보라. 지금 당신은 헛소리를 하고 있는가, 진짜 말을 하고 있는가.

◆ 리더십 스토리텔러 김성회는 ‘CEO 리더십 연구소’ 소장이다. 연세대학교에서 국문학과 석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언론인 출신으로 각 분야 리더와 CEO를 인터뷰했다. 인문학과 경영학, 이론과 현장을 두루 섭렵한 ‘통섭 스펙’을 바탕으로 동양 고전과 오늘날의 현장을 생생한 이야기로 엮어 글로 쓰고 강의로 전달해왔다. 저서로 ‘리더를 위한 한자 인문학’ ‘성공하는 CEO의 습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