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인터넷매체 '인사이트'가 독일 간식 '하리보(HARIBO)'에 들어가는 젤라틴(Gelatin)이 돼지 껍데기와 돼지 뼈로 만들어진다는 '충격적 보도'를 했다. 사실 글쓴이가 충격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해당 기사 제목부터 '충격적 보도'라 하니 일단 그런 걸로 해 두자. 참고로 기사 본문에도 "네티즌들이 '하리보의 충격적 진실을 마주했다'는 반응을 보이며 깜짝 놀라 했다"는 대목이 들어있다.

여하간 처음엔 '순대 알고 보니 돼지 내장으로 만들어' '선지해장국 건더기 대부분 동물 피로 밝혀져'와 비슷한 보도이니, 이러다 말겠지 하고 넘기려 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이 기사는 페이스북이나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퍼져 나갔고, 많은 이들에게 정말 '충격'을 주고 있었다.

'하리보 충격보도' 이후 한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글과 댓글들.

이대로 뒀다간 애들 안심 먹거리 하나가 억울하게 죽창 맞고 스러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측은지심이 든 관계로, 이 글을 빌어 하리보를 안심하고 먹어도 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글쓴이 기사가 늦어 이미 반품되거나 버려졌을 하리보들에게는 삼가 조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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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기자는 하리보와 상관없는 사람이다. 하리보는 조선일보 문 뭐시기라는 기자가 있는지도 모를 게다. 아마도.

재료가 젤라틴인 게 뭐가 나빠

앞서 말했듯, 하리보를 만들 때 쓰는 물질은 '젤라틴'이다. 변성 단백질의 일종으로, 분자량 1만5000∼2만5000 정도인 불균일 물질이다. 젤라틴은 돼지 껍데기와 뼈에서 추출한 '교원질(膠原質)'을 물에 녹인 뒤 끓여 만든다. 교원질이 뭔가 하면, 피부 탄력에 도움이 된다며 화장품이나 영양제에 듬뿍 넣는 바로 그 물질, '콜라겐(Collagen)'의 다른 이름이다. 즉 돼지 껍데기와 뼈를 바로 가공해 하리보로 만드는 게 아니라, 콜라겐 성분만을 뽑아내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사실 '동물 껍데기와 뼈를 쓴다'는 이야기가 매우 불안할 수도 있다. '광우병' 파동도 있었으니. 그러나 '논란의 소'와 달리, 돼지에서 나온 물질이 사람에게 해를 미친다는 연구나 보고는 아직까지는 없었다. 오히려 피부 미용에 좋다며 족발을 찾아 먹거나 돼지 껍데기를 얼굴에 붙이는 사람이 적잖은 판이다. 채식주의자나 알라를 섬기는 가문이 아닌 이상, 하리보를 먹을 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혹여나 '돼지'가 더럽다 생각해 충격받은 분은 없길 바란다. 아이에게 돼지고기를 먹이지 않는 집이라면 모르겠지만. 돼지 껍데기나 뼈는 고깃집이나 뼈해장국, 돼지국밥 집에서도 멀쩡히 쓰는 식재료다. 더군다나 젤라틴은 '끓이는' 공정을 거치며 자연히 한 차례 살균도 된다. 열을 받아도 사는 균이 있다고는 하는데, 그렇게 치면 고기나 내장 등도 문제인지라 껍데기와 뼈만 걱정할 일이 아니게 된다.

간혹 '공업용 젤라틴'을 쓸 우려가 있다며 거부감을 표하는 분도 있는데, 이는 의료용 에탄올을 거론하며 소주를 마시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공업용 젤라틴이라는게 따로 있긴 한데, 식품에 사용될 일은 없다. 아무리 질 나쁜 소주라도 의료용 에탄올에 물을 섞어 파는 제품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혹시 하리보에서 공업용 젤라틴이 나온다면 그 때 분노해도 늦진 않다. 멀쩡히 식용품을 쓰는데 그게 돼지 껍데기라는 이유만으로 미리 화 낼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래도 돼지 대신 우뭇가사리(한천)나 곤약 등 식물성 재료를 쓰면 되지 않느냐 물으실 분도 있겠다. 하지만 식물성 재료로 만든 젤리는 대개 식감이 묵이나 푸딩에 더 가깝다. 즉, 하리보 특유의 씹는 맛이 살지 않는 것이다. 굳이 젤라틴 없이 그에 맞먹는 감촉을 내려면 화학품을 써야 하는데, 그렇게 만든 하리보가 돼지 껍데기나 뼈보다 건강에 더 좋을 것 같진 않다.

젤라틴은 독성이 없기 때문에, 하리보 말고도 쓰이는 곳이 많다. 젤리나 마시멜로우는 물론, 캡슐 약 껍데기를 만들 때도 사용된다. 중국집에서 큰 맘 먹고 '샥스핀'을 주문했을 때, 상어 지느러미 대신 젤라틴으로 만든 대체제가 나올 확률도 있다. 물고기를 잡아먹어 몸에 수은이 축적된 상어보다 젤라틴을 쓰는 게 건강에 더 좋다는 쪽도 있다. 젤라틴에 지방이 전혀 없다는 점을 이용해 물과 젤라틴으로 포만감을 내는 '젤라틴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도 있다.

하리보는 배신자가 아닙니다

여하간 하리보는 우리를 배신한 적이 없다. 못 먹을 재료를 쓴 것도 아니고, 그나마도 거기서도 우리가 애용하는 '콜라겐'을 뽑아 가공해 만들었을 뿐이다. 하리보 제조사가 젤라틴을 쓰지 않는다 하며 혹세무민한 적도 없다. 단지 선정적인 언론 기사가 우리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정 젤라틴이 마음에 걸린다면 소포장 제품을 사먹자. 하리보 Goldbären 10g짜리 소포장 제품에는 젤라틴 없이 녹말만 들어간다.

걱정할 건 따로 있다

사실 되려 걱정해야 할 건 하리보 첨가물보다 하리보의 '단단함'이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지난 2004년 젤리를 먹다 질식사고를 당한 아이가 한 해에 셋이나 나와 사회 문제가 됐었다. 어른과는 달리 삼키는 힘이 약한데다 목구멍이 가늘어 단단한 젤리에 목이 메기 쉬운 것이다. 아이에게 하리보를 먹일 땐 잘게 자르거나 전자레인지에 5~10초 정도 돌려 부드럽게 만들어 주도록 하자. 곁에서 지켜보며 꼭꼭 씹어먹도록 지도해 주는 것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