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느껴지던 3월 첫 주말 오후에 후배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신랑인 후배는 약간 긴장한 듯한 표정으로 입구에 서서 하객들을 맞고 있었다. 말쑥한 턱시도 차림이었다. 새벽같이 준비에 나선 그는 아마도 떨림과 어색함, 설렘과 흥분이 뒤섞인 묘한 기분으로 그 옷을 입었을 것이다. 늘 보던 후배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니 과연 옷은 날개인가 싶었다.

1지난달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흰색 턱시도로 멋을 낸 ‘라이언’의 데브 파텔. 2군더더기 없이 가장 정석에 가까운 턱시도 차림을 보여준 ‘핵소 고지’의 앤드루 가필드. 3가슴에 러플(물결 모양 주름)을 넣은 셔츠로 화려한 느낌을 준 ‘라라랜드’의 라이언 고슬링. 42007년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과의 만찬에서 이브닝코트를 입은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턱시도를 입고 식장에 들어서는 신랑을 볼 때마다 '턱시도는 야회복(夜會服)의 약장(略裝)이라서 낮에 하는 결혼식엔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을 떠올린다. 말인즉 맞는 얘기다. 남자의 예복(禮服)은 낮에 입는 모닝코트와 저녁 이후에 입는 이브닝코트로 나뉘고, 다시 모닝코트의 약식인 디렉터스 슈트(director's suit)와 이브닝코트의 약식인 턱시도로 구분된다. 한국의 결혼식은 보통 점심시간에 열리니 모닝코트나 디렉터스 슈트를 입어야 맞는다. 모닝코트도, 디렉터스 슈트도 없는 나는 결혼할 때 일반 양복을 입었다. 신부 웨딩드레스를 고르면 사은품처럼 같이 빌려주는 턱시도를 입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런 잣대가 현실엔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하는 건 격식을 제대로 갖춘 예복이 이제 한국 남자들의 선택지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 퇴화(退化)를 상징하는 사건이 국가 원수가 더 이상 예복을 입지 않게 된 일이다. 원래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도 취임식이나 주한 외국 대사의 신임장 제정과 같은 중요 행사 때는 예복을 입었다. 그러다가 보통 사람을 자처하며 취임식에서 일반 정장을 입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 이후로 예복이 차츰 사라지기 시작한다.

대통령의 예복이 정책적 차원에서 자취를 감춘 건 김영삼 전 대통령 때부터다. 취임 후 총무처에서 발표한 '대통령 의전행사 간소화 방안'에 외국 정상과의 공식 만찬에서 대통령이 턱시도를 입지 않는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김 전 대통령은 민자당 대표 시절 다들 양복을 입고 참석하는 청와대 행사에 혼자만 연미복(燕尾服)을 입고 간 적도 있었다고 한다. 연미복은 남자가 갖출 수 있는 옷차림 중에서 가장 격(格)이 높은 예복으로, 국빈 만찬과 같은 행사에서만 드물게 입는다. 행사를 마치고 드레스코드를 잘못 전달한 김기수 수행실장을 호되게 나무란 일이 유명하지만, 이제는 한국에서 거의 사라진 연미복이 당시만 해도 청와대 행사의 드레스코드로 통용됐음을 보여주는 일화이기도 하다.

예복은 분명 평범한 옷은 아니다. 지난달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남자 배우들이 턱시도의 향연을 펼치는 동안 미국의 한 문화평론가가 "턱시도를 입는 건 의복의 모습을 한 혐오 발언"이라고 독설한 것은 그런 맥락에서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반(反)이민 행정명령에 대한 항의가 빗발친 행사에서 서구 상류사회의 옷을 차려입고 뽐내는 것은 모순이라는 얘기다.

그렇다 해도 대통령이 예복을 거부한 일은 아쉬움이 남는다. 대통령이 예복을 입지 않으면 과연 보통 사람이 될까. 대통령의 예복을 한국에도 남성복의 법식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상징으로 남겨둘 수는 없는 일이었을까. 여성 대통령의 패션에 지나치게 높은 관심을 기울였지만 남자 대통령의 옷에는 어떤 의미도 두지 않고 예복은 그저 허식으로 치부해버린 것은 아닐까. 외국이라고 해서 국가수반이 아무 때나 예복을 입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본에선 지금도 내각이 출범할 때 총리가 각료들과 모닝코트 차림으로 기념촬영을 한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행동으로 유명했던 '텍사스 카우보이'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조차도 백악관을 방문한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과의 만찬에서 이브닝코트를 입었다.

‘골드핑거’에서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아 흰색 턱시도를 멋지게 소화했던 숀 코너리(위). ‘대부’에서 검은 턱시도 차림으로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과시했던 말런 브랜도.

예복 문화가 사라진 한국에서 턱시도란 '일반 양복보다 더 힘을 준 어떤 옷'을 의미하는 것 같다. 결혼식장에서 광택이 번쩍번쩍한 '턱시도'를 볼 때면 약간 서글퍼진다. 턱시도는 변칙의 여지가 거의 없는 이브닝코트보다는 자유로운 옷이다. 제임스 본드가 흰색 턱시도를 멋지게 입었고 브라운이나 미드나잇 블루 컬러의 턱시도 재킷도 클래식에 포함된다. 하지만 '은갈치 양복'이 품위 있는 슈트가 되기 어렵듯 이런 옷은 엄격함과 정중함이 생명인 예복과는 거리가 있는 것들이다.

피천득의 수필 '나의 사랑하는 생활'에는 "나는 삼일절이나 광복절 아침에는 실크해트를 쓰고 모닝을 입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될 수 없는 일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국가적으로 의미를 기리는 날에 최대한의 경의를 옷차림에 담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영화 '대부'(1972) 도입부의 결혼식 장면에서 돈 콜레오네(말런 브랜도)도 턱시도를 입었다. 찾아오는 이마다 그 손등에 입을 맞추는 '패밀리'의 수장이지만, 막내딸을 결혼시키는 혼주(婚主)로서 성장(盛裝)을 하고 손님을 맞은 것이다. 라펠에 꽂은 붉은 꽃송이 모양 부토니에는 강렬한 포인트인 동시에, 턱시도가 흑백 대비를 극대화하는 옷이라는 점을 실감하게 해준다.

여기까지 읽으신 독자라면 대부분 생각하실 것이다. "평범한 한국 남자가 예복 입을 일이 얼마나 된다고?" 역설적으로 바로 그 점이 핵심이다. 예복은 일상적이지 않기 때문에 특별하고, 한 번을 입더라도 격식을 갖춤으로써 예의와 존중을 드러내는 옷이다. 실제로 우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 초청받은 할리우드 배우도, 암흑가의 보스도 아니다. 그래도 가장 특별한 모습으로 나서야 할 일생의 '결정적 순간'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기 마련이다.

턱시도 바지엔 벨트 없어… 복대 같은 커머번드 착용

디테일과 액세서리

턱시도 입을 일은 평생 한 번뿐일지도 모른다. 그 한 번의 기회를 대충 입고 날려버린다면 아깝지 않을까.

재킷 광택 있는 소재인 새틴이나 그로그랭으로 라펠을 장식한다. 바지 옆 솔기에도 새틴·그로그랭 소재의 좁은 띠를 댄다.

셔츠 끝을 삼각형으로 접은 '윙 칼라'〈사진〉와 일반적인 깃 모양의 '턴다운 칼라' 모두 가능하다. 여름용 티셔츠에도 쓰이는 피케(pique) 소재로 만든다.

커머번드 턱시도 바지는 벨트를 하지 않기 때문에 재킷 단추를 열면 허리 부분이 드러난다. 이를 가리기 위해 조끼를 입거나 복대 형태의 커머번드〈사진〉를 착용한다. 커머번드의 주름은 위쪽을 향하도록 한다.

구두 광택이 강한 '페이턴트 레더' 소재 구두가 기본. 특히 턱시도용으로 만든 페이턴트 슬립온〈사진〉을 '오페라 펌프스'라고 부른다. 잘 닦은 일반 옥스퍼드 슈즈도 신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