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쯤 체벌을 한 적이 있다.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30㎝짜리 플라스틱 자를 들고 아이 방에 들어갔다. "거짓말은 정말 나쁜 거야. 손바닥 맞아야겠어. 몇 대 맞을래?" 아이는 한 번도 맞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손바닥을 맞는다는 게 어떤 통증을 수반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열 대요"라고 답했다. 물어본 내가 깜짝 놀랐다. 열 대? 아무리 플라스틱 자로 때린다 해도 열 대는 너무 많은 것 같은데…. 그러나 아이와 협상해서 정해진 체벌을 수행한다는 의미로 일단 한 대를 때렸다.

아이는 자지러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아픈 모양이었다. 아이는 데굴데굴 구르며 "안 맞을래요. 안 맞을 거야" 하고 소리쳤다. 나는 "네가 열 대 맞겠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아홉 대 더 맞아야 돼"라고 말했으나 막무가내였다. 열 대를 한 대로 깎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빌다시피 아이와 얘기해서 석 대로 깎아줬고 그 매는 모두 때렸다. 그 이후로 한 번도 아이에게 체벌을 한 적이 없지만, 아이는 지금도 "그때 맞았던 매가 너무 아팠다"고 기억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그 석 대의 체벌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황순원 소설 '소나기'를 교과서에서 배웠다. 국어 선생님이자 담임이었던 분이 물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소녀의 성격은 어떻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손을 들고 답했다. "섹시합니다." 선생님이 바로 말했다. "나와." 엉덩이 다섯 대를 맞았는데 별로 아프지 않았다. 그 뒤로 내 별명은 '섹시'가 됐다. 그 선생님은 졸업식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야 섹시, 소나기 주인공이 섹시한 건 맞다, 그렇지?" 우리 세대에 체벌이 매번 나쁘지는 않았다.

후배가 아내와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들은 꽃으로도 때리면 안 돼"라는 말을 했다. 곁에서 놀고 있던 다섯 살짜리 아들이 말했다. "아빠, 고추로 어떻게 때려?" 아이들은 몽둥이로도, 플라스틱 자로도, 꽃으로도, 고추로도, 상추나 깻잎으로도 때리면 안 된다. 사랑의 매란 없다. 아이를 때려서 다스리겠다는 것은 부모로서 무능함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