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여줘. 네가 얼마나 미친 녀석인지 보여주라고."

권투선수 비니 파지엔자의 실화에서 착안한 영화‘블리드 포 디스’에서 주연을 맡은 마일스 텔러(왼쪽)와 코치 역의 에런 엑하트.

오는 16일 개봉하는 권투 영화 '블리드 포 디스(Bleed for This·감독 벤 영거)'에서 전설의 돌주먹 로베르토 두란과 맞붙게 된 '비니 파지엔자'(마일스 텔러)를 향해 코치 '케빈'(에런 엑하트)이 이렇게 소리친다. 코치 말처럼 파지엔자는 1년여 전에 일어난 교통사고로 권투 선수에게는 치명적인 목 골절 부상을 입었다. 다들 '걷기조차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지만, 파지엔자는 두개골에 나사 4개를 박아서 고정하는 수술과 재활 훈련 끝에 기적적으로 링에 복귀했다. 두란의 사정없는 연타에 1회부터 다운당하고, 7~8회부터는 말 그대로 온몸에서 피가 흐르는 혈투(血鬪)가 벌어진다. 하지만 파지엔자는 12라운드 경기를 끝까지 버틴 끝에 판정승을 거둔다.

이 영화는 1980~1990년대 권투 챔피언이었던 파지엔자의 실화(實話)에 바탕을 뒀다. 실제로 파지엔자는 도로에서 마주 오던 차와 정면충돌하는 교통사고를 겪었지만, 말 그대로 생사(生死)를 건 재활 훈련 끝에 두란과 챔피언 결정전을 벌여 승리했다. 현실에서 두란과는 사고 3년 뒤인 1994~1995년 두 차례 맞붙었지만, 영화에서는 극 전개상 사고 이후의 복귀전으로 압축해서 보여준다. 영화는 머리에 고정된 나사를 빼는 순간 굳은살이 함께 떨어지는 바람에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까지 비추면서 파지엔자가 겪어야 했던 육체적 고통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주인공 파지엔자 역할을 맡은 마일스 텔러는 전작 '위플래시(Whiplash)'에서 성공을 향한 열망 때문에 스승과 정면 대결을 불사하는 재즈 드러머 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드러머에 이어서 재활 의지에 불타는 권투 선수까지 도전적 배역을 골라서 맡는 점도 이채롭다. 드럼과 권투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철저하게 육체적이고 리듬이 중요하며, 무엇보다 근성이 필수적이라는 점일 것이다.

영화 속 인터뷰에서 파지엔자는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라는 말이야말로 내가 들었던 가장 큰 거짓말이다. 사람들은 그런 말로 우리를 포기시키려고 한다"고 말한다. 이 대사에서 배우의 치열한 승부 근성이 선수의 굳은 결의에 포개져서 함께 들려오는 것만 같다. 어쩌면 우리는 영화마다 천의 얼굴을 보여줬던 '로버트 드니로의 재래(再來)'를 목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선수들의 육신과 주먹이 맞부딪치는 권투 장면에서 근접 촬영과 원경(遠景)을 부지런히 교차시킨다. 선수의 무릎이 꺾이고 링 위에 드러눕는 순간 모든 소리를 함께 정지시키는 편집 방식도 무척 교과서적이다. 영화는 스포츠물과 휴먼 드라마를 넘나들면서도 별다른 과장이나 변칙 없이 정공법으로 일관한다. 이처럼 정석(定石)에 충실한 전개를 통해 영화는 '록키' 시리즈와 '성난 황소(Raging Bull)' 등 1980년대 권투 영화에 대한 향수를 일깨운다. 과감한 대머리 변신은 물론이고, 똥배가 튀어나온 체형과 말투까지 모조리 바꾼 코치 케빈 역의 에런 엑하트도 최고의 조연(助演)이다. 이 남자가 배트맨 시리즈 '다크 나이트'에서 정의의 검사 '하비 덴트'였다고 누가 쉽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