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권력 장악을 위해 나라 분열까지 서슴지 않는 리더들. 세상은 너무나도 무서운 모습으로 변하는데,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국민. 우리를 무시하고 조롱하는 주변 강대국들…. 1, 2차 산업혁명을 놓쳐 나라까지 잃게 된 구한말 이야기가 아니다. 역사는 언제나 반복된다는 마르크스의 예측이 옳았던 것일까? 그것도 처음에는 비극으로 그리고 두 번째는 코미디로 말이다.

마르크스는 농업을 기반으로 한 왕정(王政)이 상인 위주의 자본주의 사회로 교체되었듯 자본주의 사회 역시 프롤레타리아 독재 사회로 진화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의―결국 수많은 전쟁과 비극의 원인이 되어버린―믿음은 어디서 온 것이었을까? 역사는 자연의 법칙과 같은 규칙을 따른다는 프리드리히 헤겔과 잠바티스타 비코의 철학이 그 믿음의 기반이다. 이탈리아 철학자 비코는 인류의 역사를 신의 시대, 영웅의 시대 그리고 인간의 시대로 구분한 바 있다. 헤겔 역시 역사는 우연의 결과가 아닌 변증법적(dialectic) 과정으로 진화하는 세계정신(Weltgeist)을 통해 필연적으로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 분장한 배우 알렉 볼드윈이 4일(현지시각) 방송된 코미디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에서 악령의 모습을 한 스티븐 배넌 수석 전략가의 말을 듣고 있다.

역사는 과연 필연의 결과일까?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이 지식의 한계였던 18, 19세기 지식인들에겐 당연한 가설일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필연적 역사론을 믿기엔 21세기 우리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프랙털 이론, 복잡계, 뇌과학, 행동경제학… 등을 통해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그런데 최근 역사의 필연성을 또다시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바로 트럼프 정부 핵심 인사인 스티븐 배넌 백악관 수석 전략가가 믿고 있는 '세대 전환 시스템' 덕분이다. 아마추어 역사학자 윌리엄 스트라우스와 닐 하위는 미국의 역사가 80년마다 대변혁 기회를 가져다준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또 다른 세대 전환 시기이기에 이제 미국과 세계의 역사를 본질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다. 트럼프 정부를 이해하려면 배넌을 이해해야 하고, 배넌의 전력을 예측하려면 우리도 스트라우스와 하위를 이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