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에 따라 달라 보이는 게 사람이다. 지인들은 나를 상당히 남성적인 사람으로 본다. 격렬한 스포츠를 좋아하고 젊은 날엔 폭탄주도 호기롭게 마셨다. 영화도 '대부' 같은 조폭 영화나 '지옥의 묵시록' '디어 헌터' 같은 전쟁 영화를 즐겨 본다. 목소리까지 굵다. 어디 가서 교수라고 하면 성악과 교수냐고 질문해 온다. 감미로운(?) 중저음이다. 하기야 아득한 시절, 미팅을 하면 목소리를 핑계로 '애프터'를 신청해 오는 경우가 곧잘 있었다. 사관학교를 갔으면 군인으로 꽤 성공했을 것이라고 주변에서 얘기한다.
어떤 지인들은 나를 상당히 유치한 사람으로 본다. 성숙한 어른답지 않게 치기 어린 장난을 좋아한다. 산행을 함께하는 제자들은 제발 놀라게 하지 말아 달라고 미리 부탁해 온다. '그러마' 하고 막상 대답했지만 긴장감이 풀어진 틈에 나무 막대기를 던지며 "뱀이야!" 고함쳐 그들을 혼비백산하게 한다. 심지어 눈물을 글썽이는 여학생도 있다. 너무 곤혹스러워 나 자신을 질책한다. 그러나 이듬해 산행에도 어김없이 '뱀'은 출현한다.
나의 이 같은 유치한 행동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곰곰 생각해 본다. 답은 모르겠다. 다만 가요보다 동요를 콧노래로 흥얼거리는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짐작할 뿐이다. '과꽃' '꽃밭에서' 등등의 동요는 여전히 마음속에 살아 있다. 마호가니색 풍금에 맞춰 불렀던 노래들이 어제같이 생생하다.
그 많은 노래 중 짧은 노래 하나가 최근 가슴에 와 닿았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맑고 맑은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다. 곡조가 단순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노래를 흥얼거리다 벼락같이 깨친 게 있다. 토끼가 맑은 물을 더럽히기 저어해 그냥 물만 먹고 간다는 구절 때문이다. 그렇다. 세상을 살아갈 땐 최소한의 예의와 품격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지금 한반도에는 산토끼보다 못한 사람들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