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밝게 빛나리라! 이 한 몸 찢기고 상하여도 마지막 힘이 다할 때까지 가네, 저 별을 향하여…."

'전설의 테너' 호세 카레라스(71)는 월드투어 '음악과 함께한 인생'의 서울 공연에서 자신 안에 뜨겁게 일렁이는 정열과 감성, 마음속 모든 감정을 노래로 증명해 보였다.

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나비넥타이를 맨 카레라스가 천천히 걸어나오자 2400여 청중은 열렬한 환호로 그를 맞았다. 그칠 줄 모르는 박수에 목례를 세 번 한 뒤에야 입을 연 카레라스는 왕년의 그가 아니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전성기 때의 아찔하리만큼 섬세했던 미성(美聲)은 아니었다. 나폴리 민요 '5월이었네'를 첫 곡으로 평소 리사이틀에서 즐겨 불렀던 '방울새'와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이룰 수 없는 꿈'까지 1부를 채운 그의 소리는 두꺼운 나이테를 둘러 단단하면서도 심지가 굳었다. 3년 전 내한 때보다 중후하고 깊은 맛이 났다.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테너 호세 카레라스(오른쪽)가 조지아 출신 소프라노 살로메 지치아와 함께 클래식 메들리를 열창하고 있다.

카레라스는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라고 했지만 생애 마지막 무대인 것처럼 정성을 다해 열창했다. 이날 프로그램 구성은 그가 팬들에게 하고픈 말과 일치했다. '나 세상에서 오직 그대만을 사랑해, 그대만을 영원히 사랑하오'(그대를 사랑해)부터 '그대는 내게서 멀어질수록 나는 더욱 그대를 가깝게 느낀다오. 그대는 내 혈관에 달콤한 독을 넣었소'(열정)까지 그가 고른 노래들엔 여전히 꿈을 꾸고 변함없는 자태로 무대에 서고 싶어 하는 칠순 노장의 바람이 녹아 있었다. 특히 2부에서 레온카발로 오페라 '팔리아치'의 아리아 '의상을 입어라'를 부를 땐 유랑극단 단장 카니오가 분노와 절망에 휩싸여서도 공연을 위해 얼굴에 분칠하는 심정을 처절하게 그려냈다. '스리 테너'로 세계를 누비던 시절이 겹쳤다. 기립 박수에 신이 나 앙코르만 네 곡을 불렀다. 그중 첫 곡은 무대 뒤 합창석을 향해 바쳤다. 노래하는 뒷모습에 그의 순수하고 따뜻한 성품이 묻어났다.

이날 공연은 일반 티켓만 2100장이 팔려나가며 전 석 매진을 기록했다. 카레라스의 대형 사진이 실린 포토존과 포스터 앞은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팬들로 붐볐다. 객석엔 젊은 관객도 많았지만 여느 공연보다 50대 이상 중·장년층이 눈에 많이 띄었다. 꽃다발을 받은 카레라스가 장미 한 송이를 빼내어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여성 바이올리니스트에게 건넸다. 한 시대를 풍미한 거장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내한 공연을 음미하기 위해 찾아온 이들에게 카레라스는 잊지 못할 순간을 안겨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