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1일 모바일 게임 '원더히어로 for Kakao'가 서비스를 종료한다. 아마 독자 대부분은 이름조차 낯설 것이다. 지난해 8월 23일 출범해 고작 221일을 버틴 게임이기 때문이다.
사실 1년도 못 가 녹아내리는 'for Kakao' 계열 게임은 한둘이 아니다. 딱 봐도 모 애니메이션 이름을 비벼 넣은 '진격의 여친 for Kakao'는 개장 363일 만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핑거파이터 for Kakao'는 세상 빛을 본 이래 관뚜껑 닫기까지 253일이 걸렸다. 구구단에 대전(對戰) 액션을 접목한 게임이었다는데, 뭔 혼종이었을지 짐작도 안 간다. '브레이브헌터 for Kakao'는 2015년 6월 서비스를 시작해 10월에 문 닫는 다이나믹한 운영을 선보였다. 워낙 이렇게 단명한 게임이 많아 일일이 언급하기엔 여백이 부족하다.
이름도 모를 카카오 게임 흥망이 뭐 대수냐 싶겠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길 일만은 아니다. 공들여 잘 만든 게임이 서둘러 셔터를 내리는 경우는 드물다. 런칭 후 1년도 되지 않아 호적 파이는 게임이 많다는 건, 그만큼 모바일 게임 시장에 완성도 낮은 상품이 쏟아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처럼 단명하는 게임이 범람하다 보면 어느 순간 시장 전체가 단박에 무너질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그런 사례가 실제로 있었다. 게임사(史)에 유명한, '아타리 쇼크(Atari Shock)' 사건이다.
◇겜알못이 초래한 재앙
우주명작 갓게임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북미에 발매된 1980년 이래, 미국 비디오게임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 중심엔 스티브 잡스가 1974년 입사해 잠시 일했던 것으로도 유명한 게임기 개발회사 '아타리'가 있었다. 당시 쏟아져 나온 게임 대부분이 이 회사에서 개발한 게임기 '아타리 2600'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창기엔 아타리 2600에서 돌아가는 게임을 아타리에서만 만들었다. 요즘으로 치면 아이폰 게임을 애플에서만 만든 셈이다. 미친듯이 크는 시장을 독점하니 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타리가 게임팩(카트리지) 껍데기에 쓰레기만 꽂아 팔아도 100만장은 나갈 거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아타리는 떼돈을 벌면서도 정작 게임 산업의 핵심인 '개발자' 대우에 소홀했다. CEO 레이 카사르(89·1978부터 5년간 아타리 CEO 역임)가 문제였다.
그는 능력 있는 경영자였다. 상태가 영 좋지 못했던 아타리 2600을 손봐 북미 최고 인기 게임기로 만들고, 일본 인기게임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아타리에 이식해 대박친 게 모두 그의 공로였다.
하지만 게임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었다. 섬유업계 출신인 그는 게임 질과 상관없이 마케팅만 좋으면 장사가 잘된다는 문과스러운 사고관의 소유자였다. 또 회사 내에서 맥주 마시고 마리화나 빨며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들을 혐오스럽게 여겼다. 사실 이는 아타리 창립자이자 전 CEO인 놀런 부슈널이 개발자들의 창의력을 북돋기 위해 허락한 것이었지만, 게임에 관심이 없는 카사르가 보기엔 그저 미친 짓일 뿐이었다.
사람 닦는 천 만들던 회사에서 온 사람답게, 그는 게임 개발자들을 "수건 디자이너나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라 부르며 통제했다. 정장에 넥타이 차림으로 출근할 것을 명하고, 게임 크레딧에서 개발자 이름을 빼게 했다. 결국 개발자들은 야성과 개성을 잃고 아재들 밑에서 덧없이 갈려나가게 된다.
참다못한 일부 개발자들은 아타리를 뛰쳐나가 새 직장을 찾거나 아예 스스로 게임회사를 세웠다. 그리고 직접 게임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참고로 예나 지금이나 콘솔 게임을 만들려면 원칙적으로 콘솔 하드웨어를 만드는 회사로부터 라이선스 허가를 받아야 한다. 물론 이들은 아타리 허가 없이 게임을 만들었고, 자연히 소송에 휘말리게 됐다. 하지만 결국 게임 제작은 자유롭게 하되, 약간의 로열티를 아타리에 내는 선에서 합의가 이루어졌다.
라이선스 문제가 일단락되자 실로 별의별 잡종들이 게임계로 기어들어왔다. 오트밀, 그러니까 곡식으로 죽 만드는 회사에서도 게임을 찍어냈고, 음반회사가 게임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딴 사업으로 밥숟가락 뜨던 회사가 갑자기 게임에 손대 봤자 제대로 된 물건이 나올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CEO 대부분은 게임을 돈벌이로만 봤을 뿐 게임 문화 자체를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잘 팔리는 게임을 베끼고 섞기에 바쁠 뿐이었다. 모바일 게임 태반이 삼국지 아니면 판타지인 어떤 동방의 나라와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참고로 이 시기 비디오 게임 업계에서 가장 융성했던 장르 중 하나가 포르노 게임이다. 음탕한 씬만 어떻게든 연출하면 스토리나 게임성 따위는 신경쓰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별다른 기술 없이 게임업계에 비집고 들어온 업자들도 비교적 손쉽게 게임을 뽑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차츰 참신함도 철학도 없이 잡스러운 콘텐츠만 넘쳐나는 비디오 게임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1982년 3월 아타리가 발매한 '팩맨' 1200만개 중 500만개 이상이 재고로 남거나 반품된 것이 그 징조 중 하나였다.
◇폭☆망
1982년 말, 파국이 도래했다. 그 해 12월 초, 아타리가 4분기 매출액 전망을 10~15% 선으로 발표한 것이 계기였다. 물론 저 정도도 결코 낮은 수치는 아니다. 하지만 아타리 경영진들이 그간 "50%는 족히 상승한다"고 떠들어 오던 게 문제였다. 발표 직후 아타리 소유사인 워너 커뮤니케이션즈는 물론, 아타리 게임 관련사 주식이 몽땅 폭락한다. 이를 시작으로 게임업계에 대공황이 몰아쳤다.
급속히 숨져가던 게임업계에 마무리 죽창을 박은 게 'ET'였다. 아타리가 크리스마스 시즌 특선으로 출시한 게임으로, 정말 못 만들어서 전설 반열에 올랐다. 플레이 후 현자타임이 온 사람이 많았는지, 팔린 팩 중 80%가 반품됐다 한다. 이 게임을 기점으로 아타리 계통 비디오 게임은 소비자 신뢰를 거의 상실했다. 게다가 애당초 공급과잉 상태였던 게임시장이 돌연 성장을 멈추자, 게임 관련 상품 가격이 폭락했다. 종전엔 개당 30달러에 팔던 게임 카트리지를 고작 2달러에 넘기는 눈물의 똥꼬쇼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이후 미국 비디오 게임 업계는 추락을 거듭했다. 1982년 30억 달러에 달했던 시장이 1985년 1억 달러 규모로 쪼그라든다. 3년 만에 시장 97%가 증발한 셈이다. 이것이 바로 '아타리 쇼크'의 전말이다.
잘 모르고 무식한 사람들이 헤드를 장악하면 이렇게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주변에서 겜알못이 게임을 우습게 보고 업계에 함부로 발을 들이려 하면, 조국과 민족의 미래를 위해 참교육을 시켜 주도록 하자.
◇게임에 무지한 투자자가 문제다
물론 아타리 쇼크 한방에 미국 게임계가 절멸하진 않았다. 문제는 거의 무주공산이 된 시장을 외래종이 잠식했다는 것이다. 아타리 쇼크로 미국 게임업계가 바닥을 친 1985년, 일본 닌텐도가 북미에 발을 들였다. 이들은 세력을 불려나가면서도, 아타리와 달리 라이선스 관리를 엄격히 해 자질이 부족한 업체가 닌텐도 이름으로 저질 게임을 만드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 미국은 수십년간 일본에 게임 시장을 유린당했다. 당시 북미에선 '닌텐도를 하다'가 '게임을 하다'와 동의어로 쓰일 정도였다.
'for Kakao'로 대표되는 한국 모바일 게임 시장에도 쇼크가 온다면, 비슷한 꼴이 날 가능성이 크다. 물론 3년에 걸쳐 시장이 거의 날아간 뒤에야 일본이 끼어든 아타리 쇼크와는 달리, 시장 크기는 유지되면서 외래종 게임이 점유율을 파먹어 들어가는 양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여하간 결과적으로 게임 주권 태반이 외국에 넘어간다는 점에선 마찬가지겠지만.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16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한국 모바일게임 시장 규모는 3조4844억원이다. 자칫하면 이 시장이 외국에 산 채로 먹힐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넓고 게임은 많다. 당장 지금만 해도 일본에서 온 게임 '섀도우버스'나 중국산 게임 '아이러브니키' 등, 국내에서 인기를 끄는 외산 모바일 게임이 벌써 꽤나 있다. 국산 게임 품질 개선이 시급한 이유다.
아타리 쇼크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게임업계의 질적 하락은 게임을 문화가 아니라 돈으로 보는 경영진이나 투자자 탓이 크다. 개발자야 독창적인 게임을 만들고 싶지만, 제작 허가를 받으려면 돈벌이가 된다고 설득해야 하니, 기존에 흥행한 돈 벌리는 요소를 잔뜩 비벼 넣을 수밖에 없다. 이러다 보니 요즘 나오는 게임은 한 꺼풀만 벗겨내면 대개 비슷비슷해지는 것이다.
게임으로 돈 버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돈에만 집착하면 되레 아타리처럼 죽창을 맞고 나가떨어질 수 있다는 걸 이해해 주면 좋겠다. 부서지는 둥지 속에 든 알은 무사하기 어렵다. 게임업계가 무너지면 경영진이나 투자자 역시 큰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지속 가능한 돈벌이를 위해서라도, 깊이 고민해 봐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