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낙상 사고가 불행의 신호라는 걸 그때는 전혀 몰랐어요."
권경혁(47)씨가 어머니를 낙상 사고로 잃은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2014년 78세였던 그의 어머니는 집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손목이 부러졌다. 어머니는 수개월간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렸고 거동이 느려지더니 어느 날 건널목을 건너다 차에 치였다.
아들 권씨는 후회와 상심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 낙상 사고 관련 논문과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국은 낙상 사고 빈도가 높지만 예방 시스템은 사실상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14년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낙상률은 25%이고 연간 낙상 횟수는 2.3회다. 낙상으로 사망하는 경우는 13%, 낙상으로 인한 치료비 등 사회적 비용은 약 1조1000억원에 이른다.
리서치 회사에서 일하던 권씨는 한국 최초의 낙상 사고 예방 전문 업체를 차리기 위해 직장을 그만뒀다. 친구들은 '전례가 없는 사업이 될 리 없다'며 하나같이 말렸다. 17년 경력의 시장조사 전문가인 권씨 생각은 달랐다. 노인 의료기 시장에서 어떤 제품이 주목받는지 알고 있었다. 노인 인구 증가로 사업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낙상 사고에 취약한 독거 노인은 전국적으로 140만명에 달한다. 권씨는 현장 조사를 위해 봉사활동을 다녔다. 2015년 크라우드 펀딩으로 400만원을 모아 서울 성북·양천구 독거 노인 100가구에 안전 손잡이를 부착했다. 화장실 변기 옆 벽면에 붙이는 안전 손잡이는 앉고 일어서는 걸 도와주며 낙상을 막아준다. 그는 "사례비를 받지 않는다고 말씀을 드렸는데도 제 뒷주머니에 만원권을 찔러 넣어주시던 할아버지 모습에 코끝이 찡했다"고 했다.
권씨는 지난해 5월 '해피에이징'을 설립했다. 서울노인복지센터 등과 함께 경로당을 중심으로 낙상 사고 예방 캠페인을 벌이고 전문가 조언을 받아 제작한 '낙상 사고 예방 지침서'를 복지관 등에 무료로 나눠준다. 이 지침서엔 야외보다 집 안에서 발생하기 쉬운 낙상 사고 예방법과 함께 신체활동능력 점검표가 담겨 있다. 해피에이징은 지난해 12월 서울시와 보건복지부의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됐다.
고비도 있었다. 사업을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나도 수익이 나지 않자 일을 돕던 사람들이 이탈하기 시작했다. 아내 고은아(41)씨가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다. 갑작스럽게 사업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나 반년간 생활비를 벌지 못할 때도 "잘될 거라 믿으니 사회에 꼭 보탬이 돼 달라"고 격려했다. 권씨는 20년 전 대학 시절 야학에서 아내를 처음 만났다.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어르신들의 검정고시 준비를 도우며 사랑을 키웠다.
권씨는 "어머니 기일(忌日)이 될 때마다 '어머니 같은 노인분들 돕기 위해 지금까지 이런 일을 했습니다'라고 마음속으로 알려드린다"며 "꾸준히 활동하면 젊은 세대도 캠페인에 동참하고 낙상 예방에 대한 복지 정책도 만들어질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