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펑 우회상장 첫날 선전거래소 시총 1위기업...BYD 메이디 BOE 제쳐
창업자 왕웨이 재산 마화텅 넘어...순이익 경쟁 3개사 합한 것보다 많아
중국 최대 택백업체 순펑(順豊)이 질주하고 있다. 선전 증시에 상장된 딩타이신차이(鼎泰新材)를 통한 우회상장 절차를 끝내고 순펑이라는 이름으로 첫 거래를 한 24일 주가가 상한가인 55.21위안(약 9385원)까지 치솟으면서 순펑의 시총은 2310억위안(약 39조 2700억원)에 달했다.
선전 증시 시총 1위 기업에 올라섰다. 중국 최대 전기자동차 업체 BYD,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업체 BOE, 중국 대형 부동산업체 완커(萬科), 대형 가전업체 메이디(美的) 등을 모두 제친 것이다.
순펑의 창업자 왕웨이(王衛∙46) 회장은 재산이 1354억위안(약 23조 180억원)으로 불어나며 중국 택배업계 최고 부호가 됐다. 재산 규모가 중국 최대 부동산업체 헝다(恒大)의 쉬자인(許家印) 회장, 중국 최대 인터넷 검색업체 바이두(百度)의 리옌훙(李彦宏)회장을 웃도는 중국 4위 부호로 떠올랐다.
순펑은 27일과 28일에도 가격 제한폭(10%)까지 올랐다. 3거래일 연속 상하가다. 덕분에 왕 회장은 텐센트의 마화텅(馬化腾) 창업자를 제치고 중국 3위 부호에 올랐다. 봉황재경 등에 따르면 순펑이 3거래일만 더 연속으로 상한가를 기록하면 왕웨이 회장은 다롄완다(大連萬達)의 왕젠린(王健林) 회장을 넘어 중국 최고 부호로 등극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를 두고 보호예수에 묶인 주식이 40억주로 유통주는 전체 주식수의 3%를 약간 넘는 수준이어서 쉽게 주가가 영향을 받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통주 시총은 88억위안(1조 4960억원)으로 상한가를 기록한 28일 거래액은 9억위안(약 1530억원)에 불과했다.
상하이 태생이지만 7세에 부모를 따라 홍콩으로 건너간 왕웨이는 고등학교 졸업 후 홍콩 염색공장에서 일하던 청년 염색공이었다. 가난해서 괄시도 받았다고 회고하는 그가 1993년 창업한 순펑의 2016년 순이익은 전년 대비 112.5% 증가한 41억위안(약 6970억원)으로 2위인 중퉁(中通) 28일 발표한 20억위안(약 3400억원)의 2배를 웃돈다. 3~5위 경쟁사를 합한 것보다 많다.
순펑은 중국에 45000여개 지점을 두고, 해외 200여개국을 커버하며, 50기가 넘는 화물기와 15000여대의 화물트럭을 운영하고 있다. 중국의 택배왕이 되면서 왕웨이는 중국 최고 부자 자리까지 넘보는 인물이 됐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馬雲)회장은 그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했다. 기층(基層)에 속한 34만명에 이르는 직원들을 큰 문제없이 관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순펑을 키운 비결은 뭘까. 물론 전자상거래 급증으로 택배수요가 덩달아 늘었기 때문이다. 왕웨이의 경영을 들여다보면 마화텅의 실무중시형 경영과 일본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교세라 창업자 이나모리 가즈오의 불교 경영이 오버랩된다.
22세이던 1993년 광둥성 순더(順德)에 수십평방미터 사무실을 차려놓고 직접 오토바이를 몰며 택배업을 시작한 왕웨이의 성장 비결은 ▲기회에 올라타고 ▲허풍 대신 실무를 중시하고 ▲길게보며 직영점 전략을 고수하고 ▲회장님이 아닌 따거(大哥∙큰 형님)로 직원을 대하고 ▲우연보다 인과응보를 중시하는 불교 경영 정도로 요약될 수 있다.
◆두번 찾아온 기회
왕 회장의 택배와의 인연은 1990년대초 친구 부탁으로 홍콩의 물건을 광둥성(廣東省)으로 배달해주는 것으로 시작됐다. 홍콩의 8만여개 제조공장이 광둥성 등 중국으로 대거 이전하던 시기였다.여기서 택배시장 성장의 잠재력을 읽은 것이다.
아버지에게 10만위안(약 1700만원)을 빌려 창업했다. 가격으로 승부를 걸었다. 경쟁사가 70위안(약 1만 1900원) 받는 걸 40위안(약 6800원)으로 할인했다. 10여명 직원들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며 같이 먹고 잤다. 창업 4년만인 1997년 광둥성을 중심으로 한 주장삼각주의 택배 시장을 독점하다시피했다.
두번째 기회는 중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사스(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가 발발한 2003년에 찾아왔다. 거리에 발길이 끊기면서 전자상거래가 늘었고, 택배수요도 함께 증가했다. 사스 영향으로 항공운임료가 떨어졌다. 때를 놓칠새라 하늘 길을 넓히는 등 사업확대에 박차를 가했다.
5기 비행기를 임대했다. 화물기를 운영하는 중국 1호 민영 택배회사가 된 것이다. 순펑 전용 화물기는 이미 50기를 넘어섰다. 후베이성(湖北省) 어저우(顎州)시에 2020년까지 순펑 전용 공항을 건립하는 방안이 2016년 4월 정부 비준을 받았다. 중국 1호 민영 택배 공항이 되는 것이다. 순펑은 이 공항을 세계 4번째이자 아시아 첫번째 항공물류허브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다.
◆허풍떨지 않는 실무중시 경영
왕 회장은 창업 이후 매일 14시간 이상 일해 ‘가장 돈 많은 일벌레’라는 평가도 받는다. 샤오미(小米)의 창업자 레이쥔(雷軍)회장의 마화텅 회장에 대한 평가와 다르지 않다.“발아래 100억위안이 넘는 부를 갖고 있으면서도 밤새워 컴퓨터 앞에 앉아 연구·개발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마화텅 회장 스스로 꼽은 선전(深圳)상인의 특징인 실무적이고, 허풍 떨지 않고, 일단 얘기를 하면 전력을 다해해는 모습이 왕웨이 회장에게도 나타난다. 마 회장처럼 언론 인터뷰를 꺼리는 등 대외 노출을 극도로 꺼려 ‘신비기업인’으로 불린다. ‘소통’이란 순펑 사보(社報)에도 그의 얼굴사진이 등장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마윈이 면담을 요청했지만 거절한 것은 유명한 일화라고 중국언론들은 전한다.
왕 회장은 상장 이후 직원들에게 함구령 수준으로 입을 무겁게 하라는 주문을 했다. 본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 감시를 받게됐다고 말한 그는 직원들에게 대외에 편한대로 얘기하면 우리 모두 함께 제재를 받을 수 있다며 말은 적게하고 일을 많이하라고 당부했다.
중국 언론들은 왕 회장의 “상장을 원하지 않는다”는 2011년 발언을 거론하며 그의 입장이 바뀐 것은 최근 2년새 중국 택배시장이 2배 규모로 성장할 만큼 급팽창하면서 투입해야할 인력과 자본이 급증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의 목표를 향한 고집스런 경영전략은 직영점 전략에도 나타난다. 순펑은 1999년 다른 택배회사들처럼 가맹점 형식으로 사업을 확장해갔다. 하지만 가격경쟁이 심화되면서 문제가 터져나왔다. 가맹점이 채산성을 위해 재가맹을 받고, 심지어 일부 밀수하는 사례까지 나타났다.
고품질 택배서비스를 보장 하지 않으면 오래 갈 수 없다고 간파한 왕 회장은 가맹권 회수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일부 가맹점주들은 살해 위협까지 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왕 회장은 늘 사설 경호원을 두면서까지 밀어부친 것으로 알려진다. 급기야 2008년 완전 직영체제로 전환한 첫번째 중국 민영 택배회사가 됐다.
상온과 냉온을 유지하는 택배서비스를 통해 첫 의약품 택배를 하고, 생선 냉장 택배도 당일 배송체제로 제공하는 등 중국 택배업을 선도해왔다.
2016년 중국 택배서비스 만족도 조사에서 순펑은 84.6으로 1위를 기록했다. 중국 우정국의 EMS가 80으로 2위, 중퉁(中通)이 76.9로 3위에 올랐다.
◆따거가 된 회장님
24일 선전증권거래소 중소기업판 상장 행사에 참가한 왕 회장 옆에 택배원 한명이 함께 섰다. 2016년 4월 택배 도중 다른 승용차를 긁었다는 이유로 뺨을 맞고 욕까지 들은 택배원이었다. 그는 이날 “따뜻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왕 회장은 이 택배원이 사고를 당한 직후 중국판 카카오톡인 위챗에 올린 친구 공유글을 통해 “(택배원을 때린)이 사건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순펑의 회장이 아니다”고 공언했다. 중국언론들은 대외 발언을 극도로 삼가는 왕 회장의 이례적인 행보로 받아들였다.
왕웨이는 ‘패도(覇道)경영’을 하는 ‘회장님’으로 알려져있지만 따거로서 34만명의 직원들을 대하는 섬세함도 보인다. 요즘도 간혹 직원과 함께 택배 일을 한다. 모든 직원은 양로 실업 의료 공상 생육 등 5대 보험에 가입해있다. 5대 보험 가입이 안돼 외식 배달원으로 전직하는 택배 기사가 늘고 있다는 최근 보도는 순펑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중국언론들은 전했다.
왕 회장은 올 1월 회사 연례대회에서 눈내리는 속에서 도시락을 먹는 택배원의 사진 얘기를 꺼내며 눈물을 훔쳤다. “모든 택배원은 순펑이라는 가정의 아이들이다. 여러분에게 매우 죄송하다”
지난해 옌례대회에서도 왕 회장은 “여러분에게 보여주려는 건 비행기 몇기를 보유하고 있는지, 시장 점유율과 매출이 얼마나 되는지, 업종 1위 여부인지가 아니다”며 “여러분이 행복과 성취를 얻도록 하는 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4일엔 또 순펑 직원들의 훙바오((紅包∙세뱃돈)소식이 중국판 트위터인 시나 웨이보를 달궜다. 상장 기념으로 왕 회장이 훙바오를 쏜 것이다. 입사 1년 이내 직원은 1888위안(약 32만위안), 1~3년 2888위안(약 49만원), 3년 이상 3888위안(약 66만원)이고 공헌도에 따라 추가하는 식으로 해서 1만위안(약 170만원) 이상을 받은 직원도 적지 않았다고 중국언론들은 전했다.
◆우연에 기대지 않는 불교의 인과응보
왕 회장은 창업후 3년째 큰 돈을 만지면서 안하무인격이 됐지만 이 때 부인과 불교가 큰 도움을 줬다고 회고한다. 부인이 틈틈히 찬물을 끼얹으며 왕 회장이 냉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고, 불교를 통해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의 성공은 친시지리인화(天時地利人和)가 함께 겹친, 앞에서 (업보가)쌓인 결과라며 ‘우연’을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건 모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불교에 귀의한 이나모리가 “인생은 운명과 인과응보라는 두가지 법칙으로 이뤄졌다”고 한 대목과 맥이 닿는다.
왕 회장은 “인생에 99%는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고, 통제 가능한 1%는 일을 대하는 태도”라며 “목숨을 걸고 노력을 하다보면 성공여부에 관계 없이 평안한 마음을 갖게될 수 있다”고 말한다.
왕 회장인 단기이익보다는 미래 이익을 강조한다.직원 교육이나 복지와 정보화 등을 위해 지금 투입하지 않으면 단기 이익을 낼 수 있지만 미래의 경쟁력을 갉아먹는다는 것이다.
중국 국가우정국은 지난 13일 택배업 발전 13차 5개년 규획(2016~2020년)안을 발표했다. 2020년까지 연간 처리물량 100억건 이상, 매출 1000억위안(약 17조원) 이상 되는 택배기업을 3~4개 키우기로 했다.
동시에 국제경쟁력과 좋은 평판을 갖는 글로벌 유명 택배 브랜드를 2개 이상 육성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한국의 투자자들도 선강퉁(深港通·선전과 홍콩 증시 교차매매)을 통해 투자할 수 있는 순펑은 정책 수혜주이기도 한 것이다. 순펑이 앞으로도 순풍(順風)에 돛을 단 듯 순항할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