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 한복에 빠지다' 한복진흥센터, 美디자이너 캐롤리나 헤레라와 한복 프로젝트
서양인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나는 한복… 서양식 입체 재단과 한복 평면 재단의 랑데뷰
기성복과 맞춤복 드레스로 점차 유통 확대

서양인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나는 한복. 캐롤리나 헤레라의 스태프가 한복 콜라보레이션 웨딩 드레스를 만들고 있다.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가 1994년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파리패션위크에 진출했을 때, 현지 언론은 그의 옷을 ‘바람의 옷’이라 부르며 극찬했다. 우아하고 고운 선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지만, 동시에 ‘코리안 기모노’라고 소개되는 수모를 겪었다. 당시 이 디자이너는 한 인터뷰를 통해 “코리안 기모노라 불리지 않고 한복이 예쁘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밝혔다.

20여 년이 지났지만, 한복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은 여전히 미비하다. 다양한 지역의 영감이 혼재된 패션계에서도 인접 국가인 중국의 치파오, 일본의 기모노에 비해 활용도가 저조한 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캐롤리나 헤레라, 드리스 반 노튼, 칼 라거펠트, 장 폴 고티에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한복 모티브를 차용한 작품들을 선보이면서 한복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 코리안 기모노? No! 한복,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협업 통해 세계화∙산업화 추진

2015년 5월,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한복을 주제로 한 2015/16 크루즈 패션쇼(Cruise Fashion Show∙휴가나 여행을 주제로 한 패션쇼)를 발표했다.

당시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한복을 재해석한 의상을 선보였다. 금발의 서양 모델들이 까만 가채를 올려 쓰고 색동저고리를 연상시키는 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보면서 반가우면서도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역시 샤넬이다”라는 호평과 “한복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다”는 혹평이 엇갈렸지만,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가 한국의 아름다움을 재조명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졌다.

요즘 경복궁 일대에는 한복으로 단장한 젊은이들이 즐비하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복을 입어보거나 사가는 사례도 부쩍 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복진흥센터가 미국의 유명 패션 디자이너 캐롤리나 헤레라(Carolona Herrera∙78)와 함께한 한복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를 공개해 화제를 모은다.

캐롤리나 헤레라와 한복진흥센터의 협업으로 탄생한 웨딩드레스.

한복 콜라보레이션 사업은 해외 패션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한복 고유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고 한복의 글로벌 시장 경쟁력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복진흥센터가 후원했다. 센터 측은 향후 기성복 라인을 추가로 개발해 오는 9월부터 백화점과 온라인 유통처에서 한정 판매할 예정이다. 가격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1000달러 이하로 책정될 것으로 보인다.

◆ 재클린 케네디, 미셸 오바마가 사랑한 디자이너 캐롤리나 헤레라, 한복에 빠지다

디자이너 캐롤리나 헤레라

캐롤리나 헤레라는 2011년 봄/여름 뉴욕패션위크에서 이미 한복에서 모티브를 받은 수준 높은 패션쇼를 선보인 바 있다. 당시 패션쇼에 오른 외국인 모델들은 한국의 갓을 연상시키는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한복 저고리의 깃과 고름이 활용된 의상을 입은 채 무대를 활보했다.

캐롤리나 헤레라가 6년 만에 한국과 손을 잡고 본격적으로 한복 콜라보레이션 작업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우연히 18세기를 배경으로 한 한국 영화를 본 뒤 한복의 풍부한 색감과 우아함에 매료됐다고 한다. 헤레라는 “한복은 패션 그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의 전통 색과 디테일에 관심이 많았고, 이를 2011년 봄 컬렉션에 반영하기도 했다. 이번 한복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에 함께 하게 되어 영광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캐롤리나 헤레라는 품격 있고 우아한 디자인으로 전 세계 셀러브리티와 퍼스트레이디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미국 패션계를 군림해왔다. 백악관을 떠난 미셸 오바마 전 영부인은 지난해 미국 보그 12월호 표지에서 그의 흰색 드레스를 입었고,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서 딸 이방카 트럼프도 헤레라의 코트와 파티복을 착용했다.

한복 저고리의 깃과 고름, 갓에서 영감받은 캐롤리나 헤레라 2011 S/S 컬렉션

이번 협업에서 캐롤리나 헤레라는 기성복(ready to wear)과 이브닝드레스, 웨딩드레스 등 총 3벌의 의상을 선보였다. 그는 과거 자신의 패션쇼에서 한복을 선(線)을 탐구했던 것에서 한발 더 들어가 한국 고유의 원단과 자수 기법 등을 활용해 다채로운 한복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표현했다.

기성복으로는 한복의 저고리 고름을 벨트로 재해석한 재킷과 A라인 스커트로 구성된 투피스가 제안됐다. 이브닝드레스는 조선시대 당의의 선과 삼국시대의 치마 주름, 진달래 색과 꽃무늬 자수를 활용해 화려함과 우아함을 강조했다. 한국의 전통직물을 사용한 회색 스카프를 둘러 포인트를 줬다.

웨딩드레스에는 저고리의 깃 선과 허리 대대(大帶)를 모티브로 활용했다. 여러 겹의 레이스 원단이 겹쳐진 형태의 스커트 자락에 정교한 비딩 자수 장식을 더해 여성미를 극대화했다.

한복은 본디 평면 패턴으로 제작된다. 그러나 이번 협업에서는 입체 패턴 방식을 적용해 서양식 드레스로 재 탄생했다. 서양의 재단사가 하얀 가운을 입고 한복을 짓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시대정신과 전통의 만남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취재에 의하면 캐롤리나 헤레라 공방의 장인이 만든 한복 웨딩드레스는 오더 메이드 방식으로 주문 제작되며, 가격은 5천만 원대로 판매될 예정이다. 이에 대해 한복진흥센터 측은 협의 중인 사항이라고 말을 아꼈다.

기성복 라인은 추가 개발돼 오는 9월부터 시판될 예정이다.

프로젝트를 총 감독한 간호섭 홍익대 교수는 “이번 콜라보레이션은 8개월의 작업 기간이 소요됐다. 보통 패션쇼 작업이 6개월이 걸리는 것을 고려하면 심도 있는 탐구의 여정이었다. 전통의 가치는 훼손될 수 없는 소중한 유산이다.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난 창조의 순간을 함께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콜라보레이션은 지난 15일 뉴욕 아트앤디자인 박물관에서 열린 쇼케이스를 통해 해외 패션 관계자들에게 소개됐다. 이 자리에 참석한 뉴욕패션위크 창시자 펀 멜리스는 “미국 패션 디자이너 중의 아이콘인 캐롤리나 헤레라를 통해 모던하게 해석된 전통 한복이 매우 아름다웠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