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여자 친구와 만난 지 100일 되는 날과 2박 3일 예비군 동원훈련이 겹친 휴학생 박모(26)씨는 자격증 시험을 신청해 훈련 날짜를 미뤘다. 박씨는 예비군 훈련 기간에 치러지는 비서 2급 시험을 신청했으나 응시하지는 않았다. 박씨는 "친구들도 예비군 훈련 날짜가 여자 친구 생일이나 학교 행사와 겹치면 시험 신청을 해 미루곤 한다"고 말했다.

예비군 훈련을 미루려고 필요 없는 자격증 시험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대학 재학생이 아닌 예비군은 2박 3일간 전방에서 실시되는 동원훈련을 받을 수 있는데 자격증 시험 날짜와 훈련이 겹치면 연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병무청에 따르면 작년 예비군 동원훈련을 연기한 사람은 12만명이었고 이 중 각종 자격시험에 응시한다는 이유를 댄 사람이 28%에 달했다.

자격증 시험으로 예비군 훈련을 미룰 수 있는 방법은 상당히 쉽다. 훈련이 시험 일자와 정확히 겹치지 않더라도 자격증 시험 접수일과 시험 당일 사이에 훈련 기간이 끼어 있기만 하면 된다. 인터넷에는 '되도록 시험 일정이 긴 시험으로 신청하라'는 식의 꼼수가 올라와 있다. 훈련을 미룰 수 있는 자격증 시험 일정 수십 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글뿐 아니라 클릭하면 자격증 시험 신청 페이지로 이어지도록 해놓은 곳도 있다.

자격증 종류나 시험 주관 기관에 따른 제한도 없다. 연 5회 이하로 실시하는 모든 시험이면 연기가 가능하다. 예비군들이 선호하는 자격증 시험은 응시료가 2만원대로 저렴한 데다가 환불도 쉬운 한자 검정시험이나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등이다.

시험을 치렀는지 증명할 필요도 없다. 단지 시험 접수증 또는 수험표만 있으면 연기되기 때문이다. 몇몇 자격시험은 접수 취소 시 응시료 전액을 환불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예비군 훈련을 연기한 뒤 환불받기도 한다. 병무청 관계자는 "실제로 시험을 치렀는지 전수조사를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2박 3일 훈련을 피할 확률이 높다는 것도 이런 현상의 이유 중 하나다. 동원훈련을 미루면 동원 미참가자 훈련 대상자로 재지정되어 출퇴근하며 훈련을 받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휴학생 안모(28)씨는 "굳이 군부대에서 이틀간 자면서 훈련을 받을 필요가 있느냐"며 "집에서 출퇴근하는 훈련으로 바뀌길 기대하며 예비군 훈련을 미룬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사람들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취업 준비생 김모(27)씨는 "입사 시험이나 면접일 직전에 예비군 동원훈련이 걸리면 훈련 가기가 어렵다"며 "그때마다 일일이 사유를 병무청에 설명하기가 번거로워 시험 응시를 핑계로 훈련 소집을 미룬다"고 말했다. 병무청 관계자는 "자격증 시험을 훈련 연기에 악용하는 사례가 많지만 효과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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