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후 서울 한 동물 장례업체. 임정란(51)씨가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시추 '뚱자'의 사체를 장례업자에게 건넸다. 장례업자는 뚱자의 몸을 물티슈로 닦아내며 염을 하기 시작했다. 이어 뚱자를 제단 위에 올린 후 흰색 천으로 덮고 그 위에 꽃 몇 송이를 올렸다. "사랑하는 뚱자야, 우리 모두 너와의 행복했던 추억을 가슴 속에 담고 살아갈게. 다음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 임씨가 뚱자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읽고 향을 피웠다.
뚱자가 화장로(火葬爐)에 들어가자 임씨 딸 원정혜(27)씨가 오열했다. 그는 1년 전쯤 심장비대증 진단을 받은 뚱자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해 왔다. 한 시간여 뒤 뚱자의 유골함을 받아든 원씨는 "전에 키우던 강아지 초롱이는 병원에서 처리해 마지막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다"며 "회사에 휴가를 내고 바로 달려왔는데 마지막 길을 함께할 수 있어서 다행스럽다"고 했다.
장례식장 한쪽에는 앞서 반려견을 떠나 보낸 이들이 적은 편지가 붙어 있었다. "몽이야, 집에만 가두고 나들이 같이 못 가줘서 미안해. 아빠가.", "콩쥐야, 12년 동안 행복했어. 너는 2006년 1월 2일 새벽 내가 쓰러졌을 때 날 구해준 은인이야.", "우리 딸, 나에게 와줘서 고맙다. 영원히 기억할게."
반려견을 키우는 인구가 늘면서 '반려견 장례식'을 치르는 이들이 늘고 있다. 반려견 장례 문화도 사람의 그것을 닮아가고 있다. 반려동물 장례식장에서 가족들과 함께 장례식을 치르고 화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죽은 후에도 49재를 지내 반려견을 추모하기도 한다. 인천에 사는 직장인 양모(27)씨는 11년간 키운 코커스패니얼 '나나'의 49재를 치르는 중이다. 집 한쪽에 안치한 유골함 앞에 평소 나나가 먹던 사료, 간식, 물 등을 올려두고 추모 기도를 한다고 했다. 양씨는 49재가 끝나면 유골을 평소 나나와 함께 산책하던 동산에 뿌려줄 예정이다.
주인의 종교에 따라 반려견 장례 방식도 다르다. 천주교 신자인 최현진(43)씨는 5년간 키운 사모예드 '렉스'가 죽기 직전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직접 세례를 줬다. 최씨는 "전쟁 같은 급박한 상황에서 죽어가는 환자의 경우 성직자가 아닌 사람이 직접 세례를 줘도 된다고 배웠다"며 "정식 세례 절차는 거치지 않았지만 신부님이 '베드로를 위해 기도합니다'라고 말해주니 마음이 놓였다"고 했다. 그는 렉스가 죽은 지 49일째 되던 지난해 8월 27일 저녁 미사에서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봉헌했다고 한다. 경기도에 있는 한 반려견 장례업체 관계자는 "주인이 불교 신자인 경우 영정사진 앞 제단에 불상을 놓고, 기독교·천주교인 경우 십자가를 놓는다"며 "종교에 따라 위패도 다르게 쓴다"고 했다.
반려견이 죽으면 아는 사람들을 불러 함께 추모하는 문화도 생겨나고 있다. 애견인들은 반려견이 죽으면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고 표현한다. 애견 모임 사이트에선 "키우던 ○○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어요"라는 글 밑에 "삼가 고견(故犬)의 명복을 빕니다"라며 다른 애견인들이 추모하는 댓글을 다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서울 대치동에 사는 우현정씨는 얼마 전 보더콜리 '춘식이'를 잃고 장례식을 열었다. 춘식이를 평소 예뻐했던 후배 한 명은 그에게 조의금으로 5만원을 건넸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반려견에게 정서적 유대감을 강하게 느꼈을 경우 강아지가 죽고 나서 극도의 상실감과 우울감을 동반한 '펫로스 증후군'을 겪을 수 있다"며 "추모 행위는 이러한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반려견 장례업체는 호황을 맞고 있다. 서울에 있는 개 장례업체는 수 곳으로 추정된다. 비용은 염습, 화장, 유골함 등을 포함해 20만~30만원 선. 수의나 관을 추가하면 비용이 더 붙는다. 경기 시흥에 있는 한 업체의 반려견 장례 상품은 180만원. 죽은 반려견에게 금사 수의를 입히고 오동나무관에 넣고 생화로 관을 꾸며준다고 한다. 운구 서비스는 물론이고, 유골을 고온 처리해 기념석도 만들어 준다. 경기권에 있는 한 반려견 수목장 업체는 소나무 밑에 납골함을 안치하고 추모비를 제작해 관리하는데 1년에 10만원을 받는다. 서울 원지동에 있는 화장장에서 사람 시신 1구를 화장할 경우 비용은 12만원(서울 시민 기준)이다.
반려견 장례업체 상당수는 불법이라는 지적도 있다. 현재 농림축산검역본부에 정식으로 등록된 동물 장례업체는 22곳이며, 서울 시내에는 전무하다. 서울시 생활환경과 관계자는 "애완동물이 죽었을 경우 가정에서 사체를 처리하는 유일한 방법은 일반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는 것이며, 병원에서 죽으면 의료폐기물과 함께 소각할 수 있다"며 "동물 사체를 함부로 땅에 묻거나 유골을 임의로 강에 뿌릴 경우 법에 위배될 수 있다"고 했다. 한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는 "10년 넘게 키우던 강아지를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는 것은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며 "지자체 등이 나서서 동물 화장장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했다.
'분당 해마루동물병원' 호스피스센터 김선아 센터장은 "2000년대 초 반려동물 붐이 일어났는데 그때쯤부터 키우기 시작했던 개들이 지금 죽음을 앞둔 노령견이 됐을 것"이라며 "호스피스, 장례식장 등 노령견 관련 서비스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