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편리를 한곳에 모아둔 백화점과 쇼핑몰, 복합 문화 공간들이 집 가까이에 생기면서 ‘찾아다니는 맛’을 잃었다. ‘귀차니즘’ 발동으로 탐험심은 마음 한구석에 구겨 넣은 지 오래. 그런데 ‘탐험 DNA’를 자극하는 동네가 있으니 경기도 광주 오포읍 신현리, 그리고 신현리와 마주한 능평리다. 분당 가까이 전원 풍경을 간직한 동네라는 이유로 요즘 빌라촌, 대형 아파트 단지가 우후죽순 생겨나 난개발이 심각하다지만 어수선한 가운데 구석구석 여유와 멋을 간직한 의외의 공간들이 생겨나고 있다. 동네 야트막한 산을 수놓은 하얀 자작나무 숲, 호젓한 산장 같은 카페, 산책로 품은 아담한 갤러리를 찾아다니며 신현리·능평리에서 ‘탐험의 맛’ 즐기기.

신현리가 요즘 들썩인다. 분당 율동공원 지나 태재고개만 넘으면 바로 만나는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신현리는 몇 년 전부터 인근 분당·용인 주민들은 물론, 부동산 업자들을 통해 "강남에서 30~40분이면 닿을 수 있다"고 소문나면서 꽤 번잡해졌다.

타운하우스, 전원주택, 대형 브랜드 아파트가 여기저기 대책 없이 자리 잡았고, 가는 곳마다 '분당권'이라고 쓰인 대형 분양 광고 현수막, 음식점 광고 전단들이 촘촘히 붙어 현기증이 날 정도. 어수선함 속 신호등 없는 삼거리 도로에선 좌회전을 해야 할지, 직진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뒤쪽에 따라오던 거대한 레미콘이 '빵빵'. 인접한 능평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수도권 난개발의 끝판'이란 오명을 얻은 이 동네, 복잡하고 멋없는 동네인가 싶은 이 동네에 아이러니하게도 커피 애호가, 트렌드세터들이 찾아든다. 오포읍의 카페를 '순례'하는 일명 '오포 카페 투어족'이다.

자작나무 숲이 내다보이는 ‘카페인 신현리’.

커피 전문 기업 직영 카페 '빅 3'부터 토박이 운영 카페까지

능평리에 있는 '팩토리670' '오픈앨리커피로스터스'와 신현리의 '카페인 신현리'는 오포 카페 투어의 필수 코스로 꼽힌다. 세 곳 모두 커피 전문 기업에서 직영하는 카페로 커피 맛 하나는 보장된 곳들이다. 손님 중에는 커피를 배우기 위해 찾는 '커피학도'도 적지 않다. 여기에 더해 자연 채광, 감각적인 인테리어로 '사진발 좋은 카페'란 공통점도 있다.

그중 '한국커피'에서 직영하는 팩토리670(031-718-0077)은 1992년 강남구 신사동에서 커피 사업을 시작해 확장 이전 등을 거쳐 능평리 터줏대감 카페로 자리 잡았다. 커피 맛에 내공이 느껴진다. 이재우 팩토리670 주임은 "'올인원 커피 팩토리'란 콘셉트로 생두 수입, 수출, 로스팅, 판매까지 모두 한 건물에서 이뤄지다 보니 손님들도 믿고 마시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카페 내 생두 창고, 로스팅실은 덤으로 구경할 수 있다. 커피 메뉴는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카푸치노, 카페라테 등 기본에 충실하다. 브루잉 커피도 6500~7000원에 맛볼 수 있다. '앤드 다이닝' 셰프였던 장진모 셰프가 메뉴 컨설팅을 해준 브런치도 커피만큼이나 유명하다. 특히 빵은 방사유정란과 유기농 밀가루로 만든다고. '한국커피' 간판을 보고 뒤쪽으로 돌아가야 카페 정문이 나온다.

로스팅전문 회사인 오픈앨리커피로스터스에서 직영하는 카페 오픈앨리(070-4106-7704)에선 신선한 원두로 갓 볶아 내린 커피를 맛볼 수 있다. 매장 안에 로스팅 시설을 갖춰 방문객이라면 누구나 로스팅 시설을 구경해볼 수 있다. 더치커피에 코코넛시럽을 넣은 앨리코코(7000원)와 핑크색 시럽을 넣은 핑크빛 플랫화이트 앨리핑크(6000원), 3가지 커피를 맛볼 수 있는 브루잉 샘플링(1만2000원)이 인기다. 블랜딩한 원두와 더치커피도 판매한다.

'신현리'라는 동네를 알리는 데 일등공신을 한 곳은 '자작나무 카페'란 별칭이 있는 카페인 신현리(070-5073-2424)다. 카페 한쪽 격자창 너머 하얀 자작나무숲이 펼쳐진다. 발품 팔지 않고도 하얀 자작나무 숲과 마주할 수 있으니 강원도 인제의 자작나무 숲 부럽지 않다. 커피 로스터기 기업인 '기센코리아'가 직영하는 이곳에선 커피와 함께 다양한 디저트, 브런치를 맛볼 수 있다. 딸기철인 이맘때면 통 딸기를 쌓아올린 딸기삼층석탑(?)쯤 되는 '딸기타워'(8500원)가 인기. 콜드브루 커피에 포근한 생크림을 얹은 투모로우(7000원)와 곁들여 먹는 사람이 많다.

커피 전문 기업 직영 카페는 아니지만 지난해 6월에 능평리의 수레실 마을 산 중턱에 문 연 작은연못숲(031-718-7475)도 빼놓을 수 없다. 근교 카페의 모범 답안 같다. 산장 같은 외관에 화목 난로와 미니 인디언텐트가 놓인 뒷마당은 '인증샷' 명소. 능평리 토박이 가족들이 운영하는데 1층에선 남동생 양동구씨가 커피를 내리고, 2층 플라워숍에선 누나 양은진씨가 꽃을 만진다. 직접 로스팅해 내리는 커피에 매장에서 바로 구워 내는 빵을 맛보며 마당을 내다보고 있노라면 마음의 여유가 찾아온다. 달달한 커피를 맛보고 싶다면 티라미수커피를 추천. 마당이 내다보이는 1층 자리도, 기다란 벤치가 놓인 2층 자리도 주말이면 만석을 이룬다.

①산장 같은 카페 뒤편에 화목난로와 인디언텐트가 있는 ‘작은연못숲’. ②인테리어 소품 매장에서 나폴리 화덕피자를 맛볼 수 있는 ‘메종뒤샤’. ③아트버거 세트. ④패션문화 공간 ‘ich22’.

산속, 주택가 파고든 복합문화공간들

신현리와 능평리의 핫플레이스 대부분이 찾아가는 동안 '이 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주변 풍경이 초라하거나 외져있다. 아트살롱(070-4111-5524)도 좁은 외길, 비포장도로 등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만 만날 수 있는 '반전 공간' 중 하나. 디자인 컨설팅 브랜드 '밥 앤 알렉스 디자인 웍스'가 산 중턱에 꾸민 이곳은 '올블랙'의 외관부터 압도적이다.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갤러리, 앞쪽으로 편집 매장, 왼쪽으로 카페가 있다. 편집 매장에선 밥 앤 알렉스 및 협업 디자이너 브랜드 제품, 아웃도어 소품, 직접 제작한 리빙 소품, 의류를 판매한다. 아티스트들의 기획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에선 현재 대한민국패션대전에서 수상한 디자이너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이후 갤러리에선 일러스트, 사진 등의 전시가 이어질 예정이다. 카페에선 수제버거인 아트버거 세트(1만6500원부터)가 '핫'하다. 100% 한우로 만든 두툼한 패티를 넣은 햄버거에 프렌치프라이, 샐러드를 곁들여 내는데 주중 40개, 주말 50~60개만 한정 판매한다. 마치 야외에 있는 듯 큼지막한 통창 너머로 멋스러운 한옥 등 주변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타공 거울이 있는 예쁜 파우더룸은 여성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카페인 신현리로 가는 주택가에 범상치 않은 현수막을 건 창고가 하나 눈에 띈다. 패션문화공간 ich22(031-726-1722)이다. 이곳 대표들이 빈 창고를 개조해 직접 꾸몄다는 창고 안으로 들어서면 디자이너 편집숍, 갤러리, 쇼룸, 작업실이 한데 모인 공간이 펼쳐진다. ich22 제품을 비롯해 ich22가 엄선한 제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 가성비 괜찮은 제품이 많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는 문화 이벤트도 열린다. 오는 25일엔 핸드메이드 작가, 마을 주민들과 함께하는 마켓을 열 예정이다.

신현리의 미술관&갤러리카페 현대아트센터(031-698-4775)는 '7000원의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곳. 넓은 마당과 호젓한 산책로에선 미술 애호가인 이곳 대표가 10년 동안 수집해온 심재현·이일호·오상욱·김문규 등 유명 조각가의 작품 20여 점을, 실내 갤러리에선 현대회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야외 작품은 무료, 실내 작품 감상 시 입장료 7000원을 내면 차와 음료, 커피, 간단한 주전부리가 있는 셀프바를 이용할 수 있다. 커피는 참나무 숯가마에서 전통 방식으로 원두를 볶아 핸드 드립으로 내려 제공한다. "산책로에 있는 100년 수령의 진달래꽃이 만발하는 계절에 오면 이곳의 진짜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이곳 대표의 말이다.

①야외 조각공원과 산책로가 있는 ‘현대아트센터’. ②‘메종뒤샤’의 루꼴라 피자. ③수제 가구와 수제 파이를 만날 수 있는 ‘카우리 퍼니처’&‘카우리 파이’. ④산 속 복합문화공간 ‘아트살롱’의 카페.

맛있는 것 먹고, 감각은 덤으로 얻고

빈티지하고 프렌치한 감성으로 가득한 수입 인테리어 소품 매장에서 나폴리식 화덕 피자를 맛볼 수 있는 곳, 신현리의 메종뒤샤(031-719-1703)다. 국내 최초 프랜차이즈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던 '소렌토'의 오픈 멤버이자 '어반가든' 총괄 셰프를 지낸 김인균 셰프가 '맛 담당', 이태원에서 오랫동안 앤틱 가구점을 운영하던 한정화 대표가 플라워 장식, 카페 인테리어 등 '감각 담당'이다. 베스트셀러는 '루꼴라 피자'와 '마리게리따' 피자. 참나무 장작을 때는 화덕에 겉은 바삭, 안은 쫄깃하면서 구수한 맛의 피자를 구워낸다. 이 집 피자는 일반 제품의 3배 가격인 이탈리아산 '카푸토' 밀가루에, '데체코' 올리브오일, 고급 치즈인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를 쓰는데도 가격이 1만8000원~2만원으로 '겸손'하다. 이베리코 하몽을 썰어 넣는 '루꼴라 피자'도 2만원. 펜네 위에 크림소스와 버섯, 레지아노 치즈를 넣은 풍기크림소스펜네 파스타(1만3000원)도 맛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운영하나 카페는 오후 3~5시 브레이크 타임엔 식사 불가, 인테리어 매장만 운영한다.

신현리의 수제 가구 전문점 카우리퍼니처(031-726-0144)는 쇼룸 안에 수제 파이 전문점인 카우리파이(031-726-0145)가 입점해있다. 요즘 유행하는 자연주의 감성의 북유럽풍 덴마크식 '휘게(Hygge, 덴마크어로 따뜻함, 포근함) 스타일' 가구로 꾸민 쇼룸 한쪽에선 주부들이 마치 집 거실 마냥 소파에 편안한 자세로 수제 파이를 즐긴다. 한 조각에 호두·피칸·애플파이 등은 2600~3200원, 타르트류는 3200~4200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