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잡지 모델로 데뷔한 배우 김민희는 KBS 청소년 드라마 '학교2'로 처음 연기를 시작했다. 데뷔 이후 줄곧 평균 이하의 연기로 그저 그런 평을 듣던 그녀가 연기로서 주목을 받은 건 노희경 작가의 '굿바이 솔로(2006)'부터다.

깡마른 몸매과 몽환적인 표정은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감정을 표현하는데 적절했고, 무심한 얼굴과 힘없는 목소리는 극의 극한 분위기를 더해줬다. 그녀만의 신체적 특징과 분위기가 100% 발휘되는 영화에서 이미지와 닿아있는 역할을 연기할 때 빛이 났다. 주로 '위태로운 캐릭터'를 연기했을 때 대중과 평론의 인정을 받았다. 이번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 여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역시 현재 그녀의 상황과 분위기가 그대로 반영된 영화다.

자신의 이미지를 투영해 배우 커리어를 쌓았던 그녀의 작품을 대사를 통해 살펴봤다.

1999년 드라마 '학교2'부터 2017년 최근작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까지 그녀가 연기한 캐릭터들.

학교2 (1999)

1999년 KBS2에서 방영한 청소년 드라마. 출연진 대부분이 지금 톱스타가 되었을 정도로 당시 청소년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드라마에서 김민희는 반항아 신혜원 역을 맡았다. 그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회차는 10회와 11회 '나는 누구인가' 편이다. 반에서 문제아로 찍혀있는 혜원은 학교폭력의 가해자로서 자신의 존재를 고민한다. 과거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던 그녀는 자신을 보호할 방패막으로 폭력 써클에 가입했고 지금은 소위 말하는 '짱'의 위치까지 올라가 있는 상태다.

써클의 아이들과 어울리며 비행과 폭력에 가담하던 그녀는 서서히 아이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 거울 속에 비친 얼굴, 그리고 자신의 예전 모습과 닮은 후배을 보며 그 모습이 정말 자신이 원한 것이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런 그녀의 심리변화를 눈치 챈 예전 친구 신화는 그녀와 함께하는 조별과제에서 혜원에 대한 글을 한편 써온다.

굿바이 솔로 (2006)

김민희에게 '발연기'라는 꼬리표를 떼게 해 준 드라마. 한 인물에 대한 다면적 묘사와 섬세한 대사로 유명한 노희경의 드라마에 김민희가 출연한다는 소식은 방영 전 부터 화제를 모았다. 처음 노희경 작가는 캐스팅할 생각이 없었지만, 몇 번씩이나 찾아와 정성을 보인 김민희의 노력에 결국 그녀를 신미리역으로 낙점했다. 

김민희는 한때 조폭이자 동네 건달 호철을 사랑하는 여자를 연기했다. 다른 이들 앞에서는 할말 다하고, 매사 당당하지만 자신을 뿌리치는 호철에게는 사랑을 갈구하며 매달리는 그녀의 캐릭터는 사랑스럽지만 애처롭다. 결국 자신의 사랑을 거부하고 다른 여자에게 가는 호철에게 그녀는 이별의 순간까지도 이렇게 말한다.

화차 (2012)

스크린에서도 김민희의 연기가 볼만하다는 것을 입증한 작품이다.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의 동명소설 '화차(火車)'를 영화화했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빚 때문에 이러저리 쫓기다 결국 파국을 맞이하는 여자 경선/선영 역을 맡았다. 행복한 결혼을 일주일 앞둔 문호는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에 신부 선영이 갑자기 사라지는 일을 겪는다. 그는 수소문해서 신부의 행방을 쫓는데 알고보니 그녀의 이름과 신분은 가짜였고, 그녀가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미 빚으로 삶이 갈기갈기 찢긴 경선이 빚의 사슬을 끊고 자신이 살 수 있는 방법으로 아무도 찾을 것 같지 않은 여자 선영의 이름을 빌린 것. 숱한 추격 끝에 경선을 겨우 찾아 "날 사랑은 했냐"고 묻는 문호에게 그녀가 내뱉는 대사와 연기가 일품이다. 이 작품으로 김민희를 다시 봤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영화 화차] 이름 훔쳐 타인으로 사는 여인]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2015)

수원에 특강을 위해 내려 온 영화감독 함춘수가 복원된 궁궐에서 윤희정이라는 화가를 만나 일어나는 하루동안의 얘기를 다뤘다. 김민희는 여기서 영화감독 함춘수의 추파를 받으며 설레하는 화가 윤희정 역을 연기한다. 그녀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 품평하고 술 취해 사랑을 고백하고 지인들 앞에서 술주정하는 그를 바라보며 여러 감정을 느낀다. 

영화는 크게 두 파트로 구성돼 있다. 첫번째 파트와 두번째 파트는 같은 사건을 다루고 비슷한 형식으로 전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묘하게 인물의 말과 행동이 달라지면서 결과도 달라진다. 첫번째 파트에서 감독 함춘수가 자신이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시점은 지인들과 다 함께 만나는 자리지만, 두번째 파트에서는 그는 윤희정과 단둘이 있는 술집에서 자신이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영화 마지막에 영화를 보러 들어가려는 윤희정은 특강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함춘수에게 이렇게 말하며 끝인사를 나눈다.

아가씨 (2016)

영국 세라 워터스(Sarah Waters)의 소설 '핑거스미스(Fingersmith)'를 영화화한 작품. 김민희는 이 작품에서 일본인 상속녀 히데코를 연기해 지난해 열린 37회 청룡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어릴 때부터 후견인 고모부 손에 자란 히데코에게 그녀의 재산을 노린 백작과 하녀 숙희가 접근한다. 숙희는 백작과 짜고 히데코의 재산을 가로채려 하지만, 히데코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고 사랑에 빠진다.

서로가 서로를 속여야 하는 상황 속에서 사랑에 빠진 히데코와 숙희는 결국 성적인 학대와 물질을 탐하는 두 남성으로부터 도망치는데 성공한다. 두 여성의 관계는 따뜻하고 격정적이며 아름답지만, 남성의 성은 차갑고 폭력적으로 그려 페미니즘 영화로 극찬 받았다. 히데코는 자신의 인생에 갑자기 찾아와 마침내 해방을 맛보게 해준 숙희를 이렇게 칭한다.

[[영화 아가씨] 폭력 덜고 관능 더한 박찬욱, '칸'의 선택받을까]

밤의 해변에서 혼자 (2017)

이번 그녀에게 베를린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긴 작품. 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모두가 갸웃거리던 연기를 한 그녀가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상을 받을 줄 그녀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그녀는 이번 영화에서 스캔들 소란을 피해 독일 함부르크로 간 여배우 '영희'를 연기한다. 그녀는 홀로 도시를 걷고 지인들과 술을 마시면서 스스로 사랑과 욕망에 대해 질문한다. 영화 속 강릉 장면에서 술자리에 함께한 여배우의 지인들은 "자기들은 그렇게 잔인한 짓들을 해대면서 왜 가만히 놔두지 않고 난리를 치느냐"며 그녀 편을 든다. 그리고 그녀는 홀로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유부남 감독·여배우 얘기로… '베를린 여왕'된 김민희]

배우로서 최고의 커리어를 쌓음과 동시에 불륜이라는 낙인까지 껴안은 배우 김민희. 찬사와 비난 속에 그녀의 예술적 성취를 마음껏 축하해줄 수 없게 만든 그녀의 상황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