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시면 우울증이 오는 건가?' 싶지만, 그 카페인이 아니다. '카페인 우울증'은 소셜미디어 이름인 카오스토리, 이스북, 스타그램의 앞 글자를 딴 '카·페·인'으로 인한 우울증이다. 습관처럼 소셜미디어를 보면서 타인의 일상을 부러워하며, 본인은 불행하다고 느끼고 우울함을 겪는 것을 뜻한다.

그래픽=이은경

요즘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연락이 뜸했던 친구의 소식을 접하기도 하고, 맛집 등 몰랐던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또한, 소셜미디어는 시공간의 제약 없이 다수의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소셜미디어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기업들은 마케팅의 창구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소통도 하고 정보도 얻을 수 있지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소셜미디어가 '우울감'을 유발한다는 연구결과가 이를 방증한다. 2014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대학교 연구팀은 '페이스북을 오래 사용할수록 우울감을 쉽게 느끼고 자존감도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미국 미주리 과학기술대학교 연구팀도 2015년 '소셜미디어에 많은 시간을 쓸수록 우울증을 앓을 확률이 높다'는 결과를 내놨다.

[눈만 뜨면 카톡·페북… 감옥이 돼버린 SNS]

#나_빼고_다_행복해보여

인터넷상에서는 카카오스토리는 '내 아이가 이렇게 잘 크고 있다', 페이스북은 '내가 이렇게 잘살고 있다', 인스타그램은 '내가 이렇게 잘 먹고 있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돌았고 많은 공감을 얻었다.

2011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간판선수였던 웨인 루니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위터에 지속해서 비난 글을 남기는 어느 팬에게 "10초 만에 기절시켜줄 테니 겁쟁이 소리 듣기 싫으면 캐링턴 훈련장으로 나와라, 기다리겠다"는 글을 남겼다. 이 글이 일파만파 퍼지며 루니는 "농담"이라고 수습했지만, 잉글랜드 축구협회로부터 견책처분을 받았다.

이 사건 이후 퍼거슨 감독이 기자회견에서 남긴 말은 국내에서 회자하며 유명해졌다.

"소셜미디어는 시간 낭비다(It is a waste of time)"

카·페·인 속 '행복 경쟁'

소셜미디어에는 모두가 즐겁고 신나고 행복한 사건을 자랑하듯 올린다. 물론 '싸이월드' 시절, 우울해 보이는 듯한 감성적인 글을 남기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카.페.인'으로 압축되는 주요 소셜미디어에서는 '잘 먹고, 잘 사는' 모습이 주를 이룬다.

여기서는 어떤 사진과 어떤 글을 올리느냐가 인기의 척도가 된다. 멋들어지는 먹방 여행, 명품과 같은 호화 쇼핑, 잘 나온 셀카, 기념일 선물, 공연 관람 인증사진 등…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모든 것들은 "나 행복해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나 이외의 사람들은 다 좋은 일만 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러다 보니 글을 올리려는 자신 역시 잘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과 경쟁심이 생긴다. 남들이 좋아할 만한 장소에서 '인증사진'을 남기고, 맛집을 찾아가며 사진을 열심히 찍어 올린다. 행복한 척, 풍요로운 척 글과 사진을 남기며 자신도 모르게 행복을 경쟁하는 것이다.

[[만물상] SNS의 빛과 그늘]

["카페인 우울증을 아십니까?"… SNS 행복 경쟁의 그늘]

열등감 느끼고, '좋아요'에 일희일비

카페인 우울증은 연예인의 화려한 모습을 보며 느끼는 그것과는 다르다. 주로 학창시절 단짝이었던 동창생이나 별 볼 일 없었던 예전 직장 동료의 화려한 모습처럼, 가까운 누군가의 모습과 나 자신을 비교하게 될 때 나타난다.

일면식도 없는 '소셜미디어 스타'의 일상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어디를 가든 맛집을 찾아가고, 여행도 자주 다니고, 평범해 보이는데 슬픔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을 듯한 완벽한 일상. 이들의 소셜미디어를 보고 있자면, 실상 늘 정신없이 업무와 빈곤, 육아 등에 치이는 내 인생이 보잘것없어지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이렇게 삶 일부를 경쟁하며 관심받고 싶어 하다 보니,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찍어 올린 사진과 글에 '좋아요'나 댓글이 적으면 의기소침해진다. 호응이 적은 것 같으면 계속 들락날락하며 댓글과 '좋아요' 수를 점검한다. 이것이 카페인 우울증이다.

그래픽=이은경

#사진_한_장으로_백마_탄_왕자

사용자 대부분이 소셜미디어에서 행복한 척, 잘사는 척하다 보니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 쉽고, 이는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 실제 순전히 '자랑'만을 위해 고가의 물건을 사들이는 이용자들은 이런 현상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취업 준비생 강모(29)씨는 영국 고급 수제 차 벤틀리를 타고 있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일정한 수입 없이 월세 자취방에 사는 강씨가 찻값만 2억원이 넘는 이 '수퍼카'를 산 것은 아니었다. 수중에 있는 100만원을 탈탈 털어 고급 차를 하루 빌린 것이다. 강씨가 사진을 올리자 몇 초 만에 '좋아요'와 댓글이 수십 건 넘게 올라왔다. 강씨는 "이렇게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아 본 건 처음"이라며 "돈이 생기면 다시 수퍼카를 빌리는 데 쓰겠다"고 말했다.

[SNS에 자랑하려… 하루 수백만원 '수퍼카' 빌리는 20대]

수퍼카 렌트족은 "하루라도 폼나게 살아보고 싶다"고 주장한다. 공사장 일용직으로 일하는 현모(26)씨는 "죽도록 일해 아우디부터 페라리까지 모두 빌려 타봤다"고 말했다. 그는 "수퍼카를 타고 나가면 혹시라도 접촉 사고가 날까 봐 꽉 막힌 길이 모세의 기적처럼 뻥 뚫린다"며 "현실은 막노동꾼이지만 인터넷에선 사진 한 장으로 백마 탄 왕자가 된다"고 했다.

심해지면 '리플리 증후군'까지?

소셜미디어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리플리 증후군이 나타나기 쉽다. 대학병원의 한 신경정신학과 교수의 말에 따르면, 소셜미디어상에서는 행복한 일만 생기고 걱정 없이 사는 것처럼 가면을 쓴다고 할 수 있다. 사람에겐 누구에게나 자신을 포장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현실과 그 욕구가 만든 자신과의 괴리가 커지면 자아를 잃고 하나의 정신병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셜미디어 자체가 리플리 증후군을 만든다고 볼 수는 없지만, 상대적으로 자아가 강하지 않고 상대적 박탈감을 잘 느끼는 사람이 소셜미디어에 의존하게 되면 허구세계를 만들어 리플리 증후군을 겪기 쉽다.

[거짓말 반복하다가 진실처럼 믿는 '리플리 증후군' 아세요?]

#기억하자_허세스타그램

소셜미디어에 등장한 멋들어진 사진들이 '허세'에 불과하다는 풍자는 많이 있었다. 해외 사진작가 촘푸 바리톤(Chompoo Baritone)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있어 보이는 사진'의 정체를 올려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사진 출처 = 촘푸 바리톤의 페이스북

그는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 밖에 숨겨진 진실'이라는 주제로 '인스타그램 프레임 안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소셜미디어 속 화려한 삶에 주눅 들었다면, 촘푸 바리톤의 이 사진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자.

['절벽에 매달린 여자 사진'의 진실]

#줄여볼까_카·페·

지난해 12월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보도한 코펜하겐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페이스북 사용을 일주일 이상 중단한 사람들이 본인의 행복 수준을 더 높게 평가했다고 전했다.

일주일 이상 페이스북 사용을 중단한 실험 대상자들은 자신의 행복 수준을 10점 만점에서 평균 8.11점을 줬다. 이 실험은 페이스북 친구가 350명 이상인 1095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대상자 가운데 86%는 여성이며, 평균 나이는 34세다.

실험을 끝까지 완료한 대상자들은 일제히 삶의 질이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특히 실험 시작 전 친구의 소셜미디어 활동에 질투를 느낀다는 대상자들의 행복 수준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큰 폭으로 개선됐다.

실험을 진행한 트롬 홀트 교수는 "매일 같이 전 세계 사용자들이 페이스북에 수백만 시간을 쏟아붓고 있다"며 "습관적으로 타인의 정보를 알고 싶어 하고 연락을 주고받는 것은 우리의 행복에 악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SNS가 행복에 악영향 준다'는 연구 결과]

과감하게 잠시 끊어보자

우선 소셜미디어 하는 시간을 잠시 멈춰보자. 소셜미디어를 관리하고 댓글을 다는 동안의 시간 낭비도 적지 않다. 당분간 스마트폰에서 관련 앱을 지우는 식으로 접속 시간을 줄여도 좋다. 그렇게 차츰 소셜미디어를 끊을 수 있다.

사실 소셜미디어 계정을 비활성화하거나 탈퇴하여 완전히 정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다. 그런데도 끊기가 어렵다면, 소셜미디어 채널 개수를 줄이면서 의도적으로 소셜미디어와 멀리해 보자. 소셜미디어가 아니어도 세상에는 즐거운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소셜미디어도 '사회 생활'이다

소셜미디어가 일상이 아닌 '특별한 순간'이 담긴 공간임을 인지해야 한다. 사회생활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모두 드러내지 않듯이, 소셜미디어도 일상생활의 모든 면이 아닌 약간은 가공된 모습임을 인지해야 한다.

윤홍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소셜미디어를 보기 전에 먼저 마음의 준비부터 하라고 조언한다. 타인의 게시글 속 특정 순간이 그들의 일상일 거라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이다. 그는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게시글은 공들여 단장한 신부 화장이나 오랜 기간 준비한 졸업전시회와 같은 특별한 순간이지, 일상이 아니다"라며 "소셜미디어는 인생의 하이라이트만 담긴 공간이라는 걸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우울감을 덜어낼 수 있다"고 했다.

사람에 집착하지 말자

소셜미디어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교류할 수 있는 중요한 매체이긴 하지만, '인맥'이라고 생각하여 집착하는 순간 스트레스가 된다. 좋아 보이지도 않는데 억지로 '좋아요'를 누른다거나, "정말 좋겠다" 등의 자조적인 댓글을 달 필요도 없다.

누군가 때문에 끊임없이 열등감과 우울감이 생긴다면, 그 상대를 차단하는 것이 낫다. 안 좋은 감정을 갖게 하는 상대의 글이 타임라인에 계속 뜬다면, 접속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부정적인 기분에 휩싸이게 마련이다.

소셜미디어의 순기능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재미로 시작한 소셜미디어가 우울증으로까지 이어졌다면, 그건 역기능에 불과하다. 소셜미디어에서의 비교를 통해 나의 발전을 꾀한다면 득(得)이겠지만, 자기 비하와 열등감으로 이어졌다면 소셜미디어는 나에게 실(失)이다.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소셜미디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잘 생각해보자. 그리고 무슨 방법을 써도 소셜미디어가 나에게 우울감을 안겨준다면, 과감하게 끊는 방법을 택해야 할 것이다. 지금 현실의 삶이 더 중요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