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가 한국인 기장에게만 턱수염을 길렀다는 이유로 비행 정지 처분을 내린 것은 정당한 일일까.
아시아나항공이 ‘수염을 기른 기장에게 비행 정지 처분을 내린 것은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며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중앙노동위원회를 대리한 노동 전문 소형 로펌 여는은 아시아나항공을 대리한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을 2심에서 꺾었다. 1심에서 이겼던 김앤장은 2심에서 여는에 역전패 당했다.
서울고법 행정6부(재판장 이동원)는 지난 8일 아시아나항공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비행정지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1심을 깨고 아시아나항공의 패소로 판결을 내렸다.
2014년 턱수염을 기르고 있던 아시아나항공 기장 A씨는 같은 해 9월 상사로부터 “턱수염을 기른 것은 회사 규정에 어긋나니 면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A씨는 “외국인 직원은 수염을 기를 수 있는 것과 달리 내국인 직원은 수염을 기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차별적인 규정"이라며 지시를 따르지 않았고, 아시아나항공은 그의 비행 업무를 일시적으로 정지했다. 그 결과 A씨는 월 급여의 30%에 해당하는 320만원을 받지 못했다.
A씨는 2014년 12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한 인사 처분에 대한 구제 신청을 했지만 초심판정에선 기각됐다. A씨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해 비행정지가 부당한 처분임을 인정받았다.
이에 아시아나항공은 김앤장을 대리인으로 선임하고, 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비행정지 구제 재심판정에 대한 취소 소송을 냈다. 중앙노동위는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법무법인 여는을 대리인으로 선임했다.
1심 재판부는 ‘용모 규정이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남자 운항승무원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는 여는의 주장에 대해 “헌법상의 기본권은 1차적으로 개인의 자유로운 영역을 공권력의 침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 권리이므로, 공권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아닌 사인(사기업)에 대해 직접적으로 기본권 침해를 주장할 수는 없다"며 김앤장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국적에 따른 차별'이라며 판결을 뒤집었다. 수염을 기르는 행위에 대해 일반적인 행동자유권을 제한할 합리적 이유를 특별히 찾을 수 없고 같은 항공사의 외국인 기장은 수염을 길러도 되는 점 등을 고려했다.
◆ 김앤장, 1심서 “용모규정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업 경영의 자유" 주장해 승소했지만 2심서 역전패
김앤장은 기업은 경영의 자유에 따라 소속 구성원(기장)의 복장과 용모에 대한 제한을 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관습상 콧수염이 일반화된 외국인의 경우, 외국문화와 관습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예외를 인정하는 것일 뿐, 내국인 직원과 외국인 직원을 차별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는 논리를 폈다.
김앤장에서는 김학준(50・사법연수원 21기) 변호사와 김도윤(33・40기) 변호사가 주로 변론을 맡았다. 김학준 변호사는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지방법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인천지법과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를 지내고 2012년부터 2년간 김앤장에 몸담았다. 2014년부터 1년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 민원비서관으로 일한 뒤 다시 김앤장에 합류했다. 김도윤 변호사는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2014년부터 김앤장에서 일하고 있다.
1심에서 김앤장은 단정한 복장과 용모는 근로자의 기본 의무이며, 이를 어길시 기업의 고객신뢰도 하락으로 직결되는 점, 용모 규정 조항을 위반해 수염을 기르는 것을 정당화할만한 사유가 없는 점, 비행 정지로 못받은 비행 수당(320만원)은 받는 연봉과 비교해 재산상 불이익이 크지 않은 점 등을 주장했다.
특히 김앤장은 “기업이 직원들에게 제한을 가하는 복장과 용모 규정은 헌법이 보장하는 경영상의 자유"라며 “개개인에 대한 차별이 아닌 정당한 경영권의 일환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업무명령은 업무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범위에서는 근로계약 등에 위배되거나 권리 남용이라고 인정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근로자는 이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며 김앤장의 손을 들어줬다. 사내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법규인 취업규칙이 개인의 평등권을 침해할지라도 무효가 아니라는 의미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판단을 달리했다. 2심 재판부는 “관습이나 종교 등과 관련없이 내국인인지 외국인인지 여부, 국적을 기준으로 수염을 기르는 것에 대한 허용 여부를 달리 판단하고 있다"며 “회사 내규 조항은 근로자로 하여금 단정한 용모를 갖추도록 함으로써 스스로 근무기강을 다지고 고객들이 호감과 신뢰를 형성하도록 하기 위한 것일 뿐 국적에 따라 직원을 다르게 대우할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 법무법인 여는 “내국인 수염 제한은 국적에 따른 차별이다" 주장해 역전승
여는은 항공사가 내국인 남자 직원에 한해서만 수염 기르는 것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평등권을 침해하고 일반적 행동 자유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처분이라는 주장을 폈다. 김영관(42・41기) 변호사가 1심과 2심에서 주로 변론을 맡았다. 김 변호사는 고려대학교를 졸업했다.
1심에서 여는은 운항승무원은 업무 수행과정에서 승객을 직접 마주하는 일이 거의 없고, 아시아나 소속 외국인 운항승무원의 상당수와 국내 다른 항공사(대한항공) 소속 내국인 운항승무원들이 수염을 기른 상태로 근무하고 있지만, 승객들로부터 불만이 제기되거나 징계가 이뤄진 적이 없는 선례를 비춰보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항공사의 운항 승무원들이 보인 모습이나 태도, 행동 하나하나 사소한 것까지도 항공사의 고객에게 불만이나 불쾌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만족도나 신뢰도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항공사는 직원들의 복장이나 용모에 대한 폭넓은 제한의 일환으로 수염을 깎도록 지시할 업무적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여는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는은 2심에서 유독 한국인 기장에게만 수염을 깎으라고 지시한 것에 대해 ‘국적에 따른 차별'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전략을 폈다.
여는은 같은 항공사에서 수염을 기르고 다니는 외국인 기장의 사진과 타항공사(대한항공)에서 수염을 기른 한국인 기장의 사진을 첨부했다. 외관상 기장의 국적이 구분되지 않는데, 국적에 따라 내국인에게만 수염 기르는 것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였다.
여는은 ‘국적'을 기준으로 수염을 기르는 것에 대한 허용 여부를 달리 규제하는 것은 합리적 이유 없는 부당한 차별로써 헌법 제 11조 및 근로기준법 제 6조가 규정한 평등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또 항공사가 구성원들의 근무기강 확립을 위해 소속 구성원에게 단정한 용모를 갖출 것을 요구할 수는 있지만, 수염의 정돈 상태나 형태 등에 따라 부분적으로 제한하는 등 개인의 기본권을 덜 침해하는 방향으로 의도한 바를 달성할 수 있음에도, 한국인 기장에게는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했다.
2심 재판부는 여는의 주장을 받아들여 1심 판결을 뒤집었다. 2심 재판부는 “오늘날 수염을 기르는 것 자체가 고객들에게 단정하지 못한 외모로 인식되고 신뢰하기 어려운 이미지를 연상시킨다고 볼 근거가 없다"며 대한항공의 경우 내국인 운항승무원도 수염을 기르는 것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지 않은 점, 고객들로부터 어떠한 불만이 접수됐다는 자료가 없는 점 등을 근거로 여는의 논리를 받아들였다.
2심 재판부는 또 “원고(아시아나)는 관습이나 종교와 관련 없이 내국인인지 외국인인지 여부, 즉 ‘국적'을 기준으로 수염을 기르는 것에 대한 허용 여부를 달리 판단하고 있다"며 “내국인 승무원이 수염을 기르는 것이 단정하지 못하게 인식되고 성실하지 못한 이미지를 주며 결국 항공사의 신뢰형성을 방해할 수 있다고 막연하게 주장할 뿐 그에 대한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