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국가 안보 보좌관인 마이클 T 플린(Flynn)이 재직 24일만인 13일 저녁(현지시각) 전격 사임했다. 그의 석연찮은 ‘러시아 커넥션’과 이를 둘러싼 그의 거짓말 의혹이 미 언론에서 계속 불거진데다가, 연방수사국(FBI)의 조사로 그의 해명이 모두 거짓으로 드러난 데 따른 결과다.

플린의 사임은 미·일 정상 회동 기간에 북한이 트랙(track)형 이동 발사대를 통해 중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일부 무슬림 국가들의 이민 금지 명령으로 법원 및 유럽 동맹국·주요 이슬람 국가들과 갈등을 겪는 와중에 일어났다.

지난 1월22일 백악관 이스트룸을 들어서는 플린 국가안보보좌관

플린의 불법 '러시아 커넥션'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을 치른 예비역 중장 출신의 마이클 플린은 작년 12월 29일,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세르게이 키슬리야크 주미(駐美) 러시아 대사와 러시아 정부에 대한 당시 오바마 미 행정부의 '제재' 조치에 대해 논의했다. 바로 이날 오바마 행정부는 미 대선에 불법 개입한 혐의를 받는 러시아 정부에 대한 제재 조치로서, 35명의 러시아 외교관 축출을 발표했고, 뉴욕주와 메릴랜드주의 러시아 소유 건물에 대한 강제 폐쇄 조치를 발표했다.
FBI는 이날 플린이 키슬리야크 러시아 대사와 나눈 통화 내용을 감청 기록했다.

플린은 이날 키슬리야크 러시아 대사와 통화에서 러시아 정부가 과잉 대응할 필요가 없으며,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양측이 이 문제를 ‘러시아에게 우호적인 방향으로’ 재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미 정보당국은 밝혔다. 다음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미국의 제재 조치에 대해 “보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플린과 주미 러시아 대사의 통화는 그 자체가 불법이다. 미 행정부의 ‘인가’를 받지 않고, 개인이 갈등을 빚는 외국 정부와 협상을 하는 것을 미 법률(로건법)은 금하고 있다.

한편, 플린은 작년 미 대선 때에는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국무장관 재직 시 민감한 내용이 담긴 국무부 이메일을 개인 이메일로 받았다며, “힐러리를 투옥하라(Lock Her Up)”고 과격한 주장을 펼쳤던 인물이다.

플린, 부통령과 백악관 참모들에게 거짓말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비롯한 백악관 고위 관리들은 ‘이적(利敵) 행위’보다도, 그가 오바마 행정부의 제재 조치에 대한 내용을 러시아 대사와 나눴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전면 부인했다는 점에 더욱 분개했다. FBI의 전화 감청으로 대화록이 백악관에 공개되기 전까지, 플린은 자신은 그저 연말을 소재로 러시아 대사와 가벼운 얘기를 나눴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플린은 또 워싱턴 포스트가 지난 1월12일 ‘석연찮은 통화’를 첫 보도한 이래, 미 언론의 계속된 의혹 제기에도 키슬리야크 러시아 대사와는 ‘제재’를 둘러싼 어떠한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고 계속 주장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션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 등 백악관 참모들은 그의 말만 믿고, 그의 거짓 부인(否認) 내용을 언론에 적극적으로 알렸다.

플린은 지난 9일 워싱턴 포스트와 인터뷰에서도 ‘러시아에 대한 제재’ 논의 사실을 철저하게 부인했지만, 다음날 대변인을 통해서 “제재에 대해서 얘기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런 얘기를 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한발 물러섰다.

미 국가안보보좌관이 러시아의 협박에 노출?

미 법무부와 FBI가 더욱 심각하게 여긴 것은 통화 내용을 뻔히 아는 러시아 정부가 거꾸로 미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을 협박(blackmail)할 수 있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즉, 키슬리야크 러시아 대사가 플린과 나눈 미 정부의 '제재'와 관련한 대화 내용을 '무기'로, 백악관과 언론에 거짓말한 플린을 앞으로 위협하는 지렛대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플린은 2015년 러시아 정부의 여행 경비 지원을 받아 임의로 호화판 모스크바 여행을 다녀오고 푸틴 대통령과도 연회에서 나란히 앉아 사진 찍은 사실도 추가로 밝혀졌다. 미국 헌법은 전직 장성이 외국 정부의 돈을 받아 여행을 갈 때에는 의회의 사전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지만, 플린은 의회에 관련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다.

2015년 러시아 관영매체 '러시아 투데이' 만찬에서 푸틴과 나란히 앉은 플린(사진 왼쪽)

◇ 플린의 사직서 내용

플린은 사직서에서 자신이 행정부 이관 시기에 수많은 외국 관리들과 전화를 했으며, “불행히도 일이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부통령 당선인과 다른 이들에게 러시아 대사와의 전화에 대해 부주의하게 ‘불완전한 정보’를 제공했다”고 시인하고 대통령과 부통령에게 사과했다.

플린의 사직서

플린은 그러면서도 사직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세계 지도력을 근본적으로 회복하기 위해 미국의 외교정책 방향을 재설정했다”고 칭송했다.

백악관은 플린 후임자로 베트남전쟁 참전 예비역 장성인 조지프 키스 켈로그 주니어로 내정했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