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내일 그대와'에서 시간여행자 유소준(이제훈)이 시간 여행을 시작하고 다시 돌아오는 장소는 서울역과 남영역 사이다. 그를 시간여행자로 만든 지하철 사고가 일어난 장소 역시 '남영역'으로 설정돼 있다. 남영역 지하철 사고의 생존자인 유소준과 송마린(신민아)은 이 주변에서 만나 이야기를 이어간다.

역사 바깥에서 바라본 역의 풍경. 남영역이라고 쓰인 고가 역명판 위로 선로가 지나간다. 지금 고가는 연두색으로 칠해져있다.

서울 지하철 1호선과 경부선 철도가 지나는 곳. 1974년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될 때 함께 문을 열었으니 우리나라 지하철 역사를 고스란히 껴안은 40년도 더 된 오래된 역이다. 역사(驛舍) 주변에 있는 남영동에서 이름을 따 남영역이라고 지었다.

보통 지명에 영(營)자가 붙으면 군대가 머물렀던 곳을 얘기하는데 서울 남쪽의 군대 주둔지였다는 뜻이다. 구한말 부터 이 동네를 남영이라고 부르다가 광복 후에는 행정구역 상 동명으로 아예 붙였다. 하지만 정작 역의 위치는 남영동이 아닌 갈월동이다.

실제로 남영 근처의 용산은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연대가 있었고, 6·25 이후에는 미 8군 캠프가 들어섰다. 또한 남영역에서 멀지 않은 전쟁기념관은 옛 육군본부가 있었던 자리이다. 오랜 기간 군사 시설과 가까이 있었던 동네였음을 알 수 있다.

남영역과 서울역 사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지하철 1호선은 남영역과 서울역 구간을 지날 때 전동차 내 모든 불이 꺼진다. 정전상태가 된 지하철 내부는 전등 뿐 아니라 모든 냉·난방 시설이 작동을 멈춘 채로 계속 달린다. 처음 이 곳을 지나는 사람들 중에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 아닌가 하고 놀라는 이들도 있다. 사람을 가득 태운 채 암전된 지하철의 분위기가 공포 영화 또는 재난 영화에서 본 장면들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내일 그대와'에서는 이런 남영역과 서울역 사이 일시적 정전이 주는 분위기를 극을 이끌어가는 주요 소재로 활용한다. 실제로 연출을 맡은 유제원 감독은 "작가님이 서울역과 남영역 구간의 정전 현상에서 타임슬립의 모티프를 얻은 것 같다"고 밝혔다.

남영역과 서울역 사이 절연구간에서 다른 시간 속으로 사라지는 시간여행자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자아내 많은 상상을 남기지만 남영역과 서울역 구간의 정전 현상의 원인은 꽤 단순하다. 남영역과 서울역의 운영 회사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지하철은 코레일, 서울메트로, 5678 서울 도시 철도, 메트로 9호선 4개의 회사에서 운영하는데 이 중 남영역에서 신창역 구간은 코레일에서, 서울역에서 청량리 구간은 서울 메트로에서 맡고 있다. 코레일은 25,000V의 교류 전원을 사용하고, 서울메트로는 1,500V의 직류 전원을 사용한다. 남영역과 서울역 구간에서는 운영 회사의 전력 공급 방식이 바뀌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전류를 차단해 전기의 경로를 바꾼다. 이 구간을 전문용어로 '절연구간'이라고 한다. 이 때 전류 차단으로 일시적인 정전이 일어나는 것이다.

전기 공급이 끊긴 순간에도 전동차가 계속 달릴 수 있는 것은 관성 때문이다. 전동차가 전기 동력을 잃어버린채 관성으로 달리는 순간, 시간여행이 시작된다는 드라마적 상상은 여기서 출발했다.

선로 아래에 있는 도심 속 간이역

애초에 작은 공간을 겨우 비집어 만들어놓은 남영역은 그 규모가 다른 역에 비해 훨씬 작다. 나가는 출구는 여전히 단 한 곳 뿐이며, 대합실은 대합실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협소하다. 화장실도 승강장 끝에 위치하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1974년 준공 후 여러차례 작은 개·보수는 이뤄졌지만 큰 리모델링 공사는 없어 40년의 연식이 건물과 구조 곳곳에서 드러난다. 대체적으로 좁고, 어둡고, 낮은 건물 구조는 시골 마을의 간이역과 같은 느낌을 준다. 오래된 구조 속에 현대식 역명판, 개찰구, 스크린도어 등이 뒤섞여 서울 지하철 역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엿볼 수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사람들이 바쁘게 이동하는 작은역, 시간여행을 시작하기에 꽤 매력적인 곳이다.

서울 지하철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역사의 독특한 구조 때문에 일본의 JR과 비슷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선로 끝 아래 층에 역사를 지은 선하역이고, 출구가 어두운 고가 밑으로 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첫 지하철 개통 당시 일본에서 해외기술협력단이 파견되었고 시공 과정에서 일본의 역사 구조를 참고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 때는 사상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곳
스크린도어가 설치되기 이전과 이후

한 때는 지하철 사상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역이었다. 서울역과 한 정거장 차이인 도심에 있는 역이어서 유동인구는 많았으나 스크린도어는 가장 늦게 설치됐다. 스크린도어 공사 이전에는 승강장 한편으로 경부선 철도가 오고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풍경이 꽤 정취있어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장소였다. 하지만 사람이 몰리는 출·퇴근길 선로에 떨어지는 사고가 자주 일어나고 자살을 하려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목숨을 끊는 일이 빈번하자 스크린도어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는 2014년 마무리돼 지금 선로 너머 기차가 들어오고 서는 풍경을 운치있게 보는 것은 힘들다.

드라마 '내일 그대와' 속에서 남영역 지하철 사고는 2009년에 일어난 것으로 설정돼 있다. 이런 사실을 고증하여 사고 장면에는 스크린도어가 없는 승강장이 나오고 주인공이 철로 아래로 뛰어내리는 모습도 나온다. 실제 남영역은 아니고 세트장에서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문의 기억' 남영동 대공분실

남영역과 가까운 곳에 있으며 '남영'이라는 이름을 공유하고 있는 남영동은 잔인했던 '고문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곳이기도 하다. 남영동 자체를 모르는 이는 많아도 이 동네에서 이뤄진 끔찍한 일을 모르는 이들은 거의 없다. 민주화 운동을 했던 인사들에게 잔혹한 고문 행위가 이뤄졌던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은 승강장에서도 크게 보일 정도로 역과 가까이 있다. 남영역 뒤, 우리 사는 세상 바로 곁에 천연덕스럽게 있어 고문을 받는 이들에게 더 잔인하고 절망적인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2012년 故 김근태 의원에게 가해졌던 고문 행위를 다룬 영화 '남영동 1985'로 만들어졌다.

1985년 민청련 의장이었던 김근태는 숱한 민주 인사들의 영혼을 유린하던 남영동 분실의 지옥도(地獄圖)를 법정에서 증언했다. 그는 22일 동안 갖은 고문과 능욕을 당했다. 그는 빛과 어둠으로 날짜와 시간을 가늠하고 고문자의 이름과 인상을 거듭 외웠다.

1987년 남영동 분실에서 일어난 박종철군 고문치사는 6·10 민주화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그가 숨진 509호 조사실의 욕조와 변기를 비롯한 취조현장은 그대로 '역사'로 보존됐다. 치안본부 대공수사과가 경찰청 보안3과로 개편되면서 90년대부터 '보안분실'로 불려 온 남영동 분실이 29년 만에 사라졌다. 2006년부터 이곳은 인권보호센터와 전시관, 희생자 추모관을 갖춘 '경찰인권기념관'으로 탈바꿈했다. ▶기사 더보기

▲사진 : 박종철 군 추모제가 열리는 옛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 현 경찰인권기념관(위), 남영역 승강장에 내리면 바로 이 건물을 볼 수가 있다(아래) /연합뉴스, 조선DB
젊은 창업자들의 아지트 '열정도'

남영역 1번 출구 나와 왼쪽 철길을 따라 고층 아파트 숲을 지나면 열정도라는 골목을 만날 수 있다. 한때 인쇄 공장이 많이 들어선 골목이었던 이곳은 시간이 흐르면서 급속도로 쇠락해가는 서울 골목 중 하나였다.

용산 KCC웰츠타워 아파트, 이안용산아파트, 이안 용산프리미어, 용산더프라임 등 지난 10년 내에 지은 30층 이상의 주상복합 건물이 삼각형의 세 변을 이루는 이곳은 하늘에서 보면 빌딩으로 둘러싸인 섬 같다.

용산구 원효로 1가에 있는 '열정도'의 골목에 푸드트럭들이 들어섰다.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저녁이면 이곳에 야시장이 열려 푸드트럭이 오고, 사람들이 수공예품을 내다 판다. 밴드들이 공연을 할 때도 있어 마치 동네 축제 같기도 하다.

고층 빌딩에 둘러싸인 채 덩그러니 남아있던 이 섬을 처음 발견한 이는 '청년장사꾼' 김연석 씨다. 2014년 김 대표는 스쿠터를 타고 남영역을 지나다 주상복합 건물 사이의 어두운 골목을 발견하고 이 섬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열정도의 가게들은 개성이 강하다. 주꾸미집은 '주꾸미'를 활용한 말장난과 복고풍 인테리어를 내세운다. 찜닭을 판매하는 가게 상호는 '치킨싸우나'다. 김 대표는 건축회사를 다니다 그만두고 '청년장사꾼'이란 회사로 외식업을 시작했다. 친구와 둘이서 시작했지만 지금 직원만 40명이다. 그는 "장사가 잘되려면 그 지역에 들어가서 먹고살면서 일해야 한다. 지역 주민, 직장인과 가장 빨리 소통할 수 있는 게 음식점"이라고 했다. 그는 "연남동이나 익선동처럼 너무 빨리 알려질까 봐 걱정했는데, 아직은 괜찮은 것 같다. 근처에 사는 주민이나 직장인이 손님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저녁이면 이 골목에는 야시장이 선다. 푸드트럭이 오고, 사람들이 수공예품을 내다 판다. 5000명 내외가 찾는다. ▶기사 더보기

참고자료
유광종의 지하철 한자 여행 1호선, 유광종, 책밭
서울메트로 30년사 (시민의 발 시민의 길>), 서울메트로
산업통상자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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