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에서 열린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는 경찰이 친 차벽 덕에 물리적 충돌은 없었지만 시종 일촉즉발이었다. 격한 선동과 서로를 향한 증오와 적대 발언이 선을 넘었다. 작년 12월 9일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이후 두 달이 더 지났지만 위기 상황이 진정되는 것이 아니라 더 악화되고 있다. 찬탁·반탁으로 갈려 데모하고 싸우던 해방 직후를 보는 것 같다는 말까지 나온다.
헌재는 청구인(국회)과 피청구인(대통령) 측에 23일까지 최종 의견서를 내달라고 했다. 이정미 헌법재판관이 퇴임하는 3월 13일 이전일지 아니면 그 후일지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탄핵 심판의 결론이 멀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이제 촛불 시위대나 태극기 시위대의 주장이 무엇인지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다 알려졌다.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재판정 부근에서 벌이는 더 이상의 시위는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 강압적 행위다. 법치를 바로 세운다면서 법치를 흔드는 모순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그런데도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 주최 측은 필사적으로 군중 숫자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다. 이대로면 헌재 결정이 가까워질수록 더 심해질 것이다. 이 무모한 경쟁은 헌재의 법리적 판단을 정치적 승패(勝敗)로 만들게 된다. 패자의 격렬한 반발은 결국 우리 사회 전체를 패자로 만들게 될 것이다. 모두 이제 시위를 중단하고 차분히 헌재의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 무엇보다 두 집회 주최 측이 '어떤 결정이 나든 승복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승복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스스로 주장해왔던 대의(大義)가 거짓이었으며, 손가락질했던 상대와 실은 똑같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은 11일 촛불 집회에 참석했다. 새누리당 김문수·이인제 전 의원은 태극기 집회 연단에까지 올랐다. 안철수 의원과 바른정당만 참석하지 않았다. 문 전 대표는 10일 "나는 승복하겠지만 민심과 동떨어진 결정이 나오면 국민이 용납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마지못해 한 듯하지만 어쨌든 그의 입에서 '승복'이란 말이 나온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대선 주자들은 더 이상 헌재 압박 집회에 참석하지 말아야 하고 헌재 결정에 승복하겠다는 약속은 열 번 스무 번이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헌재 결정 후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다. '승복'을 말하고 실천하는 대선 주자는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이고, 그러지 않는 주자는 선거를 걱정하는 사람이다. 누가 나라를 걱정하고 누가 선거를 걱정하는지 알아볼 좋은 기회다.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을 뽑는 것이 유권자들의 첫째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