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本貫)은 그 성씨의 시조 또는 중시조(中始祖)가 살았던 거주지를 가리킨다. 그런데 문제는 족보상에 이 거주지가 이후로도 안 바뀐다는 데 있다. ‘안동 김씨’ 같은 경우도 대표적이다. 안동 김씨는 조선 후기에 대단한 권력을 행사했던 귀족 집안이다. 보통 사람들은 경상도의 안동 사람들이 권력을 잡은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사실은 아니다. 안동 김씨들은 원래 안동에서 대대로 살았지만 1500년대 초반에 서울에 와서 벼슬을 하기 시작하였다. 벼슬을 하면 집을 장만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아들, 손자 대에 과거 합격자가 나오면 서울에 눌러앉아 살았다.
안동 김씨는 김영(金瑛)·김번(金
·1479~1544) 형제가 과거에 급제하여 서울 장의동(壯義洞)에 거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대대로 서울에서 살았다. 장의동을 줄여서 나중에는 장동(壯洞)이라고 불렀다. 김번의 증손자가 유명한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1570~1652)이다. 김상헌 후손들은 학파도 율곡학파에 속하였으며 당파도 서인·노론으로 이어졌다. 안동 사람들이 퇴계학파와 남인에 속하였지만 '장동 김씨'들은 이들과 색깔이 전혀 달랐다. 기호학파 사람들과 놀았던 것이다. 김상헌이 죽고 난 뒤인 숙종조에 그 선조의 고향인 안동에다가 청음서원을 지으려고 하였지만 안동의 유림들이 막 올라가기 시작한 건물의 대들보와 서까래를 밧줄로 잡아당겨 무너뜨려 버렸다. 소위 '청음서원훼파사건(淸陰書院毁破事件)'이다. 야당 도시인 안동에 어찌 집권 여당의 당수 서원을 짓는단 말이냐! 오늘날 안동 김씨 하면 경상도 안동 사람들이 세도를 누린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세도를 누린 안동 김씨들은 실제적으로는 장동 김씨였고 기호학파였으며 서울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경남 합천의 쌍책면에 사는 완산 전씨(完山 全氏)들도 전하민(全夏民)이 1451년에 합천으로 이사 오면서 살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살고 있다. 왜정 때 호적을 보면 전주 전씨(全州 全氏)로도 쓰여 있다. 전하민의 증조부인 전집(全潗)이 고려 말에 홍건적 토벌의 공으로 완산군(完山君)에 봉해졌기 때문에 ‘완산’이 되었다. 한번 본관이 정해지면 아무리 다른 지역에서 수백 년을 살아도 안 바뀌는 것이 한국의 관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