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환자지, 뭐가 청춘이야?"(방송인 유병재)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는 '변화하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칭찬하라'가 내용의 전부다."(책 '거대한 사기극' 중)
이들의 주장이 맞아떨어진 걸까.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갖췄다는 요즘 청년들이지만, 자기계발서는 10년 전보다 덜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교보문고에 의뢰해 2006년과 2016년의 대학생·대학원생 베스트셀러 순위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 자기계발서는 10위 안에 1권만 턱걸이했고 토익 문제집은 순위에서 사라졌다. 10년 전인 2006년에 상위 10위 안에 1위 '마시멜로 이야기'를 비롯해 자기계발서 3권과 토익 문제집 3권이 들었던 것과는 큰 차이다.
◇'노력' 강조했던 자기계발서 약세
2006년에는 100위 안에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7위) 등 12권이 있었던 자기계발서는 2016년 7권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반면 10년 전에는 7권 있던 '시/에세이' 분야 도서는 16권으로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는 "노력을 강조하는 자기계발서를 읽어봐야 바뀌는 게 없다는 생각을 한 대학생들이 시와 에세이에서 마음의 평화와 위안을 얻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온라인서점 예스24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났다. 20대가 1~2월에 어떤 책을 샀는지 100위까지 순위를 확인하자 2011년 14권에 달했던 자기계발서는 2016년 7권으로 줄었다. 작년 5월 말 문제 유형이 바뀐 신(新)토익 시험이 등장하면서 토익 학습서는 순위권 밖으로 빠졌다. 진영균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 대리는 "상반기에는 예전 토익 학습서가, 하반기에는 신토익 학습서가 팔리면서 판매량이 분산됐고 판매 기간도 짧아 판매가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N포세대의 자기계발서 회의론
7일 교보문고에서 책을 고르던 신보람(21)씨는 "취업도 불가능해 보이는데 자기계발서를 읽어서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한기호 출판평론가는 "자기계발서가 마약 같은 일시적 마비 효과를 줄 수 있지만 실제 해결책은 못 되고, 기업도 취업 과정에서 스펙보다는 인문학적 지식을 요구하면서 자기계발서가 과거보다 덜 나오고 덜 팔리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일찍 일어나서 열정적으로 살며, 아파도 청춘이니 견디라고 했던 기존 책을 '미움받을 용기' '자존감 수업' 같은 책들이 대신 채웠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스펙을 키우고 열정적으로 살라는 기존 자기계발서는 적극적인 자세를 강조했지만 지금은 '미움받을 용기'처럼 내면을 다스리는 대처법으로 관심이 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문으로 포장한 자기계발서?
'시크릿' '긍정의 힘' '마시멜로 이야기' 같은 전통적인 자기계발서는 줄어들었다. 대신 인문학으로 포장한 자기 성찰 성격의 책들이 등장했다는 시각도 있다. 2016년 교보문고 대학생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3위를 차지한 '미움받을 용기'와 9위인 '자존감 수업'은 심리학을 주제로 한 인문 서적이지만 동시에 자기계발서 성격도 띤다. "당신이 불행한 까닭은 환경이나 능력 탓이 아니라 그저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미움받을 용기의 주장은 심리학보다는 격려를 담은 자기계발서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이런 책들은 서점 성향에 따라 책 분류가 인문과 자기계발 사이를 오가기도 한다. 가령 '자존감 수업'은 교보문고에서는 인문으로, 예스24에서는 자기계발로 분류돼 있다.
2013년 나온 책 '거대한 사기극'(북바이북)은 자기계발서의 허구성을 지적했다. 저자 이원석씨는 "2010년대 들어 자기계발서가 쓸모없다는 인식이 늘어나고 자기계발서 저자를 조롱하는 인터넷 문화도 나타났다"며 "'인문학'이라는 방패로 자기계발서라는 혐의를 피하려는 시도로도 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