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성 기후를 지닌 속초는 겨울이면 다른 지역보다 눈이 많다. 바다의 습기를 머금은 눈은 푹신하지만 그만큼 무겁다. 눈이 내리면 마당에서부터 차가 다닐 마을 길을 치우느라 온 마을이 분주해진다. 사람들은 몸은 힘들어도 눈이 많은 해는 식물들이 병충해를 덜 입고, 곡물 수확도 좋아진다 하여 반가워한다.

필자의 눈 내린 속초 정원. 식물들은 각기 다른 진화의 방식으로 자신을 변화시켜 환경을 이겨내며 살아간다.

그러나 겨울 눈이 모든 식물에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어떤 식물엔 좋지만 어떤 식물에는 해가 되기도 한다. 땅속에 뿌리를 두고 해마다 싹을 틔워 올리는 풀과 초본식물은 눈이 땅을 덮어주면 일종의 이불 효과로 따뜻한 겨울을 나게 된다. 눈이 두껍게 쌓여 있을수록 식물종이 더 다양해지고 추위에 약한 식물도 월동이 더 수월해진다는 과학적 근거도 이미 밝혀졌다. 눈의 효과는 이뿐이 아니다. 눈이 녹으면서 땅속 깊이 물을 공급하고, 공기 중 질소와 황 등이 눈 속에 포함돼 있어 영양 공급에도 도움을 준다. 그러나 잎을 고스란히 매달고 있어야 하는 상록수에 눈은 치명적이다. 눈의 무게가 나무를 누르면 큰 가지가 맥없이 꺾이고 잎이 얼어 나무 전체가 손상도 입는다.

식물이 겨울을 이겨내는 방법은 제각각이다. 낙엽수는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에 대비하기 위해 아예 잎을 다 떨구고 최소한의 물기만 머금은 채 나무 전체가 얼지 않도록 한다. 생육을 멈추고 겨울잠에 든다고 볼 수 있다. 대신 상록수는 낙엽수와는 다른 길을 간다. 상록수는 낙엽수와 달리 겨울에도 잎을 매달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늘에서도 성장이 가능하도록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성장이 느린 상록수는 여름이 되면 거대한 낙엽수 그늘 밑에서 충분한 햇빛을 받을 수 없다. 이 때문에 겨울이 돼도 부족한 일조량을 채우기 위해 잎을 매달고 있어야 한다. 대신 잎을 바늘처럼 뾰족하게 만들어 잎의 표면을 줄인다.

상록수 잎에는 다른 비밀도 있다. 바늘 같은 잎은 표면이 작지만 그 수가 엄청나게 많아 햇빛 양이 적어지는 겨울에도 광합성이 충분하다. 또 나무 형태가 원뿔형이어서 잎 전체가 골고루 햇빛을 받고, 내린 눈도 잘 미끄러져 내린다. 상록수 잎은 눈을 녹이는 일도 한다. 눈이 온 뒤, 산을 바라보면 아직도 낙엽수 가지에는 눈이 그대로 덮여 있는데 상록수의 눈은 완전히 녹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상록수 잎이 햇빛을 흡수한 뒤 빠르게 눈을 녹이기 때문이다.

식물의 생존 방법은 환경에 자신을 맞추어 스스로 변화시키는 것이고 우리는 이것을 '진화'라고 한다. 누군가는 식물은 수동적이고, 동물은 능동적 생명체라고 말하지만 알면 알수록 환경에 진실로 능동적 대처를 하는 생명체는 오히려 식물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눈 내리는 겨울은 정원 관리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밖에서 자라는 식물은 물 주기를 멈춰도 된다. 산울타리는 눈이 쌓이면 윗부분에 함몰이 생길 수 있으니 눈이 오는 날 가볍게 눈을 쓸어 털어주는 것이 좋다. 잔디는 얼었다면 밟지 않는 것이 좋다. 언 잔디가 바스러지기 때문이다. 화분에서 식물을 키울 경우는 땅으로 들어가야 할 뿌리 부분이 위로 노출돼 있어 얼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화분의 밑을 버블 랩으로 감싸주면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