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정보] 보천보 전투란?]

"북한이 김일성의 대표적 항일 투쟁으로 선전하는 1937년 6월 4일 (함경남도 갑산군) 보천보 전투 당시 김일성은 압록강을 건너지 않았고 보천보에 없었다."

1980년대부터 중국에서 김일성 부대 관련 연고자 130여 명을 인터뷰한 조선족 작가 유순호(55·사진)씨는 6일 "보천보 전투 당시 김일성 부대에서 기관총 소대장으로 근무한 강위룡의 회고담을 들은 중국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 2군 출신들을 1990년대 초반 만나 확인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유씨는 "광복 후 1950년대 초까지 중국 옌볜에서 지낸 강위룡은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에겐 '보천보 전투 때 내가 기관총을 들고 김일성 곁에 딱 붙어 서 있었댔다'고 한마디로 일축했다"고 전했다.

북한이 선전하는 보천보 전투 신화가 거짓이라는 것이다. 북한에 돌아가 평양위수사령관에 임명된 강위룡은 1967년 양강도 혜산에 '보천보전투승리기념관'이 설립됐을 때 현지 관계자들에게 진실을 말했다가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에 의해 숙청됐다. 유씨는 "중국 공산당 길림성 당사(黨史) 연구소 비밀문서고에 있는 자료에도 김일성은 보천보에 가지 않았다는 증언들이 기록돼 있다"고 했다.

필명이 청설(靑雪)인 유순호씨는 1980년 희곡 '숲속의 메아리'로 문단에 데뷔했다. 중국의 항일 영웅 조상지를 그린 '비운의 장군'(1998)을 썼고 2002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만주의 파르티잔 허형식'(2009)을 펴내는 등 만주 항일 운동사를 연구해왔다.

유씨가 김일성의 과장·날조된 항일 투쟁 신화를 바로잡기 위해 지난달 '김일성평전 상편'(1912~1935년)을 내놓았다. 보천보 전투의 진실은 하편(1936~1945년)에 담길 예정이다. "북한이 만든 김일성 회고록은 사실을 조작하고 부풀리는 등 눈뜨고 봐줄 수 없는 지경이다. 중국 옌볜에는 김일성을 따라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고 정착했던 항일연군 2군부대(김일성이 몸담았던 부대) 연고자가 적잖게 살고 있었다. 그동안 말을 아꼈던 이들이 1970년대 김정일이 북한의 후계자로 추대됐을 때부터 김일성의 흠을 들추는 이야기들을 서슴없이 털어놓기 시작했다."

북한 당국은 그에게 집필 중단을 요구했다고 한다. 유씨는 "특히 북한에서 성모마리아처럼 숭배되는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이 안도현 만보라고 부르는 중국 동네에서 아편농사를 지었던 조광준이라는 홀아비와 재혼한 사실은 빼달라고 사정했다"고 전했다. 그는 "하편에선 1940년 김일성이 만주에서 소련으로 도피할 때 벌였던 행적들을 소상히 밝힐 예정"이라며 "당시 김일성은 임신한 부인 김정숙을 거추장스럽다고 길가에 버렸고 김정일은 백두산도 러시아 하바롭스크도 아닌 길가에서 태어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