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에서 대연정(大聯政·연립정부) 논란이 진행 중이다. 다음 정권 안정을 위해선 바른정당·새누리당을 포함한 대연정을 해야 한다는 안희정 충남지사 제안에 같은 당 문재인·이재명 후보가 반발하더니 국민의당·정의당 등도 반대에 가세했다. 어쩌면 다음 정부의 성격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어 주목된다.

지금 국회 의석 분포로는 야권 정당들과 친야 무소속들이 모두 연합한다 해도 선진화법상 법안 통과 기준인 180석(60%)에 미치지 못한다. 여든 야든 어느 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해도 자력으론 법안 하나 통과시키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 속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안 지사는 이런 여건에서는 바른정당과 새누리당까지 연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하고 있고, 야권의 다른 모든 후보와 정당들은 이것이 '촛불 민심'에 어긋난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안 지사에게 촛불 집회에 나와 공식 사과하라고 압박하는 사람까지 나왔다.

대연정은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제안했던 것이다.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선거구제 개편에 동의해준다면 한나라당이 추천하는 총리에게 내각 구성권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발상이었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 제안이 정치적 위기를 탈출해보자는 의도이고 정치 현실과 맞지도 않는다면서 거부했다.

연정은 대연정이든 소(小)연정이든 주로 내각제 국가에서 집권 정당이 의회 다수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정당과 연합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나 우리처럼 양당제에 기반한 대통령제 국가에서 주요 정당들이 손을 잡게 된다면 의회의 행정부 견제 기능 자체가 의미 없어진다. 민주주의 원리에 맞지 않고 그래서 전례도 없다.

하지만 지금 우리 정치 상황은 12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위기다.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안보·경제 동시 위기에 유례없는 국가 리더십 붕괴까지 겹쳐 있다. 앞으로 탄핵 여부가 결정 나면 찬반 세력 간 골이 더 깊어져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새 정부가 연정에 기반한 협치(協治) 없이 이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겠는가. 4차 산업혁명을 위한 입법을 해나갈 수 있는가. '그렇다'고 답한다면 무책임하고 오만하다.

우리 국민은 지난 4월 총선에서 이미 양당제가 아니라 다당제를 선택했다. 최순실 국정 농락 사태를 거치면서 4~5개 정당 체제로 더 분화됐다. 여야 두 당의 사생결단 투쟁에 질린 민심이 다당제라는 흐름을 만들고 있다.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연정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안 지사의 충남도와 바른정당 남경필 지사의 경기도에선 실질적인 협치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이런 노력들을 폄훼하지 말아야 한다. 이 연정 고민은 궁극적으로는 한 사람에게 비정상적으로 권력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를 끝내고 분권형 협치로 가는 개헌으로 연결돼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