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4일 한반도에서 '사이버 가수'가 데뷔할 예정이다. 보컬로이드(VOCALOID) 기반 사이버 가수 유니(UNI)다.
급식 먹는 아이들도 스마트폰 하나씩은 굴리는 최첨단 미래사회가 이미 도래했지만, 그럼에도 아직 대부분 사람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목소리를 내고 노래를 한다는 게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우리도 모르는 새 벌써 사이보그의 시대가 와서, 분홍머리 컴퓨터가 곡도 만들고 가사도 쓰고 보컬까지 맡는 지경에 이른 것일까. 어찌 된 영문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사이버 가수는 어떻게 노래하는가
우선 생소한 단어인 '보컬로이드'부터 보자. 보컬로이드는 일본 악기회사 '야마하(YAMAHA)'가 만든 음원 합성 프로그램이다. 가수를 뜻하는 '보컬(Vocal)'에 인조인간을 뜻하는 '안드로이드(Android)'를 더한 말이다. 즉, '인조인간 가수'라는 뜻이다.
인조인간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현실의 사람 목소리를 녹음해 이용한다. 사람이 보컬로이드 프로그램에 음성을 '가''나''다''라'… 식으로 잘게 나눠 음원 데이터 팩으로 녹음해 두고서, 편집자가 그 음성정보를 재조합해 노래를 짜는 방식이다. 즉, '음원 데이터 팩'이 가수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SS501의 'U R Man'을 보컬로이드를 써서 구현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편집자가 보컬로이드 프로그램에 담긴 음원 중 '암''욜''맨''암''욜''맨''그''대''여' 등의 발음을 끄집어내 악보에 맞춰 음 높낮이를 조정하고 연결하며 곡을 짠다. 사람이 부르는 노래 느낌이 나도록 숨소리나 비브라토(성대 떨림) 등을 넣기도 한다.
그래 봤자 기계니 노래라고 한들 보이스웨어 같은 무미건조한 소리가 나올 것 같지만, 막상 완성곡을 들어보면 제법 사람 음색에 가깝다. 시간이 나는 분은 실제 보컬로이드 기반 사이버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한 번 들어 보자. 지난달 25일 선공개한 유니 음성 데모곡 '어제, 오늘, 내일'이다.
1990년대 후반부를 살아본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당대를 풍미했던 '사이버 가수 아담' 목소리가 더 자연스럽다 느낄 수도 있겠다. 지난 20년간 기술은 무지막지하게 발전했을 텐데도 말이다.
이는 아담 목소리와 보컬로이드 제작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서 생기는 차이다. 보컬로이드는 음성을 분해해 프로그램에 담아두고 이를 재조립해 노래로 만든다. 하지만 아담은 '얼굴없는 가수'가 부른 노래를 통짜로 녹음해 아담 이름으로 홍보하고 팔았을 뿐이다.
사람이 직접 쭉 부르는 노래니 아담 쪽 음성이 더 자연스럽기야 하겠지만, 이 경우엔 이미 만들어진 노래를 듣기만 할 수 있을 뿐 음원을 활용한 자유창작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반면 보컬로이드는 누구나 잘게 나뉜 음원을 재조립해 사이버 가수의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를 만들 수 있다. 장난감으로 치면 아담은 '완제품 장난감'이고 보컬로이드는 '레고'인 것이다. 게이머에게 좀 더 와 닿을 방식으로 표현해 보자면, '제작사가 만들어 파는 RPG게임'과 'RPG 메이커(쯔꾸르)'의 차이다.
◇예쁜 캐릭터 일러스트는 왜 만들었지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목소리만 좋다 해서 바로 가수가 되는 건 아니다. 대중가요의 세계에선 목소리뿐 아니라 겉모습 또한 적잖이 중요하다. 괜히 가수들이 없는 시간 쪼개가며 외모관리하는 게 아니다. 사이버 가수도 마찬가지다. 사실 데스크톱 컴퓨터가 아무리 노래를 예쁘게 불러 봤자 누구 호감을 사긴 쉽지 않다.
그래서 태어난 것이 사이버 가수 캐릭터 '유니'다. 음원으로 입력된 목소리 느낌에 어울리는 캐릭터를 디자인해 가상의 인격체로 내세운 것이다. 음성 컨셉이 달고 상큼한 딸기 우유기 때문에, 그 느낌을 살려 그렸다 한다. 참고로 유니 목소리의 실제 주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가수가 아닌 전문 성우일 거라는 추측만이 있을 뿐이다.
일단 적어도 아직은 저 캐릭터가 뛰고 구르며 노래를 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까지 공개된 것은 동영상도 아닌 사진 몇 장 뿐이다. 그냥 유니 목소리 음원 데이터팩으로 만든 노래를 들으며 '저렇게 생긴 애가 노래하고 있구나'라고 상상만 해야 한다. 다만 기획사인 '에스티미디어' 관계자는 "오래지 않아 춤추고 뛰며 노래하는 유니를 볼 수 있다"며 "곧 유니의 팬들이 MMD(Miku Miku Dance)라는 프로그램을 써서 모델링과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것"이라고 알려왔다.
여담으로 한때 설정 관련 논란도 있었다. 지난 2015년 8월 18일날 공개된 유니 스타일 시트 하단에, "얼굴은 순종적, 몸매는 육감적"이라는 적힌 탓이다. 기획사가 사과문을 올리긴 했지만 저 문구는 한동안 수정되지 않았었다. 몇 달이 지나고서야 문구가 사라졌지만, 당시 '육감적'이라는 표현과 더불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 지적받았던 34-23-35 몸매 설정은 결국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하간 대놓고 어느 계층을 노리고 만든 컨셉 디자인이다 보니, 0과 1로 구성된 디지털 데이터에 불과한데도 벌써 팬층까지 있다. 이들은 '유니톨로지' 혹은 '유니콘'이라 불린다.
◇앞서 한반도에 다녀간 유니 언니 시유
참고로 유니가 한국 최초의 보컬로이드 사이버 가수는 아니다. 국내 첫 보컬로이드 사이버 가수는 지난 2011년 10월 21일 데뷔한 음원 데이터팩이자 이를 표상화한 캐릭터 시유(SeeU)다. 시유는 17살이고 유니는 18살이지만, 시유가 6년 빨리 세상빛을 봤으니 언니인 셈이다.
해외에서는 “발음이 좋고 고음처리가 훌륭하다”며 호평을 받았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일부의 지지만을 받았을 뿐 대국민적인 사랑을 누리진 못했다. 2012년 7월 22일 ‘SBS 인기가요’ 무대를 통해 공중파에도 한 번 출연했었지만, 반응은 충격과 공포 수준이었다. 더군다나 목소리만 나온 것도 아니고 3D 홀로그램으로 육신까지 강림했던 통에, 아직 이 문화에 익숙지 못했던 당대 사람들에게 적잖은 쇼크를 먹였다 한다.
더군다나 오래지 않아 뜻밖의 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시유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시유 목소리의 주인이었던 걸그룹 글램(GLAM) 멤버 다희가 배우 이병헌을 협박했다가 2015년 1월 15일 징역 1년을 선고받은 것이다. 제아무리 가상의 캐릭터라지만, 근간을 이루는 음원이 범죄자여서는 이 땅 어디서건 환영받을 도리가 없다. 그렇게 시유는 목소리를 잃었다.
◇특이점이 온다
시유는 떠나갔지만, 그 뜻은 끊이지 않고 이어져 후배 유니가 곧 세상 빛을 보게 됐다. 물론 성공 여부는 매우 미지수다. 한국은 사실 아직 보컬로이드의 불모지에 가깝기 때문이다. 여러분 중에도 이 글을 읽기 전에 '보컬로이드'라는 단어를 스치듯 들어보기라도 한 분이 몇이나 될까 싶다.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분들이라면 보컬로이드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생각한다. 좀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보컬로이드는 문화에 침투한 과학이다. 인간 고유의 특성이라 여겨지던 예술의 영역에 기계문물이 발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특이점이 오네 마네 하는 시대니, 문화와 과학기술의 융합은 계속되고 또한 빨라질 것이다. 어차피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면 미리 적응해 나쁠 것은 없으리라 본다. 이 글에 담긴 지식 정도는 머릿속에 담아두도록 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