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임시국회에서 민주당·국민의당 등 과반수 야권이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대기업 관련 법안들을 우선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이사·감사위원에 소액주주 대표가 선임될 가능성이 높아지도록 하는 등 대주주의 경영 독주를 견제하는 법안들이다. 재벌 오너가 적은 지분을 갖고 일방적으로 경영 전횡하는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원칙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특히 최순실 스캔들에서 드러났듯이 이사회 의결 등의 법적 절차조차 거치지 않고 오너 지시에 따라 회삿돈을 마음대로 지출하는 관행은 반드시 고쳐져야 할 한국식 오너 경영의 악습이다.

그러나 지금 추진되는 법안은 지배구조 투명화라는 취지를 넘어 대기업의 경영 자체를 흔들 수 있는 독소(毒素) 요소가 적지 않다. 가장 문제되는 것이 선임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주고 한곳에 몰아 투표할 수 있게 하는 '집중투표제'와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해 감사위원을 따로 뽑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다. 이 제도가 도입될 경우 외국계 주주가 감사위원 대부분을 자기편으로 선임할 수 있으며, 이사회마저 장악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다중대표소송제'도 외국계 주주가 재벌그룹 지주회사의 지분 1%만 확보하면 그룹 전 계열사의 경영에 개입할 수 있게 된다. 외국계 주주의 경영 참여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지만 과거 소버린·타이거펀드 사태에서 보듯 단기 차익만 노리는 투기자본이 경영권을 공격할 경우 국익 손실이 불가피하다. 세계 대부분 나라가 이런 제도를 도입하지 않는 데는 까닭이 있다.

이런 중요 법안을 국정 공백기와 정치 혼란기에 밀어붙이기 식으로 통과시킨다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제대로 된 검토와 공론화 과정을 거친 뒤에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 신중하게 추진해야 할 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