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대선 불출마 선언]

유력 대선 주자 중 한 사람이었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대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정치 교체를 이루고 국가 통합을 이루려던 순수한 뜻을 접었다"고 밝혔다. 지난달 12일 귀국 후 3주 만의 대선 포기 선언이다. 반 전 총장 지지율은 보수 주자 중에서 선두지만 지속되는 하락세를 만회하긴 어렵다고 본 것 같다.

반 전 총장은 귀국하면서 "국민과 국가를 위해 얼마든지 몸을 불사르겠다"는 각오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유엔 사무총장으로 10년간 국제 무대에서 쌓은 경륜과 식견을 국내 정치에서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본인의 정치 경험 부족 탓일 것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 원인은 지금 박근혜 정권에 실망하고 분노한 민심을 좀처럼 바꾸기 힘들다는 정치 지형 자체에 있다. 반 전 총장은 이 흐름을 돌릴만한 비상한 결단과 지도자 자질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

반 전 총장 불출마로 보수 진영에는 다시 커다란 구멍이 하나 생겼다. 지금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야권은 절대 우세에 있다. 문재인 전 대표가 압도적 선두인 가운데 이재명 성남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등의 지지율을 합하면 60% 안팎이다. 이 와중에 벌어진 반 전 총장 사퇴로 보수 정치는 사실상 진공 상태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우리 사회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보수층이 처음 처한 상황이다. 1992년 이후 대선에서 1·2위를 다투던 보수 후보 득표율이 40% 밑으로 내려간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번 대선 국면에서는 반 전 총장 등 보수 주자 지지율을 다 합해도 2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출마 여부도 모르는 황교안 국무총리 지지율까지 합해서다. 수백만 국민이 대선에서 자신을 대표할 사람을 보지도 못한다는 것은 선거 향배를 떠나 사회적으로 비정상이고 위험한 상황이다. 선거는 국민의 이해와 요구가 분출되고 해소되는 장(場)이기도 하다. 선거가 출구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다른 출구를 찾게 된다.

지금 보수 진영에선 바른정당 소속인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가 있고, 여기에 만약 황 총리가 가세한다면 이 3인의 삼각 구도가 형성된다. 대선 국면에서조차 친박(親朴)과 비박(非朴) 후보가 또다시 경쟁하는 모양새다. '절반에 가까운 보수층 표심을 담아낼 방안을 찾으라'는 요구가 비등할 테지만 여야 사이보다 더 멀다는 양측이 손을 잡을지는 미지수다. 끝내 따로 간다면 보수 정치는 완전히 지리멸렬할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 대선을 치른다면 민주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짧게는 석 달밖에 남지 않았을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이번 대선이 순조롭게 치러질 수 있느냐는 민주당에 달렸다. 지금까지 보여왔던 분열적 태도, 갈등을 일으키는 자세는 자제하고 좀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민주당 대선 주자들부터 국민 갈등과 진영 대결, 극단적 증오를 유발하는 방식의 선거운동은 그만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