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에 태어난 89세 할머니와 1992년생인 20대 외손녀. 일제강점기와 6·25 등 한국 역사의 격랑을 헤쳐온 할머니 이야기를 손녀가 글과 그림으로 옮겨 책으로 펴냈다. 정숙진(89), 윤여준(25)씨가 함께 만든 책 《그때, 우리 할머니》(북노마드)다. 두 사람은 이화여대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 정숙진씨는 가정학과를 졸업했고, 윤여준씨는 동양화과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해 미술사를 공부 중이다.

“나는 89세의 할머니다. 일제강점기 때 태어나 일제하에서 청소년기를 보냈고 경기여고 졸업반 때 8・15 광복을 맞았다. 이화여대 가정학과를 졸업하고 한 달도 되지 않아 6・25를 만나고, 9・28 수복, 1・4 후퇴, 대구에서의 피란 체험 등 이 나라의 격변을 직접 체험한 산증인이다. 6・25로 인해 큰 오라버니와 큰 형부를 잃었고, 미국 유학을 다녀와 신여성으로 살려 했던 젊은 날의 꿈도 포기해야 했다. 6・25가 나의 인생을 바꾸어놓은 것이다.”

“내겐 89세의 외할머니가 있다. 아흔을 바라보는 연세이지만 남편을 위해 삼시 세끼를 준비하고, 자녀들의 작은 선물에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날씨 좋은 날 남편과의 드라이브를 즐기는 사랑스러운 여자다. 귀여운 나의 할머니는 종종 가족 모임에서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놓곤 하였다. 가족들은 이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기록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고, 이번 책을 준비하면서 실행에 옮겨졌다. 가족을 모두 매료시킨 할머니의 이야기는 사실 대단하지 않다. 하지만 그 어떤 대단한 영화보다 나의 가슴을 저미게 하였다. 왜일까.”

“할머니의 삶은 미래의 내 모습”
할머니 정숙진씨와 손녀 윤여준씨.

윤여준씨는 할머니의 연애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연애를 떠올리고, 대학 시절 고민을 들으면서 자신의 고민을 되새겼다고 한다. 결혼 후 할머니가 어떻게 살았는지 들으면서 ‘내 미래는 어떻게 될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70년 전 할머니가 통치마에 저고리를 입고 가사실습을 했던 이화여대 안 한옥 ‘아령당’을 찾아보기도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좋아하지만 무뚝뚝한 성격 때문에 5분 이상 통화하지 못하는 무심한 손녀였습니다. 책을 만든다는 핑계로 1년 동안 종종 찾아뵙고 자주 통화하면서 엄청 친해졌습니다. 저희 세대는 한국전쟁을 영화나 책으로만 접해왔습니다. 그런데 할머니에게 한국전쟁은 꿈이 좌절되고 가족을 잃은 비극적인 시간이자 평생의 동반자를 만난 계기도 되었습니다. 할머니를 통해 지난날의 역사가 훨씬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할머니는 1950년 5월 31일 이화여대를 졸업한 후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6・25가 터졌고, 할머니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병원은 인민군이 점령했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피란했고, 생사도 모른 채 지내다 다행히 대구에서 재회할 수 있었다. 신문에 가족을 찾는다는 광고가 잔뜩 실리던 시절이었다. 전쟁 통에 대전여고 교사가 되어 홀로 생활하던 할머니는 같은 학교 교사였던 할아버지를 만나 결혼했다. 당시에는 흔치 않던 연애 결혼이라 떠들썩했다 한다. 할아버지는 결혼 6개월 만에 징집돼 전쟁에 나갔다 돌아왔다. 첫딸을 낳으면서 교직을 떠난 할머니는 그 후 4남매의 엄마로, 할아버지의 아내로 충실한 삶을 살아왔다. 열일곱 번에 걸쳐 이사를 다니고 잠시 문방구를 운영하면서 먹고살기 바빴던 시간이었다. 문방구 시절 이야기는 “고생시켜 너무 미안하다”는 할아버지의 간청으로 책에서는 빠졌다고 한다.

“주변 분들은 할머니가 경기여고, 이화여대를 졸업하신지도 몰랐대요. 책이 나오면서 ‘내 정체가 들통났다’고 하시죠. 항상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아내로 살아왔는데, 책이 나온 후에는 할아버지가 이제 ‘정 작가의 남편으로 살고 있다’고 농담하세요. 책을 만드는 동안 일기를 쓰면서 지난 삶을 돌아보았던 할머니는 요즘도 매일 일기로 하루 삶을 돌아보세요. 새로운 목표가 생겨 더 건강해진 것 같다고 하시죠.”

할머니는 손녀에게 “어두운 서랍 속에 갇혀 있던 내 삶을 끄집어내줘 고맙다”고 말했다. 김활란 여사 같은 신여성이 되어 여성 해방에 이바지하고 싶었던 할머니는 현모양처로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더 멋있게 살 수도 있지 않으셨어요?’라고 물으면 ‘그렇지 않아. 지금 삶도 좋아’라고 하세요. 4남매를 키우시는 동안 잔소리 한 번 안 하셨대요. 제가 봐도 자식들을 참 자유롭게 해주시는 것 같아요. 하지만 자기 관리는 철저하세요. 20여 년 전 대장암 수술을 하신 할머니는 요즘도 매일 스트레칭으로 몸매 관리를 하시고 예쁘게 화장하시죠. 할아버지는 요즘도 외출할 때마다 할머니에게 뽀뽀하세요. 지금도 ‘누가 먼저 좋아했는지’ 투닥투닥 싸우시는 모습이 참 좋아 보입니다. 그렇게 여성스러운 할머니가 가족 행사에서 마이크를 잡으면 카리스마를 발휘하세요.”

‘잘 나이 듦’을 보여주는 지혜로운 노인들

윤여준씨가 윗세대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3학년 때부터다.

“엄마의 대학 시절 사진을 보니 어깨 각도나 입꼬리가 한쪽만 올라간 게 저랑 비슷했어요. 제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이미 아줌마가 되어 있었으니, 그 시절 모습을 상상도 못 했거든요. 엄마의 젊은 날은 어땠는지 처음으로 물어봤습니다. 창경원에서 놀이기구를 타고 벚꽃놀이를 하면서 미팅한 이야기, 막걸리 집에서 기타 치고 놀던 이야기들이 흥미로웠죠. 엄마가 나보다 더 멋지게 청춘을 보낸 멋진 여자였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습니다. 작은 스튜디오에서 엄마와 제 사진을 중첩시켜 전시하면서 엄마를 초청해 토크쇼를 열었습니다.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엄마가 작업실 월세를 내려고 한 명 한 명 가르치다 30여 년 미술학원을 운영하게 된 이야기는 화가를 꿈꾸는 저희들의 현실과 다를 바가 없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를 책으로 내기로 마음먹은 것은 대학교 4학년 때였다.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로 졸업 작품을 준비하면서 책으로도 만들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제게 ‘꿈이 뭐야?’라고 물으면 언젠가부터 ‘책을 쓰고 싶다’고 이야기해왔거든요. 제가 가장 재미있게 느끼는 이야기가 할머니 이야기였고, 그 이야기를 짤막하게 적어 출판사에 보냈더니 흔쾌히 수락해주셨습니다.”

그는 지하철에서 만난 한 할머니 때문에 할머니들이 더 좋아졌다고 말한다.

“80대 할머니가 ‘난 다리 힘을 키워야 해’라면서 자리를 양보하셨어요. 그러다 한 젊은이가 기침을 하니까 사탕을 내밀면서 등을 쓸어내려주시고, 장애인이 파는 물건도 사주셨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할머니가 너무 좋아질 정도로 인상이 강렬했습니다.”

그 할머니의 모습이 20대 윤여준씨에게는 인생을 잘 살아온 인간의 표상이었고,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하지 않았을까? 그런 어른 그리고 이렇게 어른들의 삶을 이해하려는 젊은이가 많아지면 세대 갈등과 세대 단절도 극복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은 환경도 아니요, 남이 주는 것도 아니요, 바로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남편과 서로 ‘고마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려는 일상이 삶의 어려운 고비 고비를 넘기는 원동력이 되곤 했다. 우리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고 또 우리의 끝에는 아름다운 하늘나라가 있기에 노년이 두렵지 않다. 사랑하는 손녀 여준아! 너로 인해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어 즐겁고 행복했다. 앞으로 더욱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구나. 나는 지금도 네가 자랑스럽다!”라고 아흔을 앞둔 할머니는 손녀에게 이야기한다. 윤여준씨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는 내가 있었습니다. 현재의 나뿐 아니라 과거의 나, 미래의 나도 있었습니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이 책을 덮은 후 당신의 할머니 혹은 어머니가 처음부터 할머니, 어머니가 아니었음을,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소중한 인생사를 지니고 있음을 생각해볼 수 있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전화 한 통 걸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면 그걸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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