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일전쟁의 포화가 조선을 압박하던 1894년 어느 날 밤 누군가 서울 이화학당의 문을 두드렸다. 학당장 룰루 프라이가 문을 열고 나가 보니 뜻밖에도 하인을 거느린 귀부인이었다. 그녀는 이미 '소녀들만 받기로 돼 있어서 당신은 입학할 수 없다'는 학당 측의 거절을 듣고서도 직접 찾아온 것이었다. 그가 돌연 하인이 들고 있던 등불을 훅 불어 끄더니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암담한데, 여성이 배우지 않으면 그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수 있겠습니까?"
그녀는 한국 최초의 여성 문학사(文學士)가 된 김란사(1868?~1919·사진 왼쪽)였다. 고혜령 전 국사편찬위원회 편사부장이 최근 낸 '꺼진 등에 불을 켜라'(초이스북)는 지금까지 남편의 성을 딴 '하란사'로 알려졌던 그를 '김란사'로 복원시킨 본격적인 평전이다. 관료의 아내로 안락하게 살 수도 있었던 김란사는 이화학당에 입학한 뒤 미국 오하이오 웨슬리안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문학 과정을 공부했다(당시엔 전공 학과가 없었다). 귀국 후엔 여성 교육과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그의 이화학당 제자 중 한 명이 유관순이었다. 김란사는 파리강화회의에 밀사로 파견될 준비를 하던 중 중국 베이징에서 급환으로 숨을 거뒀다.
입력 2017.01.1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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