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돌을 녹이고, 불도 돌을 녹인다. 동굴에선 자연과 시간이 빚어내는 이 위대한 힘과 조우할 수 있다. 예술 작품처럼 신비로운 석순과 종유석 등이 가득한 지하 세계는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낸다. 계절에 관계없이 영상 10~15도의 쾌적함을 유지하는 것이 동굴의 또 다른 매력이다.

◇지하수가 녹인 석회암이 장관

강원도 삼척시는 동굴의 고장이다. 태백산맥의 기슭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뻗어내리면서 갖가지 구릉과 석회 동굴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중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일대 주변은 1966년 천연기념물 제178호로 지정된 환선굴을 비롯해 대금굴 등이 즐비하게 펼쳐져 있다.

환선굴은 5억3000만년 전에 만들어진 동양 최대의 석회암 동굴로, 1997년 일반에 공개됐다. 높이 15m, 폭 20m, 총 길이 6.2㎞(주굴 길이 3.3㎞)인 이곳에선 종유석의 생성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다섯 개의 연꽃을 연상시키는 오련폭포, 계란을 깨 돌 바닥에 올려놓은 듯한 옥좌대 등 기기묘묘한 동굴 생성물들이 숨 가쁘게 이어진다.

대금굴 ‘비룡폭포’ - 대금굴엔 물이 유난히 많다. 8m 높이의 이 폭포는 마치 용이 날아가는 듯하다는 뜻에서 ‘비룡(飛龍)’이라는 이름이 붙었다./삼척시 제공

총연장 1.6㎞인 대금굴의 가장 큰 특징은 수량이 많아 지금도 성장하는 '활굴(活窟)'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동굴 생성물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초기 단계에서부터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해발 920m에 있는 태백 용연동굴과 전국 최초의 생태체험 동굴인 평창 백룡동굴, 금광 갱도를 활용한 테마형 동굴인 정선 화암동굴 등도 강원도의 동굴 명소로 꼽힌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지질 공원

지하궁전을 떠오르게 하는 웅장한 규모가 방문객을 압도한다. 벽면과 바닥에 선명하게 새겨진 태고(太古)의 용암 흔적은 신비스러움을 더한다. 만장굴. 1958년 제주시 구좌읍 김녕초등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발견하면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제주시 구좌읍 산간지역의 검은오름에서 약 30만~100만년 전 분출한 용암류가 해안까지 흘러가면서 벵뒤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등 거문오름계 용암동굴군을 형성했다고 알려졌다. 그중 만장굴은 총 길이 7416m, 최대높이 30m, 최대폭 23m로 제주도의 동굴 중 규모가 가장 크다.

만장굴은 이웃한 김녕굴과 1962년 천연기념물 제98호로 지정된 데 이어 2007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2010년에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받았다. 만장굴은 1㎞ 구간만 일반인들에게 개방된다. 용암 거북바위(표석), 고드름 모양의 종유 등 용암이 흘러가면서 만든 기묘한 형상의 용암생성물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탐방로 마지막 부분에 만나는 7.6m 높이의 석주(石柱)는 용암이 만든 걸작이다. 동굴 내부에 서식하는 생물도 60여 종이 넘는다. 제주도에서 일반에 공개되는 천연 용암동굴은 만장굴, 미천굴(서귀포시 성산읍), 협재굴, 쌍용굴(이상 제주시 한림읍) 등 4곳이다.

◇'아기 예수 품은 마리아상 석순' 등 눈길

고수동굴 ‘사자바위’ - 사자가 포효하는 모습의 종유석(鐘乳石).

천연 동굴의 고장인 충북 단양군에는 5억4000만년의 연륜을 지닌 석회암 지대에 15만년 전 생성된 고수동굴(단양읍 고수리)이 있다. 단양군 내 180여개 석회암 천연 동굴 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힐 만큼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1.7㎞ 길이의 동굴에는 자연이 빚어낸 조각품들이 즐비하다.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은 듯한 모습의 마리아상 석순(石筍)을 비롯해 독수리, 사자, 하트 등 독특한 모양의 종유석(鐘乳石)이 즐비하다. 1976년 천연기념물 제256호로 지정됐다. 같은 해 일반인에게 공개된 이후에는 해마다 50만명 이상이 찾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고수동굴에서 차로 10분 거리에는 4억 5000만년 전에 만들어진 천동동굴(충북 기념물 제19호)이 있다. 영지버섯과 포도송이를 닮은 수중 석순이 지하수가 고인 연못에 생성되어 있다. 단양군 관계자는 "온달 장군이 수양했다는 전설이 있는 온달동굴(천연기념물 제261호) 등 신비로운 자연의 조화를 간직한 단양 지역 천연 동굴은 겨울철 가족 여행지로 안성맞춤"이라고 말했다.

◇폐광 활용한 수도권 유일의 동굴

경기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광명동굴은 원래 광산이었다. 1912년 채광을 시작해 1972년까지 금(52㎏), 은 (6070㎏) 등을 캐내고 폐광되는 운명을 맞았다. 이후 40년간 새우젓 저장소 등으로 사용됐던 이곳을 광명시가 사들여 동굴 테마파크로 개발했다. 7.8㎞에 이르는 갱도 가운데 약 2㎞를 문화예술 복합공간으로 꾸몄다.

폐광 활용한 광명동굴… 음악회도 열려요 - 45년 전 문을 닫은 광산은 새우젓 저장소를 거쳐 문화예술 테마파크로 다시 태어났다. 광명시 광명동굴 안에 있는 공연장 ‘예술의 전당’에선 크리스마스였던 지난달 25일 송년 음악회가 열렸다. 작년 한 해 동안 수도권 유일의 동굴 관광지인 이곳을 다녀간 사람은 142만명이었다.

동굴 입구부터 약 한 시간 남짓 갱도를 따라 걸으면 오감이 만족스러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여러 갈래 갱도를 활용한 관람·체험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어둠 속에서 LED 조명, 홀로그램과 더불어 각종 조형물이 빛의 향연을 펼친다. 황금을 주제로 꾸민 '황금 궁전''황금패 소망의 벽' '황금길'도 있다. 350여명이 들어가는 공간에 자리 잡은 '예술의 전당'에선 공연이 열리거나 영상이 상영된다. '동굴 아쿠아 월드'에서는 다양한 물고기를 만날 수 있다. '황금폭포'(높이 9m, 폭 8.5m)는 웅장한 물소리를 자랑한다. '와인동굴'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170여종의 각종 와인을 시음·구입할 수 있으며, 간단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이 있다.

수도권에서 유일한 동굴 관광지인 이곳에 작년 한 해 유료 관광객 142만여명이 찾았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하며 매주 월요일은 문을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