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판정검사(이하 신검)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헬조선 건아로 태어난 이상 신검을 피할 길은 달리 없다. 하지만 신검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별로 힘들지도 않고 큰 이펙트도 없는 하루짜리 단발성 행사다 보니,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드문 탓이다. 이 때문에 신검 대상자 대부분은 신검에 대해 막연히 군대의 연장선 정도로만 생각하다 일일 병영 체험하듯 다녀오는 게 보통이다.
이렇다 보니 드물게나마 신검 대상자들이 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손해를 보는 일이 있다. 어차피 앞으로 손해 보고 살 일이 널리고 널린 게 우리네 인생이다. 굳이 신검에서까지 손해를 볼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신검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고, 어떻게 해야 손해를 피해갈 수 있을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댁이 나를 언제 봤다고
의사 : 뒤 돌아봐
신검 대상자 : 예?
의사 : 아 돌아보라고, 안 들려?
옛날 병무청에서는 흔했던 광경이지만, 지금은 아주 운이 없어야 볼까말까한 상황이긴 하다. 여하간 대부분은 이런 상황이 오면 우렁차게 ‘죄송합니다!’라고 외치겠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럴 필요 없다. 그대에게 땍땍거리는 의사가 군대 상관으로 보이는가? 징병전담의사들은 현역 군의관이 아닌 보충역 병역 의무자다. 달리 말하면, 임기제 공무원 신분 민간인이다.
백번 양보해 그들이 군의관이라 쳐 보자. 그럼 그대는 군인인가? 계급과 군번을 받기 전까지, 그대는 군인이 아니다. 그럼에도 장교가 사병 부리듯 신검 대상자에게 반말하고 짜증을 부리는 징병전담의가 드물게 있다. 편히 일하고 군대놀이도 할 겸,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신검 대상자들을 갖고 노는 것이다.
의사 : ㅇㅇㅇ 1급, 1급 복창!
신검 대상자 : 앜! 1급!
가끔 막나가는 징병전담의는 신체검사 등급을 복명복창시키기도 한다. 남들이 한다고 그대도 하지는 마라. 그냥 무시하고 가면 된다. 길에서 마주친 동네 아저씨가 그대에게 “자네 집 주소 크게 외쳐봐”라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거다. 사회 물을 쬐끔이라도 맛본 20대 중반만 돼도 이런 대우를 받으면 당장 뒤집어엎을 사람이 태반이다.
혹시나 징병전담의가 시비를 걸면 댁이 뭔데 나한테 명령이냐며 점잖게 타이르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자. 가끔 징계를 먹고 나서 자신을 신고한 신검 대상자에게 욕설문자나 전화를 날리는 악질도 있는데, 낯선 번호로 연락이 오면 녹음과 캡처를 잘해서 치킨 값을 벌도록 하자.
◇여기 안 아픈 사람이 어딨어
신검 대상자 : 제가 한쪽 귀가 잘 안 들리고요…
의사 : 귀 좀 나빠도 군 생활 잘해요
신검 대상자 : 손가락도 이렇게… 잘 안 구부러지고요
의사 : 손가락 좀 아파도 군 생활 잘해요
신검 대상자 : 신장에도 문제가 있어서, 사구체신염이…
의사 : 신장 좀 안 좋아도 군 생활 잘해요
징병전담의사는 그대 엄마가 아니다.
대상자가 말하는 대로 다 믿어줄 필요도 의무도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당신 몸을 X-ray로 훑어보고, 거기에서 이상 소견이 없으면 가차없이 1급을 때린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병사용 진단서, MRI 결과, 진료기록, 수술기록지 등 의사 소견이 담긴 보조자료다. 물론 대부분 징병전담의는 몸이 안 좋다는 하소연을 받으면 신체 이상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떼서 다시 오라고 안내해 준다.
하지만 그대가 매우 운이 없어 안내조차 받지 못할 수도 있고, 안내를 받는다 한들 신검을 두 번 받는 건 적잖이 귀찮은 일이다. 미리 챙겨 두면 괜한 입씨름과 수고를 줄일 수 있다.
이와 연관된 팁인데, 어디 아픈 곳이 없더라도 웬만하면 신검 전에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한 번 받아보는 게 좋다.
자신도 몰랐던 질환이나 신체 이상이 발견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신체 급수 문제를 떠나서라도, 몸에 결함이 있는 걸 모르고 있다가 군대에서 갑자기 발현되면 정말 난감해진다.
실제로 군대 특유의 가혹한 환경에서 체력을 극한까지 쓰다 숨어 있던 질병이 터져 나오는 바람에 고생하는 장병이 꽤 있다. 대부분은 스무살 될 때까지 정밀검사를 받아본 적이 없을 테니, 성인 된 기념으로 종합건강체크 한 번 하는 셈치고 온몸을 구석구석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할까 말까 고민되면 하지 말자
의사 : 화면에 나오는 숫자 읽어주세요
신검 대상자 : 3! 5! 2! 7! 3! 4! 7! (다 틀렸다) 꼭 가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가고 싶은 거라면 이러지 말자. 정신 이상으로 면제 판정 노리는 줄 안다. 어차피 요즘은 시력 때문에 보충역으로 빠지는 경우는 드물다. 웬만큼 눈 나빠도 다 현역이다.
시력 검사 때가 아니더라도 신검 도중 "꼭 가고 싶습니다!"라고 외치는 사람은 꽤 있다.
신검 때 좋은 인상을 주면 상급 부대나 편한 보직으로 빠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라 카더라.
남이 그러면 괜히 나도 따라 하고 싶어지는데, 웬만하면 참자.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병역판정검사장에 있는 의사들은 군인이 아니다. 당신이 앞으로 갈 부대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다. 징병전담의가 그대를 양아들로 삼아도 부대나 특기 분류에는 전혀 영향이 없다.
◇바지 내리는 검사는 없다
의사 : 팬티 내리고, 좌우로 벌립니다
신검 대상자 : 네?
의사 : 신검 때 항문검사 하는 것도 몰라요? 빨리 내립니다
이럴 일은 웬만하면 없을 것이다. 90년대까지는 치질 여부를 보고 듀얼코어가 제대로 달렸는지 확인하려 신검 때 후장 검사를 했다. 하지만 2000년도 이후로는 전국 어느 병무청에서도 이런 검사는 하지 않는다.
간혹 아재들이 무용담처럼 병무청에서 뒤를 깐 이야기를 하고, 형들이 가끔 애들 놀린답시고 신검때 후장 검사 한다는 썰을 푸는데, 이제 안그러니 너무 걱정 말자.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사실 병무청에서 신검 때 겪는 일은 군대에 비하면 프롤로그 축에도 끼지 못한다. 어차피 대부분 장정은 병영에서 글 한 편에는 다 담지도 못할 온갖 해괴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큰 재앙이 다가온다 해서 코앞에 있는 소소한 재난을 온전히 받아낼 필요는 없다. 입대해 보면 알겠지만, 군대 관련된 건 피할 수 있으면 가급적 피하는게 좋다. 잘 준비해 봉변 없는 보람찬 신검이 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