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남자 친구의 환청에 시달리던 윤서정(서현진)이 칼로 제 손목을 긋는다. 신경이 죄다 끊긴 환부를 외과의 김사부(한석규)가 달려와 수술한다. 자르고 꿰매는 손놀림이 건반을 날아다니는 피아니스트처럼 유연하다. 수술이 예술로 승화한 이 장면은 베테랑 연기자 한석규와 손 대역을 맡은 자문의(醫)의 합작품이다.
자문의는 의학 드라마의 숨은 공신이다. 대본 집필부터 제작 전(全) 과정에 참여한다. 회당 서너 차례 수술 장면이 등장하는 의학 드라마에서 작품 완성도를 결정하는 '핵심 스태프'인 셈. 시청률 26%를 돌파한 SBS '낭만닥터 김사부'(이하 낭만닥터)에서 활약한 강정희 응급의학과 전문의에게 촬영담을 들었다.
◇병원 현장 생생하게 구현한다
의학 드라마의 백미는 긴장감 넘치는 수술 장면이다. 병상에 누운 몸은 특수 제작한 실리콘 모형. '간암 병력 있는 교통사고 환자' '배 다섯 곳, 등 한 곳이 칼에 찔린 자상' 식으로 작가와 자문의가 수술 내용을 결정하면 특수분장팀이 그에 맞는 상·하체와 장기를 제작한다. 손만 나오는 수술 장면에선 '한석규 손' '서현진 손'을 맡은 자문의가 대역을 하고, 배우가 등장해야 하는 장면에선 촬영 전 자문의가 먼저 수술 과정을 시연한다.
리얼리티를 위해 극중 배우들 몸에 직접 손을 대기도 한다. '낭만닥터' 10화에서 윤서정이 음주 측정을 거부하는 교통사고 피의자의 소매를 걷어 피를 뽑는 대목은 강정희씨가 실제로 배우에게 채혈한 장면이다. "미안한 마음에 피 뽑힌 배우와 마주칠 때마다 '아프지 않았느냐' '멍들진 않았느냐' 물었지요."
극 중 에피소드도 대부분 실화다. "평생의 반려였던 아내의 심장이 멈추자, 할아버지가 심폐소생술 하려는 윤서정을 막는 장면이 있어요. '서로 약속했다. 심정지 오더라도 (심폐소생술) 안 하기로. 여보,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라고 말하죠. 병원 현장도 똑같아요. 수없이 마주친 심정지 환자들과 그 보호자들 모습이 떠올라 먹먹했지요. 울기도 많이 울고."
◇'의드' 성패 좌우하는 '핵심 스태프'
자문의가 조언을 구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신회장(주현)의 인공심장 수술 장면이 그랬다. "제 전공이 아니라 심장 분야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지요. 흉부외과 석학에게 의뢰해 회의도 열고요. 점심쯤 시작한 촬영이 다음 날 새벽에야 끝났지요." 일주일 중 엿새는 촬영과 회의로 보낸다. 강 전문의는 "자문의는 본업(本業)이 아니라 계약직 아르바이트"라고 했다. 보수를 묻자 "의사 아르바이트로는 박봉"이라며 웃는다.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다 재충전이 필요해 사직서를 냈어요. 일년 정도 숨 고르면서 복직 시기 고민하다 '자문의 모집 공고'를 접했지요." 그는 "정의로운 '김사부'를 통해 의사란 무엇인지 깊이 고민했다"며 수술 막 끝낸 김사부처럼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