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동안 안 자면 혈중 알코올 농도 0.1%인 상태
미국 경제 630억 달러 이상 수면 부족 비용 치뤄
허핑턴 포스트 뉴욕 사무실 낮잠방엔 직원들로 가득
제프 베조스, 에릭 슈미트도 하루 8시간 이상 수면 강조

1950년 그리스 아테네 태생인 아리아나 허핑턴은 16세 때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대 거튼칼리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으며 학생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작가와 언론인으로 활동하다 1986년 마이클 허핑턴 공화당 상원의원과 결혼했다.

아리아나 허핑턴(67) 허핑턴포스트의 창립자는 2007년 4월, 피로 누적으로 쓰러졌다. 당시 그에게 일은 잠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 매일같이 100여 통에 달하는 이메일에 답장을 보내고 블로그에 긴 글을 쓰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루에 서너 시간을 자고 미국 전역을 비행기를 타고 누비면서 그는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 사무실에 앉은 그는 눈을 떠보니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머리를 책상에 부딪혀 광대뼈가 부러졌고, 다섯 바늘을 꿰매야했다.

이후 병원을 다니며 뇌 MRI 등 정밀검사를 받았지만 허핑턴은 건강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만 알게됐다. 그는 단지 매일 조금씩 더 자야 한다는 처방을 받았다. 2005년 직원 세 명으로 시작해 세계 최대 온라인 매체가 된 미디어 업계의 거물 아리아나 허핑턴이 부딪힌 첫 번째 장애물이 수면 부족이었던 것이다.

지난 9월 국내에 번역, 출간된 ‘수면 혁명’.

이후 ‘수면 전도사’가 된 허핑턴은 지난 해 4월 잠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책 ‘수면 혁명(원제 The Sleep Revolution)’을 펴낸 뒤 미국 전역의 대학·기업을 다니며 숙면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숙면이 행복과 성공의 필수 요건”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루 4~5시간씩만 자고도 완벽하게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착각일 뿐이다. 우리는 수면 부족이 성공을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라는 ‘집단 환상’에 빠져 살아왔다. 바쁘고, 일에 치이고, 잠을 줄이는 희생을 마치 성공한 사람만의 훈장처럼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수면은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다. 많은 연구에 따르면 직원들이 충분히 잠자는 회사의 생산성이 더 크다.”

지난달 뉴욕 맨하튼에 있는 아리아나 허핑턴을 전화 인터뷰 했다. 지난 밤에도 숙면을 취해 최상의 컨디션이라고 말하는 그는 시종일관 밝은 태도와 센스있는 유머 감각을 자랑했다. 그는 지난 해 8월 11년 동안 이끌어온 허핑턴포스트 편집장 직을 떠나 건강 및 웰빙 플랫폼 ‘스라이브 글로벌’에 전념하고 있다고 전했다.

-평소에도 수면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생각했나?

“내가 태어난 아테네에서는 잠을 숭배한다. 어린 시절 방 한 칸에서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지냈는데, 자는 사람을 절대 깨워선 안된다고 배웠다. 어머니는 잠이 건강과 행복, 그리고 학업에 중요하다고 굳게 믿으셨다.

하지만 이렇게 잠을 중시하는 환경 속에서 인생의 첫걸음을 뗐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처음에는 캐임브리지에서 공부하기 위해, 그다음에는 런던에서 살며 일하기 위해 집을 떠나자마자 나는 수면 부족을 성공의 필수 요소로 여기는 문화 규범을 따르게 됐다. 10년 전까지 나는 밤을 새는 것을 뿌듯하게 여겼고, 더 많은 일을 성취했다는 기쁨과 약간의 우월감까지 느꼈다.”

-바쁜 현대인이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 아닌가?

“지난 100년간 전세계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현대인은 과로와 번아웃 증후군 (burnout syndrome·신체적, 정신적으로 탈진한 상태)이 성공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라는 ‘집단 환상’에 빠져 있었다. 번아웃이 문명화에 따른 질병이라면 수면 부족은 그 주요 증상 가운데 하나다. 항상 피곤한 상태에서 생활하면서도 잠을 잘 수 없는 것은 현대 생활의 모순이다.

심지어 ‘나는 극도로 바쁘다’라는 것은 바로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계급상의 지위를 보여주기도 한다. 너도 나도 경쟁적으로 바쁨을 과시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하루 일과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그래서 줄일 뭔가를 찾게 되고, 그 과정에서 가장 만만한 대상이 바로 수면인 것이다. 하지만 이는 지속 가능한 상태가 아니다. 부작용들이 전세계에서 속출하고 있다.”

-수면 부족에 대한 현대인의 불만이 커진 것인가?

“그렇다. 그 증거는 우리 주위에 널려 있다. 예를 들면 구글에 “나는 왜(why am I)라고 입력하는 순간 무엇이 뜰 것 같은가? 다음 단어를 치기도 전에 ‘나는 왜 이렇게 피곤한 것일까(why am I so tired?)’가 검색된다.

세계적인 시대 정신이 이 다섯 단어 안에 응축되어 있다. 그것은 현시대의 실존주의적 외침이다. 뉴욕만이 아니다. 토론토, 파리, 서울, 마드리드, 뉴델리, 베를린, 케이프타운, 그리고 런던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제 수면 부족은 새로운 세계 공통어가 됐다.”

2005년 설립된 온라인 뉴스 매체 허핑턴포스트는 창간 6년 만인 2011년 160년 전통의 언론사 뉴욕타임스의 트래픽을 추월했다. 2012년에는 온라인 매체로는 처음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매달 2억 명이 허핑턴포스트를 방문하고, 하루에 10개 언어로 1500개의 콘텐츠가 생성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수면 시간은 6시간48분으로, OECD 평균인 8시간22분보다 1시간 이상 부족한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다. 불면증은 최근 5년새 40% 증가했으며, 여성이 남성에 비해 1.5배 많다.

-한국인의 수면 부족은 다른 나라보다 심각한 편이다.

“잘 알고 있다. 전세계에 과로로 인한 죽음을 일컫는 고유어가 있는 나라는 일본, 중국, 한국이다. 각각 카로시, 궈라오스, 과로사다. 영어에는 아직 그런 단어가 없다. 한국이 빠른 성장을 거둔 만큼 수면 부족과 과로가 심각한 문제이지만, 이를 일부의 나약함으로 치부할 뿐, 해결하려는 노력을 미미한 점이 안타깝다.”

-어떻게 해야 직장인의 수면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나?

“번아웃과 스트레스를 통해서만 성공을 이뤄낼 수 있다는 잘못된 성공의 의미를 재정의해야 한다.”

-하지만 당신도 결국 과로를 통해 성공하지 않았나. 충분히 자면서도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을거라고 생각하나?

“물론이다. 하루에 8시간씩 자고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특히 앞으로의 비즈니스 세계는 더 그럴 것이다. 수면부족은 산업화된 세계를 쫓아다니는 망령이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하지 않나. 과거의 기준으로 성공을 이룰 수 없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시간은 돈이다’라는 진리는 이제 더이상 먹히지 않는다.”

-하지만 현대인에게 근무시간에 일을 끝내지 못할 정도로 과중한 업무가 주어진다. 친구와의 모임, 여행, 운동까지 포기하는 직장인에게 마지막으로 줄일 수 있는 시간은 수면밖에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은 4~5시간만 자고도 7~8시간 잔 것처럼 일을 잘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이러한 착각은 개인의 건강뿐 아니라, 생산성과 판단력에도 영향을 끼친다. 즉, 수면이 부족하면 좋은 아이디어를 제시하지 못할 수 있다. 혹은 직면해 있는 문제에 창의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쩌면 조급해하며 성질을 부릴 수도 있고, 그러한 행동으로 하루를 낭비할 수도 있다. 그리고 병원이나 고속도로 혹은 상공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경우 수면 부족이 생사를 가르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직장인의 수면 부족은 어떤 문제를 일으키나?

“수면 부족은 기억력을 손상시킬 뿐 아니라,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마치 일어난 것처럼 우리의 기억을 왜곡시킬 수 있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어바인캠퍼스의 연구에서 수면 부족이 실제로 기억을 왜곡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하룻밤에 5시간 이하로 잠을 잔 실험 참가자들은 자신이 보지 않은 뉴스 비디오를 보았다고 기억하며, 그렇게 보고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들은 자신이 겪은 사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연구원들이 그들에게 제공한 왜곡된 정보를 섞어 말할 가능성이 훨씬 더 컸다.

아울러 24시간 동안 자지 않을 경우 당신의 상태는 혈중 알코올 농도 0.1%인 상태, 즉 ‘법적으로 취한’ 상태와 동일하다. 밤을 새고 나온 직원은 술을 마시고 일하는 것과 같다는 얘기다.”

아리아나 허핑턴은 지난 2010년 테드(TED) 강연에서 ‘수면’을 주제로 강연했고, 객석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그렇다면 충분히 잠을 자지 않는 직원은 회사와 국가 경제에 얼마나 큰 손실을 야기하나?

“수면 부족으로 생산성이 얼마나 저하되는지를 근무 일수로 환산하면, 미국 근로자당 연간 11일이 넘고 비용으로는 약 2280달러에 달한다. 그 결과 미국 경제는 잦은 결근과 근로자 집중 부족으로 연간 총 630억 달러 이상의 수면 부족 비용을 치르고 있다.

호주에서는 수면 장애 때문에 연간 50억 달러 이상을 의료비와 간접 비용에 쓰고 있다. 그리고 ‘삶의 질 저하’로 연간 314억달러에 달하는 추가 비용이 소요되고 있다.”

-수면권을 보장해달라는 직원의 요구는 자칫 나태함과 무능함으로 낙인 찍힐 수 도 있다.

“사회적 인식이 가장 큰 문제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아침형 인간임을 자랑하는 허풍쟁이가 여전히 많이 있다. 하루에 4시간밖에 자지 않는다고 떠벌리는 최고 경영자가 있다면, 이 사회는 그가 본질적으로 자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의사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글로벌 리더들은 자신의 수면 부족을 자랑삼지 않고 잠을 당당하게 우선순위에 둔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최고 경영자 사티아 나델라는 하루 8시간을 자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다. 아마존의 최고경영자 제프 베조스와 캠벨 수프의 데니즈 모리슨 역시 8시간 숙면을 강조한적이 있다. 구글 회장 에릭 슈미트는 하루에 8시간 반 이상을 잔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8시간 숙면을 해야 제대로 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벤처 캐피털리스트 마크 앤드리슨은 이렇게 말했다. “7시간 30분 자면 큰 문제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다. 7시간 자면 능력이 약간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6시간은 결코 최선일 수 없으며 그저 차선일 뿐이다. 5시간은 커다란 문제가 있다. 4시간은 내가 좀비 상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떻게 충분히 자면서도 할 일을 다 해내는 것인가?

“대부분 사람들은 흔히 수면 시간은 ‘쉬는 시간’ 즉 ‘일하지 않는 시간’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잠을 많이 자는 사람은 게으르고,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최근 과학 연구에 따르면 ‘자면서 꿈에서 생각해볼께’라는 말이 실제로 가능하다. 영국 엑서터대학교의 연구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수면은 기존에 기억하지 못한 사실을 기억해 낼 가능성을 배로 증가시킨다. 자고 난 다음에 뭔가를 더 쉽게 기억해 낸다는 것은 밤새 일부 기억이 더 선명해진다는 의미다. 이것은 중요한 정보들을 기억하도록 잠자면서 열심히 연습을 한다는 개념을 뒷받침한다.”

-잠을 자면서도 일할 수 있다는 얘기인가?

“흔히 소설가나 극작가가 머리 맡에 수첩을 하나 두고 꿈에서 본 내용을 적는다고 한다. 하지만 예술가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저 수면을 취함으로써 마음 속 영감의 원천에 접근할 수 있다. 낮 동안 우리를 괴롭히던 자기 불신이 자는 동안 잠잠해지고 우리의 창의력이 두려움이나 비판, 혹은 검열 없이 표출되기 때문이다.

하버드 의대 정신과 의사 앨런 홉슨 박사는 “꿈을 꾸는 것은 가장 창의적인 의식 상태일 수 있다. 이 상태에서 인지적 요소가 무질서하게, 즉흥적으로 재결합하면서 정보의 새로운 배열이 일어난다. 즉 새로운 아이디어가 탄생하는 것”라고 말했다.

실제로 꿈이 몇몇 과학적 돌파구에 영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세기 중반 미국의 발명가 일라이어스 하우는 ‘이상한 나라의 왕에게 처형당하는’ 악몽을 꾸다가 재봉틀 기술의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다. 러시아의 화학자이자 발명가인 드미트리 멘델레예프가 고안한 원소 주기율표 역시 꿈에서 영감을 받아 이뤄낸 획기적인 성과였다. 1936년 노벨상을 받은 정신 생물학자 옥토 뢰비 역시 꿈에서 본 실험 방식을 그대로 재현했다고 말했다. 래리 페이지 구글 창업자 역시 23살에 꾼 꿈에서 깨어나자 마자 구글을 위한 알고리즘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그는 2009년 미시간대학교의 졸업식 연설에서 “정말 좋은 꿈을 꾼다면, 그것을 꽉 붙들라!”고 말했다.”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은 근로자의 수면권을 어떻게 보장하고 있나?

“골드만삭스와 맥킨지 등에서는 수면 전문가를 고용했고, 마크 베르톨리니가 CEO를 맡고 있는 애트나에서는 직원들에게 7시간 이상 수면을 취한 날수에 따라 20일마다 25∼300달러씩 상금을 준다.

아울러, 허핑턴포스트 뉴욕 사무실에는 낮잠방이 있다. 허핑턴포스트에 일하는 사람들은 ‘결코 잠들지 않는 도시’ 속의 낮잠방에 들어가길 싫어했다. 하지만 이제는 낮잠방이 항상 사람들로 가득 차기 때문에, 우리는 런던 사무실을 시작으로 낮잠방을 전 세계로 확대시키고 있다. 밴앤드제리와 자포스, 나이키를 포함한 많은 기업이 낮잠방을 설치하고 있다.”

-책의 제목처럼 ‘수면 혁명’이 일어날 것으로 보나?

“전 세계적으로 수면을 바라보는 태도는 급변하며 ‘티핑포인트(어떠한 현상이 서서히 진행되다가 작은 요인으로 한순간 폭발하는 것)’가 시작됐다. 최근 맥킨지의 수면 전문가는 ‘충분한 수면과 효과적인 리더십 사이의 연관성 입증’이란 글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썼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맥킨지에 수면 전문가가 재직하고 있고 그가 ‘더 나은 리더가 되고 싶은 경영 간부는 잠을 줄일 게 아니라 늘려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실었다고 하면 다들 농담으로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전세계적으로 수면과 건강, 그리고 지속가능한 성장에 대한 담론이 중요해졌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