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태어났다면 학교와 학원 공부에 시달렸을 10살, 그러나 아프리카 빈민촌의 아이들은 쓰레기 더미 위에서 하루를 보낸다. "학교 안 가냐" 물으면 "학교가 뭐에요?"라며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되묻는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교육'이지만, 이들에겐 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단순히 지구촌 반대편의 사정이라 여길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빈민가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한국인들이 있다. 그리고 그 척박한 땅에서, 한국인의 손길 덕분에 점차 희망이 움트고 있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의 빈민촌 곳곳에 있는 '한국인 OO씨'의 학교를 찾아가 보자.

연예인이나 유명인들의 선행은 때로 대중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자신이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유명인의 행동을 따라 하며, 선행이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가기도 한다. 자신의 이름을 건 학교를 세우고, 한국에서 번 돈으로 이들을 꾸준히 돌보고 있는 연예인과 유명인의 사례를 모았다.

캄보디아 '빌봉 김준수초등학교'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우리에게 큰 선물을 줘 고맙다.
김준수처럼 남들에게 봉사하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겠다"
-빌봉 마을 행정 책임자-

JYJ의 멤버 김준수.

아이돌그룹 JYJ의 멤버 김준수는 2011년, 캄보디아의 오지마을 빌봉에 자신의 이름을 딴 '빌봉 김준수초등학교'를 세웠다. 그가 6,000여만 원을 기증해 지은 '김준수초등학교' 덕분에 이곳의 아이들 200여 명은 나무 그늘이나 공터 대신 어엿한 건물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김준수가 학교를 세우게 된 계기는 빌봉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어머니의 요청이다. 처음엔 우물이나 자전거를 기부하던 그는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 교육'이라고 생각해 학교 건립을 추진했다. 또 교사들의 1년 치 월급을 쾌척하여 아이들이 돈 걱정 없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캄보디아의 빌봉 마을은 이러한 김준수의 선행에 감사하는 뜻으로 '빌봉 마을'이란 이름을 '김준수 마을'로 바꿨다.

▶관련기사 캄보디아 어린이에 학교 선물한 김준수

부르키나파소 '씨엔블루 스쿨'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왜 유치원에 보내야 하는지
이런 질문을 마을에서 하게 된 건 의미 있는 일입니다"
-씨엔블루 스쿨 운영자-

졸업장을 든 '씨엔블루 스쿨' 아이들.
그룹 '씨엔블루'의 멤버들.

아프리카 대륙의 최빈국 중 하나인 부르키나파소에는 밴드 씨엔블루(CN BLUE)와 그들의 소속사 FNC엔터테인먼트가 세운 '씨엔블루 스쿨'이 있다. 2013년 완공된 이 학교는 씨엔블루의 음반 판매와 콘서트를 통해 번 수익금으로 지어졌다. 현재 이곳에는 1,000여 명이 넘는 유치원생과 청소년들이 공부하고 있다.

부르키나파소 씨엔블루 학교 건립은 소속사의 한성호 대표가 아이들의 빈곤한 생활을 담은 동영상을 멤버들에게 보여주면서 시작됐다. 이곳의 아이들은 보통 하루에 한 끼를 먹고, 학교는커녕 길거리에서 물건을 팔며 시간을 보냈다. 이에 씨엔블루는 학교를 세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급식 전문 선생님을 고용해 아이들의 끼니를 책임졌다. 또 방과 후 교실 프로그램을 만들어 하교 후 노동에 시달리던 아이들을 다시 학교로 모았다. 씨엔블루의 리더 정용화는 씨엔블루 스쿨의 교가를 직접 작사·작곡하여 선물하기도 했다.

▶ 관련기사 씨엔블루, 아프리카에 학교 설립해 꾸준한 지원 '약속'

우간다 '구봉서 학교'

"공부하려고 해도 비바람 피할 데가 없다고 해 돈을 보냈죠.
거기 졸업한 아이가 선생님이 됐다고 하니 큰 결실이에요."

-코미디언 故 구봉서-

우간다 '구봉서 학교'의 교실 모습.
코미디언 故 구봉서.

지난해 세상을 뜬 코미디언 故 구봉서도 생전 남모를 선행을 많이 했다. 구봉서는 IMF 외환위기 시절 10만 달러를 기부해 우간다의 은예로 지역에 최초의 고등학교를 세웠는데, 이러한 사실이 최근에서야 뒤늦게 알려졌다. 평소에도 기부를 많이 하던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의 1억 원 이상 기부자 모임의 회원으로 위촉됐기 때문이다.

'구봉서 학교'는 아무런 학교도 없던 우간다의 은예로 지역이 교육 마을로 발돋움하는 마중물이 됐다. 이후 우간다 정부는 '구봉서 학교'에 10억 원의 자금을 더 투입해 이 학교를 동북부 지역 최고의 명문으로 만들었다. 또 학교에 고용할 교사를 양성하기 위해 인근에 쿠미 대학교까지 세웠다. 한 명의 한국인이 빈민가에 스친 작은 손길이 큰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이다.

네팔 '엄홍길 휴먼스쿨'

"16좌를 완등한 나는
에베레스트 16곳에 학교를 지으려 한다"

-산악인 엄홍길-

'엄홍길 휴먼스쿨'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엄홍길 대장.

히말라야 고봉 16좌를 모두 오른 '엄 대장' 산악인 엄홍길이 다시 산으로 돌아간 건 학교를 세우기 위해서다. 그는 2010년부터 자신이 설립한 엄홍길휴먼재단과 함께, 에베레스트 산자락에 '엄홍길 휴먼스쿨'을 짓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11번째 '엄홍길 휴먼스쿨'이 탄생했다. 준공식에 네팔의 교육청 관계자들, 교장과 교사, 학생, 마을 주민 등 500여 명 넘는 사람들이 참석할 만큼 지역의 큰 행사였다.

엄홍길이 학교 건립을 결심한 건 '셰르파'(티베트족 계열의 고산족 이름. 히말라야 등반 안내자를 뜻하기도 한다)와 그 자녀들을 돕기 위해서다. 에베레스트에서 등반 도중 숨진 셰르파들의 사연을 많이 만났기 때문이다. 학교뿐 아니라 병원도 짓는다. 현지 주민은 물론 외국인 등반가들도 엄홍길이 지은 병원을 이용하고 있다.

▶관련기사 셰르파족 위한 학교 짓는 히말라야의 '엄 대장'

사랑하는 사람의 꿈을 대신 이뤄주기 위해 학교를 세우는 사례도 있다.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었지만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딸을 위해 지은 '혜륜 유치원'과 '나현 스쿨'이 그 사례다. 어딘가에 유명인이 아닌 일반인의 이름이 붙은 학교가 있다면 그 사연을 한번 들어보자.

바누아투 '혜륜 유치원'

"아직도 딸의 이름을 입에 올리기 전에 눈물이 먼저 스친다.
그럴 때마다 마누아투 아이들의 웃음을 떠올려 본다"

-현대중공업 사보-

바누아투에 지어진 '혜륜유치원'.
故 고혜륜양.

지난해 7월, 남태평양의 섬나라 바누아투에서는 '혜륜유치원'의 개원식이 열렸다. 아무도 모르게 진행된 '혜륜유치원'의 건립은 현대중공업 사보를 통해 처음 소개됐다. 유치원은 세운 사람은 회사 직원인 고계석 과장. '혜륜'은 2014년 세상을 떠난 그의 둘째 딸 이름이었다.

고 씨의 딸 혜륜양은 대학 입학을 앞두고 떠난 신입생 환영회에서 사망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경주 마우나 리조트 참사였다. 딸을 잃은 뒤 슬픔 속에 지내던 고 씨는 선교사가 되고 싶어 했던 딸의 꿈을 대신 이뤄주겠다고 결심하고, 유족 보상금으로 받은 6억 원 중 4억 원을 들고 바누아투로 갔다. 나머지 2억 원으로는 딸의 모교에 장학회를 설립했다. 고 씨가 바누아투를 여러 차례 오가며 마무리 공사까지 심혈을 기울인 끝에, 2층짜리 국립 유치원인 '혜륜유치원'이 지어질 수 있었다.

▶관련기사 하늘에 있는 딸에게 유치원 선물한 아빠

케냐 '나현스쿨'

"아프리카는 딸의 제2의 고향…
척박한 땅에서 희망을 꽃을 피우고 싶다고 말했다"

-故 나현 씨의 어머니-

'나현스쿨' 착공식.

지난해 봄,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 있는 한 빈민가에서 한국인의 이름 '나현'을 딴 학교의 착공식이 열렸다. 학교의 공식 명칭은 '세인트 가브리엘 나현스쿨'. 나현은 케냐·에티오피아·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대륙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전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 직원 故 나현 씨를 일컫는 것이었다. 나 씨는 코이카의 동아시아 팀장으로 일하다 귀국한 2013년, 뇌출혈로 사망했다.

코이카와 굿네이버스, 유가족은 평소 아이들의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나현 씨의 뜻을 기리기 위해 학교 건립을 결정했다. 나 씨의 열정과 헌신을 옆에서 지켜본 가족들과 직원들은 그녀의 꿈이 하늘에서도 이어지길 바라는 소망을 밝혔다.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책이라면, 이미 성인이 된 이들에게 필요한 건 직업이다. 한국인들은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기술을 가르치는 직업학교도 곳곳에 지었다. 도자기·농업 등 한국이 뛰어난 분야의 기술을 가르쳐, 빈민촌의 청년들이 새로이 꿈을 꾸고 자립하도록 한 성공 사례를 모았다.

페루 '코라우 도자기 학교'

"도자기 학교 덕분에 마을 주민들의 소득이 크게 늘었어요.
이렇게 번 돈으로 '메이드 인 코리아' TV·자동차를 사기도 하고요."

-박대원 前 코이카 이사장

페루 '코라우 도자기 학교'의 학생들.

세계적인 관광명소 페루 마추픽추로 가는 길목, 이곳에는 코이카가 건립한 '코라우 도자기 학교'가 있다. 이 학교는 해당 마을을 관할하는 구청에서 한국 측에 도자기 전문가를 보내달라고 요청하면서 만들어졌다. 이를 계기로 페루에 갔던 봉사 단원 5명은 한국 정부가 지원한 1억 원을 토대로 손수 땅을 일구고 학교를 지었다.

'코라우 도자기 학교'가 생기기 전 이곳 마을의 젊은이들은 운전이나 감자 농사를 지으며 생활했다. 그런데 도자기 기술을 배우기 시작하며 벌어들이는 수입이 5배로 늘었다. 수입뿐 아니라 저축을 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도자기 학교는 국내외 언론을 통해서도 크게 알려졌다. 페루 전역에서 '코라우 도자기 학교'가 유명해지며, 쿠스코 예술대학의 도예과 학생들이 이곳에서 기술을 배워가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페루 가난한 마을의 소득을 자연스레 높여 한국에 대한 친근감을 높인 공공외교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모잠비크 '새마을 농업훈련원'

"총보다 중요한 게 책과 곡괭이…
농업을 일으켜 한국처럼 부강한 나라로 만들고 싶다"

-'새마을 농업훈련원' 교사-

모잠비크 '새마을 농업훈련원' 학생들.

아프리카의 최빈국 모잠비크에는 한국인이 만든 '새마을 농업훈련원'이 있다. 2011년 한국의 기아대책이 모잠비크의 빈곤 퇴치를 위해 세운 이 훈련원에서, 지금까지 1,000여 명이 넘는 졸업생이 배출됐다. 이들은 한국에서 들여온 경운기와 농기계를 이용해 농업 기술을 배운다.

'새마을 농업훈련원'의 모잠비크 학생들에게 한국은 기적의 국가다. 농업에서 시작해 지금의 선진국을 일군 한국을 보며 자신들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웠기 때문이다. 이제 막 개발을 시작한 모잠비크는 아직도 인구의 90%가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수준이지만, 이런 그들에게 목표를 심어줬다는 건 큰 수확이다.

▶관련기사 땅에서 땀 흘려서, 한국농업 배워 잘살아보세

필리핀 '몬탈반 직업훈련원'

"저도 언젠가 한국처럼 큰 조선소를 세우는 게 목표입니다.
그전까지는 이를 악물고 기술을 배워야지요."

-'몬탈반 직업훈련소' 졸업생-

'몬탈반 직업훈련원'의 수업 모습.

'쓰레기 마을'이라 불리던 필리핀 몬탈반을 변화시킨 건 2014년 새로 생긴 '직업훈련원'이었다. 한국의 기아대책이 세운 이 훈련원은 쓰레기를 주우며 생활하던 이곳의 청년들에게 6개월~1년간 공짜로 용접·경비·미용 기술을 가르쳤다. 직업훈련원을 졸업하면 필리핀 국가 공인 자격증이 나오는데, 학생들은 이를 계기로 경비나 용접공으로 취업한다. '살길을 열어준다'는 호평 덕에 직업훈련원의 경쟁률은 1년 만에 4:1까지 치솟았다.

직업훈련원의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얘기는 "한국 조선소에 취업하고 싶다"이다. 실제로 이곳을 거쳐 한국 조선소에 용접공으로 취업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몬탈반 직업훈련원'은 졸업생은 물론, 마을 전체의 변화도 이끌었다. 대도시로 취업한 졸업생들이 마을로 돈을 보내며 새로운 집들이 들어서고 생기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

▶관련기사 '쓰레기山' 뒤지던 필리핀 빈민, 한국 조선소 용접공이 되다

한국은 코이카와 기아 대책 등의 단체를 통해 세계 빈민 국가에 교육을 지원하는 사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앞서 소개했듯, 단체가 아닌 개인이 자발적으로 학교를 짓는 사례도 많다.

학교를 지어 준다는 건 아이들에게 미래를 선물하는 일이다. 과거의 우리나라도 선진국의 도움을 받아 교육 체계의 기초를 닦았다. 지금의 가난한 나라들에도 배움과 발전의 기쁨을 알려주는 의미 있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참고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KFHI)
      한국국제협력단 코이카(KO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