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사범대 10동 106호는 사방이 '화이트보드'로 둘러싸인 특별한 강의실이다. 지난 11월 21일 이 강의실에서 '창의성 교육을 위한 교수들의 모임' 멤버인 권오남 서울대 수학교육과 교수의 '정수론' 수업이 있었다. 학생 26명은 수업 시작 후 10분간 6개 조로 나눠 앉아 자기가 풀어온 증명법에 대해 토론했다. 권 교수는 "한 조에 한 명씩 나와 증명법을 화이트보드에 쓰라"고 했다. 학생들은 화이트보드에 문제를 풀면서 주변 친구들에게 풀이 방식을 설명하기도 했다. 권 교수는 한쪽에 서서 학생들을 지켜보다가 간간이 "이 친구 방식을 이해할 수 있나요?" "또 다른 방식으로 푼 사람 있나요?" 같은 질문을 던졌다.
권 교수의 수업 방식은, 교수는 지식을 강의하고 학생은 듣고 받아 적기만 하는 전통적인 수업 방식과 정반대다. 학생은 문제를 미리 집에서 풀어오고, 강의실에서는 예습한 내용으로 교수, 학생이 함께 토론한다. 교수와 학생의 역할도 뒤바뀐다. 이른바 '플립러닝(flipped learning)'이다. 이 수업 방식은 미국에서 1990년대 개발된 후 학생들의 문제 해결력과 창의성을 키우는 새로운 교육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권 교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교수가 내준 20개 증명 문제를 혼자 푸느라12시간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매주 정수론 수업을 위해 혼자 12시간씩 공부하는 셈이다. 이때 권 교수는 기존 수학자가 만들어 놓은 공식을 적용해 문제를 풀지 않고, 자신만의 증명을 시도한 학생을 높이 평가한다. 권 교수는 "수학적 창의성은 한 가지 수학 문제를 다양한 방법으로 풀 때 발현된다"고 말했다.
권 교수도 1993년 대학 강단에 선 이후 6년간은 다른 교수들처럼 일방적인 강의를 했다. 그런데 자기가 가르친 학생들이 교사가 돼 다시 대학원에 왔는데, 창의적인 논문을 쓰지 못하는 걸 보고 "교육 방식을 바꿔야겠다"고 결심했다. 권 교수는 "대학 교육은 지식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을 키워야 하는데, 주입식 교육을 하면 절대 지식 창출자를 키울 수 없다"고 말했다.
플립러닝 방식에 대해 학생들은 "시간은 많이 들지만 더 재미있고, 많이 배운다"고 말했다. 이보경(수학교육과 2년)씨는 "다른 수업에서 내 방식대로 풀었더니 학점이 B학점 이하로 낮게 나와 '진로를 바꿔야 하나' 고민까지 했다"며 "이 수업에서는 내 생각대로 풀이 과정을 썼는데 자꾸 칭찬을 받으니까 너무 재밌어서, 새벽 2시까지 수학 문제를 풀기도 한다"고 말했다. 배지용(지리학과 2년)씨는 "남들이 풀어온 여러 방식을 보면서 제 생각도 점점 발전시키고, 시야도 넓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사범대 교수인 내가 옛날 방식대로 가르치면 변하지 않은 교사들을 배출하지 않겠느냐"며 "내가 변해야 학교 교사들이 창의적일 수 있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