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의 소소한 즐거움을 표현하는 케이블방송의 한 프로그램이 연작을 낼 만큼 인기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음식을 요리사가 아닌 아마추어 출연자가 나와서 만들어가는 과정을 재미있게 보여주고 있다. 만드는 과정에 이어서 늘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이 음식 세팅 장면이다. 반짝거리는 은식기나 테이블클로스가 깔린 근사한 식탁이 아닌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테이블 세팅이지만, 이 프로는 음식을 잘 담아내는 과정을 늘 빼놓지 않는다. 음식을 담는 것의 중요성을 아마도 연출자는 알고 있는 듯싶다. 인류의 역사는 식탁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고 식탁에서의 주역은 음식과 그것을 담는 그릇이다. 그리고 스푼, 포크, 젓가락, 나이프 등의 커트러리가 있다. 예로부터 어떤 종류의 그릇과 커트러리를 사용하는가는 식탁의 품격을 좌우하며 신분과 부를 상징했다.
우리는 흔히 부유한 가정 출신인 사람을 말할 때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다’라는 말을 쓴다. 이 말은 중세부터 은제품을 사용해온 유럽에서 온 것이다. 은은 건강과 관련해서 예로부터 귀족들 사이에서 널리 애용됐다.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귀족들은 은을 식기로 사용했는데 은 특유의 화려함과 더불어 자체적인 항균 효능이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에 페스트가 유행할 당시에도 네덜란드 왕궁에서는 페스트가 발견되지 않았던 이유가 은식기 때문이라는 속설이 있다. 이런 믿음 때문에 서양에서는 은제 컵을 사용하여 감염을 막아왔고 은화를 항아리에 넣어 우유의 변질을 막기도 했다. 또한 은은 독극물에 순간적으로 반응해서 검게 변색하므로 중세의 왕족이나 귀족들은 그런 이유로도 은그릇을 귀하게 사용했다. 귀족들이 중요한 손님을 초대하는 만찬에 은식기를 사용한 것은 ‘음식에 독이 들어가 있지 않으니 안심하고 드세요’라는 의미도 있었다.
우리가 은식기로 알고 있는 서양의 은제품 테이블웨어는 모두 은과 구리가 섞인 합금의 형태이다. 이것을 특별히 스털링이라 부르며, 나라마다 은과 구리의 비율이 조금씩 달랐다. 영국과 미국은 은 92.5%에 구리가 7.5%이고, 프랑스는 95%의 은과 5%의 구리를 섞어 스털링을 만든다. 이에 비해 네덜란드나 독일과 같은 중유럽 지방의 나라들은 은에 구리를 20%로 많이 섞어 스털링을 만든다. 이러한 은은 금과 함께 매우 고가여서 예로부터 유럽 각 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은 보유량이 곧 국가의 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국가에서 스털링임을 인증해주는 홀마크(Hallmark) 제도가 각 나라마다 도입됐다. 오늘날 순금 제품에 태극마크를 찍는 것과 같은 목적의 제도였다. 1238년경 헨리3세에 의해 영국에서 제일 먼저 시작된 홀마크 제도는 1300년 에드워드1세에 의해 입법화되면서 이후 매우 엄격하게 지켜졌다. 영국의 홀마크는 4개의 심벌마크를 일렬로 찍어 표시한다. 표범머리나 사자 마크 등을 각인해서 92.5%의 은이 들어가 있음을 인증한다. 이어 알파벳 26자를 이용해서 제작연도를 표시하고, 도시 특유의 마크를 넣어 제품이 만들어진 지역을 표시한다. 마지막으로 은세공 기술자의 이름을 이니셜로 각인한다. 프랑스의 홀마크 각인은 영국에 비해 조금 간단하다. 2개의 마크로 스털링임을 보증하는데, 미네르바 여신의 머리로 95% 순도의 은임을 표시하고 다른 하나의 마크로 연도를 표시한다. 따라서 시중에 유통되는 은제품에 홀마크를 찍는 것은 법적 표준에서 합격 판정을 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홀마크는 앤티크 컬렉션에 있어서 정직함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국가에서도 엄격하게 품질을 보증해서 유통에 직접 관여할 만큼 은은 귀한 것이었기에 귀족가문에서의 은제품 관리 역시 엄격했다. 귀족가문의 남녀 고용인을 통틀어 가장 높은 지위인 집사(Butler)가 와인셀러와 함께 은식기의 총괄 관리를 맡았다. 그는 은식기를 닦고 보관하는 업무를 했으며 일일이 수량과 보존 상태를 점검했다. 은식기는 잠금장치가 있는 특별한 장에 보관되었고 귀족 부부가 오랫동안 집을 비우는 경우에는 은행금고에 보관되기도 했다.
17세기 들어 영국에서는 손잡이 끝에 12사도의 상을 새긴 은으로 만든 12개의 사도 스푼이 등장하게 된다. 이것은 새로 태어난 아기의 첫 세례식에 아기의 대부가 풍요로운 삶을 기원하는 선물이었다.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다’라는 말은 이러한 유럽 귀족사회의 풍습과 무관하지 않다. 귀족의 자식들이 아니고서는 값비싼 은식기를 사용할 수 없었으니 귀족이라 함은 ‘실버 라이프(Silver Life)’를 향유하는 삶이라 할 수 있었다. 은은 금과 더불어 매우 고가였기에 은식기는 대대로 잘 보관되어 가보로 이어져 내려왔다.
당시 이런 은식기류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신분은 극소수의 상류층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접하는 그 시대의 커트러리 세트에는 귀족가문의 문장이 포크나 스푼 손잡이 부분에 새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같은 영화에서 알 수 있듯 그 당시의 은식기는 교회나 귀족가문에서도 상당히 귀한 것이어서 여러 하인들 중에서도 많은 경력을 가진 유능한 하인들만이 그것을 다루도록 정해져 있었다고 한다.
사용하는 식기의 종류가 신분을 가늠케 했던 사례는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잘 담아낸 그릇으로는 고려청자나 조선의 백자가 있다. 여기에 덧붙여 서양의 스털링과 같은 합금으로 만들어진 유기 즉 놋그릇이 있었다. 스털링이 은과 구리의 합금인 것처럼 유기는 구리와 주석을 합금한 것이다. 구리 78% 주석 22%의 비율로 합금된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배합이었는데, 페르시아와 이란에서 발달된 합금기술이 당나라에 유입되었고 8세기경 신라에 전해졌다. 신라에서는 전문적으로 놋그릇을 다루는 ‘칠유전’이라는 상설기구를 설치할 만큼 놋그릇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 고려시대에는 식기로서의 유기가 더욱더 많이 사용되어 각종 생활용기가 유기로 만들어졌다. 조선시대에는 건국 초기부터 국가에서 동을 채굴하여 유기의 생산을 장려했고 놋그릇을 전담 생산하는 ‘유장’이 있었다. 녹그릇을 제작하는 방법은 ‘안성맞춤’이라는 말의 유래를 가지고 있는 경기도 안성 지방에서 만들던 주물제작법과 평안북도 정주 지방에서 만들던 방짜제작법, 그리고 전라남도 순천 지방의 반방짜제작법이 유명했다.
은이 독에 반응하는 것처럼 놋그릇 또한 독성이 있는 음식을 담아내면 바로 시커멓게 변색이 된다. 이러한 항독성의 성질로 인해 조선의 왕실과 양반가에서는 놋그릇을 즐겨 썼고, 촛대와 세숫대야, 담배합 등 다양한 생활용품이 놋으로 만들어졌다. 특히 반상기는 예법을 중요시했던 사대부 식생활문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유기로 된 반상기를 정성스럽게 사용하며 관리하는 것은 안방마님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였다. 돌이켜 보면 초등학교 취학 전 아득한 어린 시절, 명절을 앞둔 어느 날 제사에 쓸 놋그릇을 모두 마당에 내어놓고 어른들이 모여 함께 닦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다. 이렇게 잘 닦여 윤이 반짝반짝 나는 유기그릇은 때로는 조상을 위한 의식인 제례에 쓰였고 때로는 집안 어르신을 위해 마련한 소반 위에 놓였다. 본래 조선의 전통 상차림은 1인 상차림이었다. 음식을 만드는 부엌과 음식을 차려 먹는 방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생긴 생활 패턴이었다. 음식이 놓인 상을 들고 다소 멀리까지 옮겨 가야 했기에 소반은 우선 가벼워야 했다. 그런 이유로 상을 만드는 데 쓰이는 나무 또한 가벼운 재질이 선호되었고, 행자목이라 불리는 가벼운 은행나무로 만들어진 소반이 가장 선호되는 최상품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에게 있어 매일 가장 친숙하게 지켜나가고 있는 의식은 삼시세끼를 챙겨 먹는 것이다. 그리고 신분과 권력이 생겨난 이래로 식사의식에서 상류층이 원했던 것은 차별과 구별이었다. 서양에서는 스털링이 상류층의 식탁을 장식했고 동양에서는 도자기와 유기그릇이 그 역할을 했다. 먼 시간과 길을 돌아 서양의 스털링 포크, 나이프를 우리의 유기그릇과 조그마한 소반 위에서 조우하게 하는 것은 멋있는 문화적 융합이다. 또한 이것은 장인의 숨결이 살아 있는 최고의 제품들이 일이백 년의 세월을 넘나들며 훌륭한 조화로움을 만들어내는 매우 창의적인 작업이기도 하다.
새해가 밝아왔다. 언제나 그렇듯 느닷없이 한 해가 저물고 야무진 준비 없이 또 새해를 맞이하게 됐다. 우리 모두가 한 살을 더하는 기념으로 떡국 한 그릇을 먹게 될 것이다. 너나없이 희망을 얘기하는 새해 아침, 우리 가족들만을 위해 따뜻한 떡국 한 상을 의젓하게 준비해보는 것은 어떨까? 우직한 상판과 아름다운 문양이 고운 자태를 뽐내는 소반 위에 정직함과 건강함의 상징이던 유기그릇을 올려보자. 정성껏 마련한 고명으로 멋을 낸 떡국 한 그릇을 받은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밝은 얼굴에서 새해의 희망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신년 떡국상에는 평소 놓지 않았던 냅킨, 수저받침 등을 세팅해보자.
소반이나 유기그릇이 없어도 가족들을 위한 의젓한 떡국상을 낼 수 있다. 아끼던 그릇 중 하나를 선택하여 평소 내는 반찬부터라도 정갈하게 접시에 담아보자. 반찬을 담아내는 마음가짐에서 테이블의 품격이 달라진다.
새해 다짐 중 하나로 ‘올해에는 가족 모두 모여 먹는 따뜻한 집밥’을 일주일에 몇 번 먹을 것인가를 의논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백정림은…
하우스갤러리 이고의 대표. 한국 앤티크와 서양 앤티크 컬렉터로서, 품격 있고 따듯한 홈 문화의 전도사이다. 인문학과 함께하는 앤티크 테이블 스타일링 클래스와 앤티크 컬렉션을 활용한 홈 인테리어, 홈파티 등을 제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