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만들던 저야말로 정말 힘을 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때 아들 도움을 많이 받았죠."
'아빠 힘내세요/우리가 있잖아요/아빠 힘내세요/우리가 있어요'라는 간단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노랫말로 지친 아버지들의 어깨를 펴게 해준 국민 동요 '아빠 힘내세요'는 지하 단칸방에서 만들어졌다. 노래를 만든 초등학교 음악교사 한수성(60)씨는 IMF 사태가 터지기 전에 이미 빚더미에 올라앉은 상태였다. 1978년 마산교대를 졸업한 뒤 교사가 됐지만 '음악으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놓지 못했던 탓이다.
가족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나쁜 아빠'였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배가 고파 울어도 신경 쓰지 않고 노래를 만들었다. 최신 음악 장비를 사겠다고 전세금을 빼는가 하면, 살던 집을 담보 잡아 개인 녹음실을 마련했다. 1995년에 일이 터졌다. 녹음실이 세들어 있던 건물 주인이 부도를 내면서 전세금을 날렸다. 당시 연봉 3000만원 받는 교사 처지에 1억원 넘는 빚이 생겼다. 한씨 부부와 아들 지웅(38)씨 등 세 식구는 지하 7평짜리 단칸방으로 이사했다. 지웅씨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철없던 아빠는 정신을 차렸다. 낮에는 교사로, 밤에는 각종 음반 기획·녹음 등 부업으로 '투잡'을 뛰었다. 매일 새벽 3시까지 일하다 잠깐 자고 학교에 갔다. 한씨는 "너무 졸려 낮 시간에 학생들보다 더 많이 졸았다"고 했다. 그래도 음악이 업(業)이니, 음악을 재기의 수단으로 삼았다. 한씨는 "새벽에 집에 들어갈 때 아들이 노래를 불러주는 상상을 하면서 나처럼 어려움을 겪는 가장을 위로하는 노래를 구상하게 됐다"고 말했다.
노래는 IMF 사태가 터지기 꼭 1년 전 태어났다. 1996년 12월 어느 겨울밤 한씨가 단칸방에서 '아빠 힘내세요'라는 후렴구를 악보로 만들 때 아들이 학교를 마치고 왔다. 당시 부산예술고에 다니던 지웅씨는 자작곡으로 강변가요제 본선까지 진출할 정도로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았다. 악보를 본 지웅씨는 "노래 정말 멋지다"며 피아노 앞에 앉았다. 부자(父子)가 주거니 받거니 멜로디를 만들고 가사를 지었다. 둘이 나흘간 밤을 새우며 노래를 완성했다. 한씨는 "야구에 비유하면 뒤지고 있던 9회말 투아웃에 만든 노래"라고 했다.
한씨는 1997년MBC 창작동요제에 이 노래를 들고 나갔지만, 3위 안에 들지 못했다. 한 심사위원은 "색다르긴 한데 동요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전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찾아왔다. 유치원 교사로 일하는 지인이 이 노래를 듣고 "재롱잔치에 쓰고 싶다"고 해서 허락했다. 재롱잔치에서 노래를 들은 엄마·아빠들이 울음보를 터뜨렸다.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전국의 유치원에서 '노래를 보내달라'는 요청이 쏟아졌다. 한씨는 "CD에 녹음을 해서 배송비와 제작비만 받고 보냈는데 한 10만장쯤 만든 것 같다"고 했다.
'아빠 힘내세요'는 2004년 한 신용카드 회사 광고에 쓰이면서 국민 동요로 부상했다. 저작권료 덕분에 한씨는 10년 만에 빚을 다 갚았다. 이 노래가 다른 수많은 아버지뿐 아니라 한씨 자신도 일으켜 세워준 것이다.
한씨가 만든 동요는 160곡에 달한다. 이 중 '아빠 힘내세요' '연날리기' '시골 하루' '초가삼간' 등 4곡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한씨는 지금도 활발하게 작곡 활동을 하면서 재능 기부도 열심이다. 2009년부터 9년째 매주 주말마다 부산 광안리해수욕장 등에서 거리 공연을 하고 있다. "노래로 어려운 이들을 도와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다. 거리에서 부른 노래를 모아 앨범도 냈다. 공연 및 앨범 수익금은 독거 노인들을 돕는 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지금까지 1500만원 정도 기부했다고 한다. 지웅씨도 아버지의 뒤를 따라 작곡가 겸 프로듀서로 활동 중이다. 그는 내년에 아버지가 만든 동요 중 10여 곡을 추려 베스트 음반을 낼 예정이다. 교사로서 정년퇴직을 2년여 앞둔 아버지를 위한 헌정 음반이다.
요즘 한씨의 가장 큰 즐거움은 가끔 지웅씨가 녹음실에 데려오는 손녀 송이(2)양의 재롱을 보는 것이다. "송이가 옹알옹알 '아빠 힘내세요'를 부르면서 재롱떠는 걸 보면 이 노래 만들길 잘했단 생각이 절로 듭니다. 언젠가 삼대(三代)가 함께 새 버전의 '아빠 힘내세요'를 만드는 게 다음 목표입니다." 부자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아빠 힘내세요'를 흥얼거리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