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형들처럼, 저도 사고 한번 치고 싶어요."

올해 20세가 된 축구 신동은 '간절함' '열정' 같은 단어를 수차례 반복했다. "머릿속에 온통 U-20(20세 이하) 월드컵 생각뿐"이라고도 했다. 세계적 명문 축구팀 바르셀로나 2군에서 뛰고 있는 백승호(20)에게 2017년은 U-20 월드컵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열세 살의 나이로 스페인에 건너간 지 벌써 7년. 백승호는 올해만 기다려온 사람 같았다.

스무 살의 백승호에게 2017년은 어떤 한 해로 기억될까. 한국 선수 최초로 FC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 입단해 B팀(2군)까지 승격한‘축구 신동’백승호는“궨피파 U-20 월드컵’에서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하고 싶다”고 말했다. 백승호가 축구공을 들고 포즈를 취한 모습.

한국의 20세 이하 연령대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국내 프로팀 산하 유소년팀에서 성장했거나 해외 유명 구단에서 뛰면서 성장해 '황금 세대'로 불렸다. 팬들은 오는 5월 국내에서 열리는 U-20월드컵에서 내심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재현을 기대한다.

그 중심에 백승호가 있다. 백승호는 2009년 12월 스페인에서 열린 친선 대회에 참가했다가 바르셀로나 유소년 스카우트의 눈에 띄었다. 수비수들을 휘젓는 스피드와 민첩성을 갖췄고 양발잡이에 골 결정력까지 좋은 선수를 바르셀로나가 놓칠 리 없었다. 2010년 2월, 그는 아시아인으로서는 최초로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 입단했다. 매년 승급을 거듭해 작년 프로 계약까지 맺었다. 현재 바르셀로나 1·2군을 합해 아시아인은 백승호뿐이다.

지난 7년간 백승호의 스페인 생활은 '모범'의 연속이었다. 오전 9~10시쯤 집을 떠나 훈련을 마치고 저녁 7시가 넘어서 집에 오면 조용히 쉬며 체력을 보충했다. 때로 휴식일이 주어지면 드리블 연습을 하거나 팀 동료들과 함께 TV로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관람했다. 바르셀로나에서 뒷바라지하는 어머니가 건강식으로 닭고기 탕수육을 만들어준다.

구단에선 백승호를 보물 다루듯 관리한다. 작년 12월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가 벌이는 '엘 클라시코' 경기에 앞서 훈련장에 백승호를 불러 메시·수아레스·네이마르 등과 함께 훈련시킨 것도 1군 감독 루이스 엔리케의 특별한 배려였다. 백승호는 "동경하던 선수들과 몸을 부딪치고 공을 주고받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며 "특히 롤모델인 이니에스타가 '빽(Paik), 잘 지냈니'라는 인사를 하고 지나갔을 땐 심장이 쿵쾅거렸다"고 했다.

국내에선 아직 그의 진가가 드러나지 않았다. 2014년 두 살 형들과 출전한 AFC U-19 챔피언십과 2016년 또래들과 나간 같은 대회에서 한국은 두 번 다 예선 탈락했다. 백승호는 두 번 다 중용되지 않았다. 당시 백승호는 소속 구단인 바르셀로나가 이적 규정 위반으로 징계를 받는 바람에 경기 출장 시간이 적었고, 대표팀에선 경기 감각이 떨어졌을 것으로 생각해 기용을 망설였다. 백승호는 "그래도 자신 있었는데 충분한 기회를 얻지 못해 아쉬웠다"고 했다.

백승호 옆에 메시·수아레스 - 바르셀로나 B팀 소속인 백승호가 2015년 12월 바르셀로나 1군 훈련에 소집돼 세계적인 스타들과 훈련하는 모습. 왼쪽부터 알베스, 이니에스타, 메시, 백승호, 수아레스.

백승호는 대표팀 선발 여부에 관계없이 지난해부터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난달 말엔 휴가차 한국 집에 와서도 조깅하고 운동장에서 혼자 공을 찼다. 축구 선수인 친구들과 만나선 풋살(미니 축구의 일종)을 했다. 백승호는 "바르셀로나 소속이라 무조건 뽑힌다는 보장도 없다. 대회 준비에 에너지와 정신을 다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매니지먼트사인 브리온컴퍼니 임우택 대표는 "승호가 축구에만 집중하고 싶다고 해 쏟아진 방송 섭외도 모두 사양했다"고 했다.

백승호는 "U-20 대회에 뽑히면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처럼만 하고 싶다"고 말한다. 백승호는 "하이라이트를 셀 수 없이 많이 봤다"며 "많은 관중, 투지 넘치는 선수들, 뛰어난 성적까지 꼭 재현하고 싶은 모습들"이라고 했다. 가장 좋아하는 2002년의 영웅은 박지성이다. 백승호는 "당시 스물한 살이었던 박지성 선배의 열정, 기술, 투혼은 지금 봐도 전율을 느끼게 된다"며 "스무 살인 나에게 용기를 주는 선배"라고 했다. 지난 5일 신태용 U-20 대표팀 감독은 1월 16일 시작되는 포르투갈 전지훈련 명단을 발표했다. 백승호의 이름이 거기 있었다. 백승호는 "친구들로부터 팀 분위기와 감독님 스타일 같은 '정보'도 얻어 놨다"며 "팀에 맞출 준비가 됐다"고 했다. 그는 "반드시 살아남아 한국 땅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