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후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 피아니스트 조성진(23)이 무대에 섰다.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 국내에서 처음 갖는 독주회였다. 지난해 2월 동료 수상자들과 함께 갈라 콘서트로 모국 무대에 섰지만 오케스트라 없이 홀로 무대를 책임진 건 처음이었다. 조성진은 공연장이 보유한 스타인웨이 두 대 중 고음이 더 또렷한 피아노를 골랐다.
1부 첫 곡은 오스트리아 작곡가 알반 베르크(1885~1935)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 단일 악장인 이 곡은 전통 형식을 따르면서도 조성을 자유로이 뒤바꾸며 낭만을 꽃피우다 모호하게 끝맺는 작품이다. 조성진의 손가락은 하얀 포말처럼 건반을 적시며 나아갔다. 서른한 살에 숨을 거둔 슈베르트가 사망 직전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19번은 상냥한 음에서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듯한 비감(悲感)이 묻어나는 작품. 해외에서 여러 차례 이 곡을 연주했던 조성진은 한층 발전한 표현력을 보여줬으나 전반적으로 밋밋했다. 인생 나이테를 좀 더 새긴 뒤 팔과 어깨에 근육을 키운다면 어떤 슈베르트가 나올지 궁금해졌다.
비장의 무기는 2부를 장식한 쇼팽의 발라드였다. 지난해 11월 선보인 음반 '쇼팽: 피아노협주곡 1번·발라드'(DG)에 수록해 호평받은 발라드 네 곡을 실연으로 들려주는 자리. 연주를 거듭할수록 자신감이 붙은 피아니스트는 특유의 영롱한 음색을 맘껏 빛내며 객석을 사로잡았다. 앙코르로 드뷔시 '달빛'과 브람스 헝가리 무곡 1번을 선사한 뒤에야 긴장이 풀린 듯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다음 날인 4일, 2부 프로그램만 쇼팽의 24개 전주곡으로 달리한 조성진은 한결 여유로웠다. 비교적 짧은 스물네 곡의 얼굴을 변화무쌍한 손놀림으로 바꿔가며 독주회의 대미를 장식했다.
공연장의 조성진은 '아이돌 스타' 같았다. 2부 연주가 끝나자마자 몇몇 관객은 사인회 줄에 서기 위해 앙코르도 듣지 않고 달려나갔다. 미처 줄 서지 못한 사람들은 2층 복도 난간에 달라붙어 조성진의 등장에 '꺄악!' 소리지르며 환호했다. 3일의 경우 오후 10시 20분에 시작한 사인회는 11시 8분에 끝났다. 조성진은 줄을 선 600여명 모두에게 사인을 해줬다. 음반과 기념품을 사려는 사람들로 판매대는 북새통을 이뤘고, "조성진에게 전해달라"며 맡긴 선물이 물품보관소에 쌓였다.
이번 공연 티켓은 지난 11월 예매 시작 10분 만에 매진됐고, 롯데콘서트홀 개관 이후 가장 높은 유료 판매(3일 1932매·4일 1937매)를 기록했다. 이틀간 국내 리사이틀을 마무리한 조성진은 대만·일본 투어를 한 뒤 다음 달 22일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 데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