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탑건'의 매버릭 대위(톰 크루즈)를 동경하며 전투기 조종사를 꿈꾸던 여중생이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전투비행대장이 됐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전투기 프라모델을 조립하고 각종 항공캠프를 찾아다니던 소녀는 1997년 공군사관학교에 최초의 여생도로 입학했고, 20년 만에 전투비행대대의 '넘버 2' 자리에 오른 것이다.
공군은 3일 "제8전투비행단 203전투비행대대 소속 박지원(39·공사 49기) 소령 등 3명이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전투비행대장에 기용됐다"고 밝혔다. 공사가 '금녀(禁女)의 벽'을 허문 지 20년, 2002년 최초의 여성 전투조종사가 탄생한 지 15년 만이다.
비행대장은 전투비행대대에서 대대장(중령) 다음 직책으로 대대의 모든 작전 임무와 훈련을 감독하고 후배 조종사에 대한 교육·훈련을 계획하는 등 비행대대의 전반적 업무를 총괄하는 중책이다. 공군 관계자는 "비행대장이 되려면 근무 경험, 평정, 군사 교육 등 개인 역량뿐 아니라 리더로서의 인격과 자질까지 종합 평가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국산 경공격기 FA-50을 조종하는 박지원 소령은 2001년 공군 소위로 임관한 뒤 비행교육과정을 우수한 성적(3등)으로 수료하는 등 동기들 가운데서도 발군의 비행 실력을 발휘해왔다. 작년 10월에는 편대장으로 보라매 공중사격대회에 참가해 팀을 비행단 최우수 편대(중고도 사격부문)로 이끌었다.
박지원 소령의 공사 동기생인 제16전투비행단 202전투비행대대 박지연(39) 소령도 함께 전투비행대장에 올랐다. 공군 관계자는 "공사 49기 여생도 20명 가운데 박지연·박지원 소령이 가장 두각을 나타냈다"고 했다. 박지원 소령과 같은 기종(FA-50)을 조종하는 박지연 소령은 '최초의 여성 전투조종사'(2002년), '최초의 여성 전투기 편대장'(2007년)에 이어 '최초의 여성 전투비행대장'까지 공군에서 '최초 타이틀'을 가장 많이 보유한 장교 중 한 명이 됐다.
제20전투비행단 123전투비행대대 하정미(38) 소령은 가장 막내(공사 50기)임에도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KF-16 전투기를 조종하는 하 소령은 생도 4학년 때부터 KF-16 조종사를 꿈꿨다고 한다. 20전투비행단 견학을 갔다가 KF-16 전투기를 접하고 매료됐다. 2002년 임관 후 처음 배정받은 기종은 A-37 공격기였지만 2007년 기종 전환을 자청해 꿈을 이루는 동시에 '최초의 여성 KF-16 조종사' 기록을 세웠다. 2006년 보라매 공중사격대회에서 최우수상(저고도 사격 부문)을 받는 등 비행 실력은 49기 선배들을 압도한다는 평가다.
공군 관계자는 "전투기를 조종한다는 것 자체가 실력이 탁월하다는 얘기"라며 "전체 공군 조종사 2700여 명 중 여성 조종사는 70여 명이고 하 소령 같은 여성 전투기 조종사는 30여 명에 불과하다"고 했다. 하 소령은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지휘관과 부하가 한마음 한뜻이 되면 승리한다)의 정신으로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강한 대대를 만들겠다"고 말했다.